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준의 새론새평] 기업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인류의 삶은 일련의 정치적 혁명과 그와 함께 촉발한 제도 발달과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꾸준히 진화해 왔다. 특히 경제생활은 자본주의 도입으로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한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기업의 출현과 확산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은 기업이 책임진다. 농어민이나 자영업자처럼 개인이 생산의 주체인 경우도 있지만, 국민 경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서 생산의 대부분은 기업이 만든다.

반면, 사회주의 혹은 나아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생산을 정부가 책임진다. 농업에서부터 제조업,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기획, 생산, 분배를 모두 관장한다. 그리고 두 경제 체제에서의 국민의 삶의 질은 논할 가치조차 없이 현격하다.

어떤 의미에서 국민 다수가 기업의 생산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가치, 즉 부가가치(added value)를 나누어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기업 활동을 통한 부가가치의 직접 수혜자는 물론 해당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업으로부터 자신의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임금을 받고 그 임금으로 소비 생활을 함으로써 또 다른 사람들의 소득을 발생시킨다.

나아가 이들 절대다수는 개인 소득세를 내고 정부는 기업에 또 별도의 법인세를 부과한다. 이 세금으로 정부가 운영되고 정부 종사자들의 소득이 된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세에서 개인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30%가 넘고 금액으로도 131조원에 육박하며 법인세의 비중은 25%에 105조원에 달한다. 한마디로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을 비롯한 국민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기업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를 나누어 갖는 셈이다.

이렇듯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유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고 기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이에 더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급기야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좌파 정당과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단체들은 소위 '이익공유제'를 들고나와 코로나 기간 큰 이익을 본 업종이나 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취약계층에 나누어 주자고 주장했다.

이익(이윤)공유제란 기업이 기대 이상의 높은 이윤을 창출했을 때 종사자들의 봉급이나 보너스에 추가로 제공하는 보상제도이다. 즉, 이익공유제는 궁극적으로 해당 기업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제도이지, 정부가 개입해서 기업의 이익을 특정 계층에 나눠 갖게 하는 소득재분배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조직에서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낸 이익을 정부가 강제로 나눈다면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할 기업과 열심히 일할 근로자가 어디 있겠는가. 자본주의의 장점을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결국 국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는 것이다.

우리말의 '착하다'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곱고 어질다는 뜻으로 사람에게 쓰이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의 몸이 착하다느니, 어떤 상품이 착하다느니 하면서 신체나 물건이 좋은 것이나 가격이 싼 것을 비유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기부나 후원 활동을 많이 하는 회사를 '착한 기업'이라고도 부른다. 덩달아 착한 기업, 사회 공헌 우수 기업 등을 선정하고 또 이를 통해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회사들도 나오고 있다. 사실 착하다는 말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통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하면 착하다고 하고 불리하면 나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시장은 착한 사람, 착한 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품질 좋은 물건을 값싸게 생산·공급하는 기업들과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교환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기업만이 시장에서 오랫동안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다.

기업은 품질 좋고 가성비 높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 그래서 더 많은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 달라. 이것이 기업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전부이다. 그 이상으로 이익을 공유하자느니 사회에 기부를 하라느니 요구한다면 그 부담의 최종 귀착지는 다름 아닌 소비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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