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대 문화권 대해부] 역사공원에 웬 물놀이장…1년 중 두달 쓰는데 수억원 줄줄

정체성 사라진 관광지
하드웨어 중심의 3대 문화권, 콘텐츠 미흡하다는 지적
연계형 사업도 '각자도생'…차별성 부족, 여기저기 '한옥'

의성의 신라 본 역사지움 사업 내 물놀이장. 역사문화자원을 관광화한다는 3대 문화권 취지와 어긋난 시설로, 여름철 두 달만 운영된다. 지난 9일 찾은 물놀이장은 운영하지 않아 텅 비어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의성의 신라 본 역사지움 사업 내 물놀이장. 역사문화자원을 관광화한다는 3대 문화권 취지와 어긋난 시설로, 여름철 두 달만 운영된다. 지난 9일 찾은 물놀이장은 운영하지 않아 텅 비어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의성의 신라 본 역사지움 사업 내 물놀이장. 역사문화자원을 관광화한다는 3대 문화권 취지와 어긋난 시설로, 여름철 두 달만 운영된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아 텅 비어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3대 문화권 사업은 지역 관광의 대표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현실은 혈세를 낭비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전시기법은 낡았고, 콘텐츠도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딴곳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근 관광지와의 연계성도 낮다는 비판이 나온다.

◆3대 문화권에 물놀이장?…단조로운 내용과 부족한 차별성

지난 9일 오후 3시쯤 경북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조문국박물관 옆 물놀이장. 철제 펜스 주위로 휑하니 아무도 없었다. 물놀이장 중심에는 약 10m 높이의 나무 모양 구조물이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 원통 미끄럼틀을 탈 수 있는 형태였다. 인근 매표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창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외벽에 '물놀이장(7~8월 운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곳은 의성의 3대 문화권 사업인 '신라 본 역사지움'에 포함된 시설이다. 167억원을 투입해 역사공원·고분 탐방로와 더불어 물놀이장을 만들었다. 역사문화자원의 관광화라는 사업 취지와 어울리지 않지만, 물놀이장은 2017년 10월 문을 열었다.

여름철 두 달만 운영하기 때문에 이용객 수요가 한정돼 있다. 의성군에 따르면 물놀이장 이용객은 2018년 1만5천595명에서 이듬해 1만2천639명으로 감소했다. 2020~2021년은 코로나19로 내내 휴장했다. 2022년 다시 운영을 시작했지만, 지난해 이용객은 1만2천402명에 그쳤다.

'한 철 장사'지만 관리하는 데 비용은 계속 들어갔다. 2019~2023년 물놀이장 주요 정비 내용을 보면, 그늘막 설치(2억4천만원)와 야외화장실 및 샤워장 설치(1억1천600만원), 바닥 정비(7천만원) 등의 지출이 이뤄졌다. 올해도 지난 4월 데크 유지보수에 900만원을 집행했다.

의성의 신라 본 역사지움 사업 내 물놀이장. 역사문화자원을 관광화한다는 3대 문화권 취지와 어긋난 시설로, 여름철 두 달만 운영된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아 텅 비어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의성의 신라 본 역사지움 사업 내 물놀이장. 역사문화자원을 관광화한다는 3대 문화권 취지와 어긋난 시설로, 여름철 두 달만 운영된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아 텅 비어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영천 한의마을. 한옥으로 구성된 3대 문화권 관광지. 윤정훈 기자
의성의 신라 본 역사지움 사업 내 물놀이장. 역사문화자원을 관광화한다는 3대 문화권 취지와 어긋난 시설로, 여름철 두 달만 운영된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아 텅 비어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이처럼 3대 문화권 사업은 하드웨어가 중심이 되면서 전시·관람·체험콘텐츠가 미흡하다는 우려가 조성단계부터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 사업이 준공된 현재도 이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매일신문이 3대 문화권 관광지를 직접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단조롭고 어려운 내용 ▷글자를 나열한 평면적인 전시물 ▷3대 문화권 취지에서 벗어난 콘텐츠 ▷유사·중복 콘셉트 ▷낮은 수준의 영상 화질·합성 사진 ▷유행 지난 전시기법과 노후화한 전시시설 ▷체험 기기의 오작동·고장 ▷떨어지는 접근성 ▷현장 인력과 홍보 부족 ▷편의시설 미흡 등이 주요한 문제점으로 확인됐다.

