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무료 인성 교실 전해진 씨 "서로 인사 나누는 아파트로 바꿔보고 싶었죠"

감사 일기 쓰기, 음악 감상 후 대화…초교생 10명 일주일 한 번씩 수업
10주 과정 끝나면 템플스테이 예정…꽃꽂이 강좌·시낭송 대회도 계획
"우리 아파트 서로 인사하는 문화, 어른·아이에 좋은 영향력 미칠 것"

작년 9월 선출된 월성e-편한세상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전해진 씨는 자비로 시집 300권을 구매해 아파트 도서관에 비치했다. 시집 코너 앞에서 웃고 있는 전 회장.
작년 9월 선출된 월성e-편한세상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전해진 씨는 자비로 시집 300권을 구매해 아파트 도서관에 비치했다. 시집 코너 앞에서 웃고 있는 전 회장.

"오늘은 학원 바로 안 가니?" 어른과 아이가 익숙한 듯 대화를 나눈다. 어른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고, 아이는 중앙 테이블에 앉아 밀린 숙제에 집중한다. 해가 지면 이곳은 인성교육 강의실로도 바뀐다. 둥그렇게 앉아 북적대는 초등생들 옆에는 하하호호 미소짓는 선생님이 있다.

언뜻 여느 학교의 풍경 같지만 달서구 월성e-편한세상 아파트의 풍경이다. 작년 9월 선출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전해진 씨(54)는 자비로 시집 300권을 구매해 아파트 도서관에 비치했다. "뭐 하려고 돈 들여서 책을 사 넣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이 책 몇 권으로 아파트가 변하기 시작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많이 들었다는 질문일 테지만, 한 번 더 묻겠다. 왜 자비로 책을 사서 도서관에 넣은 건가?

▶아파트 내 도서관을 활성화하고 싶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도서관이 인성 교육의 장이 됐으면 하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시에는 자기 표현을 함축적으로 하는 기능이 있다. 길지 않은 문구들은 아이들이 접근하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즉 아이들의 내면 세계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시집을 구매해 비치했다. 당시 우리 도서관에 시집이 없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문학, 역사, 사회과학, 유아 도서류 2만여권이 있지만 시집만 없었다.

-회장님의 그런 염원은 아파트 슬로건에도 녹아 있는 것 같다. '어질고 선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이 인상 깊더라

▶아파트 문화가 참 삭막하다. 앞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뿐더러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인사 하나 나누는 사람 없다. 이런 모습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파트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어딜까 생각했다. 바로 도서관이더라. 그래서 이곳부터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의 변화는 시집뿐만이 아니더라. 매주 한 번씩 인성 교육 프로그램도 열린다고.

▶방과 후 인성 교실로 2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고학년 따로 반을 나눠 10명이 교육을 듣는다. 우리 아파트 아이들이 어질고 선한 세상을 만들어 가게끔 교육을 하는 것이다. 교육은 입주민 한 분이 무료로 재능 기부를 해주시는데 전직 교사 김현정 씨다.

전 회장이 꾸려가는 아파트에는 매주 한 번씩 인성교실이 열린다. 입주민이 교사를 맡았다. 인성 교실 모집 당시 엘리베이터에 붙었던 포스터.
전 회장이 꾸려가는 아파트에는 매주 한 번씩 인성교실이 열린다. 입주민이 교사를 맡았다. 인성 교실 모집 당시 엘리베이터에 붙었던 포스터.

-아파트에서 무료 인성 교실이 열리다니. 최초 아닌가.

▶대구는 물론 전국 최초가 아닐까(웃음) 처음엔 한 명만 와도 좋겠다 생각하고 시작했다. 단 한 명에게라도 인성 교육이 도움 된다면, 그 한 명으로 우리 아파트는 변할 거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 모집 포스터를 붙였고 안내 방송도 했다. 12명이 하겠다고 찾아왔고 최종적으로 10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10명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이런 교실을 열어도 참가자가 없는 추세다. 그만큼 인성 교육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아파트는 그래도 호응이 꽤 있는 편이었다.

-이 수업은 왜 여는 건가. 어떻게 보면 귀찮은 일 아닌가. 시집을 비치한 이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나.

▶인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은 잘 없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엔 다른 교육에 열을 올리느라 인성 교육은 뒷전인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아파트 안에서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아파트는 아이들이 속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가 아니던가. 우리 아파트가 그런 역할을 하면 또 다른 아파트에서도 관심을 가질 테고, 그러다 보면 들불처럼 번져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 회장이 꾸려가는 아파트에는 매주 한 번씩 인성교실이 열린다. 입주민 김현정 씨가 교사를 맡았다. 인성교실은 감사일기 쓰기, 음악 명상 후 대화, 사회관계 배우기, 미술 등 매번 다른 커리큘럼이 마련됐다.
전 회장이 꾸려가는 아파트에는 매주 한 번씩 인성교실이 열린다. 입주민 김현정 씨가 교사를 맡았다. 인성교실은 감사일기 쓰기, 음악 명상 후 대화, 사회관계 배우기, 미술 등 매번 다른 커리큘럼이 마련됐다.

