매일신문

[함재봉 칼럼] ‘이상국가 대 민주주의’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이상국가'나 '이상사회'란 모든 문제가 해결된 국가와 사회다. 이상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의 이성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국가와 그 국가의 지도자가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인간은 완벽한 진리를 찾아낼 수도, 알 수도 없는 존재다. 최소한 속세에서는 그렇다. 따라서 지상에서는 이상적인 사회나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비하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은 분명히 이성적인 존재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능력을 믿고 완벽을 추구할 때,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시키고자 할 때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보여 준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폴포트….

인간의 모든 가치를 조화시키고, 모든 모순을 제거한 완벽한 사회는 건설할 수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 생존과 공존, 최소한의 정의, 한시적인 평화를 위한 차선책으로 도입한 제도가 민주주의다.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이 죄악과 고통의 세상에서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정부를 시도해 봤고 앞으로도 시도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벽하거나 가장 지혜로운 체제라고 감히 주장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민주주의는 인류가 때때로 시도해 본 다른 모든 체제들을 제외하고는 최악의 정부 형태라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차선책을 찾는 예술이다. 민주주의는 아무리 개조해도 인간은 완벽해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건설하고 가꾼다. 미국 헌법의 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 합중국의 인민들은 더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기 위하여….'

'완벽한 연방'이 아니라 '더 완벽한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항상 완벽을 추구하되 결코 완벽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하였고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은 성인군자의 반열에 오른 지도자가 출현하여 미국을 다스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지한, 형편없는 인격을 가진 사람도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 체제는 어떤 한 사람이, 그 사람이 비록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망칠 수 없도록 삼권분립을 하고 의회를 상·하원으로 나누고, 대통령 선거도 인구의 절대다수가 아닌 '선거인단'이 선출하도록 고안했다.

이처럼 불완전한 인간들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절감하며 만든 민주주의는 설득과 투표를 통하여 유지된다. 체제가 그 누구도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밀어붙일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서로의 지식이 불완전함을 알기에 능력껏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지식과 최고의 수사를 총동원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되 모두를 완전하게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투표를 통하여 사안을 결정한다.

물론 투표도 최소한 2년(미국 하원), 4년(한국 국회의원, 미국 대통령), 5년(한국 대통령), 6년(미국 상원의원)에 한 번씩 반복한다. 상황이 바뀌고 사람들의 지식과 심리가 늘 바뀌기 때문에 늘 새로운 지도자들을 선출해야 한다.

그런데 설득과 투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예의, 우의, 겸양, 타협과 절제, 용기가 필요하다. 링컨의 우상이었으며 '1850년의 타협'을 이끌어내 남북전쟁의 발발을 10년 지연시킨 '대타협가' 헨리 클레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모든 법, 모든 정부, 모든 사회는 양보, 공손함, 우의, 예의의 원칙에 기반한다."

자신을 인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은 인간의 약점·허약함·모자람·부족한 점을 안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원한다면 '나는 결코 타협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도록 내버려 둬라.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원초적인 단점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타협을 경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 없는 미국은 없다. 정치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정당 없는 정치는 없다. 타협과 절제 없는 정당은 없다." 민주주의 없는 한국은 없다. 정치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정당 없는 정치는 없다. 타협과 절제 없는 정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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