일선 현장에선 콘텐츠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지자체 관광과 관계자는 "3대 문화권 사업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 같다. 40, 50대와 MZ세대는 각각 여행 추세와 찾고 싶은 공간이 다르다. 특히 전통문화 콘텐츠만으로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힘들다"며 "유교·불교문화를 눈으로 보는 것보다 루지를 직접 타보는 게 더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자원 개발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주 선비세상. 한옥과 초가집으로 꾸며진 3대 문화권 관광지. 김우정 기자
영천 한의마을. 한옥으로 구성된 3대 문화권 관광지. 윤정훈 기자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 내부 전경. 한옥과 초가집 등 차별성이 부족한 건물로 조성돼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영주 선비세상. 한옥과 초가집으로 꾸며진 3대 문화권 관광지. 김우정 기자

◆광역관광 취지 사라져…"차별성·킬러 콘텐츠 부족"

3대 문화권 사업의 취지 중 가장 먼저 손꼽히는 건 지역 관광자원의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다. 그래서 같은 사업명으로 여러 지자체를 묶은 '연계형 사업'이 모두 23개나 된다. 사업비로는 1조1천522억원 규모로 전체 사업비의 58.6%에 해당한다.

지역별로 보면 북부권에는 ▷한국문화테마파크(안동, 영주)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안동, 봉화) ▷녹색문화상생벨트(문경, 예천) 등이 조성됐다. 유교·생태 중심의 사업들로 추진됐다.

서·남부권에는 ▷가야국 역사루트재현과 연계자원 개발(고령, 성주) ▷신화랑 풍류체험벨트(경주, 영천, 경산, 청도) ▷낙동강 역사너울길(구미, 고령, 칠곡) ▷동의 참 누리원(영천, 경산) 등으로, 가야·신라·낙동강·한방 관련한 콘텐츠로 구성됐다.

또 동해안권에는 ▷동해안 연안녹색길(포항, 영덕) ▷수토 문화나라(울진, 울릉) 등이 있다. 해양과 수토사(조선 시대에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고자 파견된 수군)라는 고유의 역사자원을 내세웠다.

3대 문화권 사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연계형 사업은 현재 '각자도생'으로 운영되고 있다. 같은 주제로 꾸며진 관광지 간의 교류와 연결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포항의 3대 문화권 사업인 일월문화공원의 모습. 관광지로 조생했지만 주민 산책로로 전락했다. 윤정훈 기자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 내부 전경. 한옥과 초가집 등 차별성이 부족한 건물로 조성돼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중복된 콘텐츠 탓에 차별성도 부족하다. 특히 전통문화가 중심 주제여서 유독 한옥 형태의 시설이 많다. 한옥형 숙박·체험 건물을 우후죽순 지었다. 안동의 한국문화테마파크와 선성현문화단지(한옥체험관), 영주 선비세상(한옥촌), 경주 화랑마을(한옥생활관)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 2018년 중간평가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예상됐다. 당시 연구진은 "동일 명칭의 사업들 간 콘텐츠의 차별성과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며, 해당 사업들의 연계성이 낮으므로 매력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간평가에 참여한 조광익 대구가톨릭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3대 문화권 사업은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톱다운방식으로 예산을 내려준 탓에 우려를 낳았다"며 "지역에선 국비를 많이 받는 데 집중했고 구체적인 사업 운영 계획을 마련하는 데는 소홀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0년이 넘는 사업 기간 중 지자체 담당자들이 바뀐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속적인 사업 관리와 운영 전문성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해설사와 진행요원 등 현장 인력도 대부분 기간제여서 근무 노하우를 축적하기 힘들고, 새로운 콘텐츠 발굴을 위한 전문인력(학예사)도 부족하다.

권철원 경상북도 관광정책과장은 "3대 문화권 사업 중 운영이 잘 이뤄지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분류하는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계속 운영이 필요한 경우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하고, 나머지는 정부 공모 사업을 통해 다른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경산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지. 마위지라는 못 주변에 동상과 인공 고분 등을 설치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인근 주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같은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인 경주, 영천, 청도와 연계할 수 있는 안내와 프로그램이 없다. 서광호 기자
포항의 3대 문화권 사업인 일월문화공원의 모습. 관광지로 조생했지만 주민 산책로로 전락했다. 윤정훈 기자
경산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지. 마위지라는 못 주변에 동상과 인공 고분 등을 설치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인근 주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같은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인 경주, 영천, 청도와 연계할 수 있는 안내와 프로그램이 없다. 서광호 기자
경산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지. 마위지라는 못 주변에 동상과 인공 고분 등을 설치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인근 주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같은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인 경주, 영천, 청도와 연계할 수 있는 안내와 프로그램이 없다. 서광호 기자
경산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지. 마위지라는 못 주변에 동상과 인공 고분 등을 설치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인근 주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같은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사업인 경주, 영천, 청도와 연계할 수 있는 안내와 프로그램이 없다. 서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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