-인성 교실에서는 어떤 수업을 하나

▶감사일기 쓰기, 음악 명상 후 대화, 사회관계 배우기, 미술 등 매번 다른 커리큘럼으로 교육을 한다. 기억에 남는 건 얼마 전부터 화분 키우기를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다. 도서관 옆 빈 공간이 있는데 그곳을 주말 농장 형태로 꾸밀 생각이다. 지금은 1기 과정을 듣는 아이들 화분 10개 밖에 없지만 계속 더 늘어가지 않을까. 화분마다 삐뚤빼뚤 써진 저마다의 이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을 주며 가꾸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화분이 쑥쑥 자라듯 아이들의 인성도 쑥쑥 자랄 것이다.

-2월부터 4월 말까지 10주 간 과정이라고 했는데, 첫 수업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아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했나.

▶아이들의 내면을 하나하나 다 뜯어볼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기본 단계의 인성이라고 볼 수 있는 인사성도 밝아졌다. 이제 곧 1기가 끝나는데 수료식 이후에 템플스테이 체험도 예정돼 있다.

-어른들 인성 교실은 없나.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는 것 또한 어려운 세상이다.

▶따로 없다. 하지만 어른들은 교육이 필요하다기보다 일상생활에서 본보기가 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내가 회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뭔 줄 아는가. 아파트 내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과 경비 아저씨 분들을 모아서 저녁을 대접한 일이다.

-요즘의 아파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갑질'이다. 경비에게 잡심부름을 시킨다던가, 청소 아주머니에게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고 한다던가.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어른이기도 한 내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먼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덧붙여 그분들에게 부탁 드린 것도 하나 있다. 입주민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아파트에는 인사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어찌보면 작은 변화일지 모르지만 어른이 될 아이들, 어른이 된 어른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거라 생각한다.

인성 교실에서 화분을 키우는 아이들의 모습. 화분마다 삐뚤빼뚤 써진 저마다의 이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을 주며 가꾸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화분이 쑥쑥 자라듯 아이들의 인성도 쑥쑥 자랄 것이다.
인성 교실에서 화분을 키우는 아이들의 모습. 화분마다 삐뚤빼뚤 써진 저마다의 이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을 주며 가꾸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화분이 쑥쑥 자라듯 아이들의 인성도 쑥쑥 자랄 것이다.
인성 교실에서 아이들은 화분 키우기를 한다. 화분마다 삐뚤빼뚤 써진 저마다의 이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을 주며 가꾸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화분이 쑥쑥 자라듯 아이들의 인성도 쑥쑥 자랄 것이다.
인성 교실에서 아이들은 화분 키우기를 한다. 화분마다 삐뚤빼뚤 써진 저마다의 이름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을 주며 가꾸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화분이 쑥쑥 자라듯 아이들의 인성도 쑥쑥 자랄 것이다.

-인성이라든지, 함께 사는 사회라든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계기라기보다는, 그런 활동을 많이 해왔기에 아파트 운영에도 자연스레 적용된 것 같다.

-어떤 활동들인지 여쭤봐도 되나.

▶학교폭력대책위원장, 남부교육지원청 교육행정위원, 달서구 28개 초등학교 운영위원장 협의회장, 대구서부보호관찰협의회장 등을 맡았다. 소년원 무료 강의도 나간다. 그러고 보니 모두 다 인성과 연관이 있는 활동이다. 어른들의 노력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혹시 어린 시절에 방황을 했었나.

하하.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의 인성 교육 덕분이었다. 멋진 부모 밑에는 멋진 자녀가 자라기 마련이다.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도 내가 부모님께 배웠던 마음가짐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전 회장님과 입주민들이 만들어갈 앞으로의 아파트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또 다른 계획이 있나.

▶도서관에 꽃꽂이 무료강좌와 시낭송 대회도 계획하고 있다. 실제로 인성 교실이 열리고, 시집도 비치되고 나니 입주민들이 너도나도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카페 가서 돈 쓸 필요 뭐 있나. 아이들이 학교 간 오전 시간에는 도서관을 사랑방처럼 만들어 입주민들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바꾸고 싶다.

아파트의 벽은 두꺼운 게 아니었다. 그 벽은 우리 마음속에 있었다. 동 간격도 별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통하니 금세 벽은 사라졌고 간격이 메워졌다.

"아파트 담장을 허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몇 달 후에 우리 아파트에 오시면 또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 걸요? 기대되시죠! 다들 한번 도전해 보세요"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