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토바이 타고 '드래곤' 잡는 신라 화랑?…3대 문화권 사업 취지 '실종'

[3대 문화권 대해부] 관련성 낮고, 차별성 없고, 텍스트 위주 전시 판쳐
다큐멘터리 영상 캡처본 전시에 그대로 활용하기도
인근 관광지와 방문객 10배 차이… 외면받는 전시관들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화랑설화마을 내 4D돔영상관에서 상영하는 3D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화랑인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중을 날고 있다. 윤정훈 기자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화랑설화마을 내 4D돔영상관에서 상영하는 3D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화랑인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공중을 날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2일 방문한 경북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화랑설화마을 입구. 윤정훈 기자

3대 문화권 사업 관광지 내 전시·체험 콘텐츠 상당수가 식상하고, 애초 사업 취지와 관련성이 떨어진다. 또 유사 사업 간 연계성과 차별성이 부족한 곳들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시기법·기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일찍 준공된 곳일수록 리뉴얼이 시급하지만, 지자체 등 운영 주체들의 의지 부족,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재단장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미래 도시서 오토바이 타는 '화랑'?…관련성 부족 콘텐츠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조성사업'은 경주, 영천, 경산, 청도 등 4곳 시군에 걸쳐서 추진된 3대 문화권 사업 안에서도 굵직한 편에 속한다. 이 4개 사업의 예산은 모두 합쳐 2천억 원에 달한다.

각각 지역 자원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신라 문화권 관광거점 지역으로 육성하고, 신라의 중요 자산인 화랑정신을 체험, 교육, 계승함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교감하는 신개념 전통 문화관광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이와는 달리 매일신문 취재진이 4곳을 직접 방문한 결과 ▷관련성 낮은 콘텐츠 ▷지역 간 연계성·차별성 부족 등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천 화랑설화마을 내 신화랑우주체험관 안에 있는 우주 VR 체험. 윤정훈 기자
지난 12일 방문한 경북 영천시 금호읍에 있는 화랑설화마을 입구. 윤정훈 기자

지난 12일 오전 10시 30분쯤 영천시 금호읍 화랑설화마을을 찾았다. 2020년 개장해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이곳은 일요일인데도 가족 단위 관광객 한 무리만 보일 뿐 한산했다. 입구에서 분수대가 있는 '풍월못' 뒤편으로 걸어가면 원기둥 형태의 신화랑주제관이 나왔다. 주제관은 4D돔영상관, 신화랑우주체험관, 키즈카페인 화랑배움터로 구성됐다.

4D돔영상관에서 상영하는 3D 애니메이션은 무늬만 '화랑'일 뿐 일반 SF 판타지 애니메이션과 다를 바 없었다. '화랑단' 소속 주인공들은 빔을 발사하는 총을 무기로 쓰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미래 도시의 건물 사이를 날아다녔다.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에서도 '화랑'과 관련이 없었다.

경주 화랑마을 내 화랑전시관에 있는 전통놀이 체험 기기. 윤정훈 기자
영천 화랑설화마을 내 신화랑우주체험관 안에 있는 우주 VR 체험. 윤정훈 기자

신화랑우주체험관 역시 화랑과 관련성 적은 체험과 전시가 상당수 차지했다. 기기에 탑승해 VR헤드기어를 쓰고 날아오는 악당들을 총으로 쏴서 없애는 '화랑의 심신훈련'이란 체험은 총을 쏘면서 '드래곤'을 쓰러트리는 등 화랑과 걸맞지 않은 내용으로 구성됐다. 체험관 절반 가까이는 화랑과 관련 없는 우주 콘텐츠로 채워졌다.

화랑설화마을 관계자는 "평일에 방문자가 별로 없고 주말이나 연휴에 가족 단위로 반짝 이용객이 늘어난다"며 "찾는 사람 중 화랑에 관심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을 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다른 3곳에서도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이어졌으며, 화랑만의 매력을 살린 콘텐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주 화랑마을 화랑전시관과 청도 화랑풍류마을 화랑발상지기념관에는 서로 비슷한 전통놀이 체험 기기가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4가지 전통놀이와 관련된 게임을 할 수 있는 체험인데, 경주에 있는 기기엔 '농주'가, 청도엔 '격구'가 있다는 것만 다르고 ▷칠교(조각 맞추기) ▷투호 ▷축국(축구) 등 은 두 곳이 겹쳤다.

청도 화랑풍류마을 내 화랑발상지기념관에 있는 전통놀이 체험 기기. 윤정훈 기자
경주 화랑마을 내 화랑전시관에 있는 전통놀이 체험 기기. 윤정훈 기자
경북 경산시 압량읍에 있는 마위지 근린공원. 서광호 기자
청도 화랑풍류마을 내 화랑발상지기념관에 있는 전통놀이 체험 기기. 윤정훈 기자

사업 초반 계획에는 ▷경주는 화랑도 수련 덕목의 핵심인 '도의를 서로 연마하는' 거점지구로▷영천은 화랑 설화를 연출한 휴양·체험·관람시설로 ▷청도는 심신수양, 화랑무예, 예술을 총괄한 심신수련의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으로 ▷경산은 화랑도 수련공간을 복원하고 전통문화행사를 재현한 공간으로, 각각 나름의 특성이 있었다.

그러나 영천, 경주, 청도 모두 단체가 아닌 개인 단위 이용객이 즐길 만한 콘텐츠는 전시관 관람, VR과 국궁 체험으로 한정돼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경산의 마위지는 사실상 근린공원 수준으로, 평가할 만한 콘텐츠 자체가 실종된 모습이었다.

영주 문수면에 있는 천지인전통사상체험관 내부 전시. 김우정 기자
경북 경산시 압량읍에 있는 마위지 근린공원. 서광호 기자

전문가들은 관광자원 유형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시설 조성에 초점을 맞춰 사업이 추진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응진 대구대 관광경영과 교수는 "관광자원은 크게 자연, 문화, 사회, 산업 등 4가지로 분류되는데 경주, 청도, 영천, 경산이 어떤 유형의 자원에 특화될 수 있는지 연구해 각자의 특색을 살려야 한다"며 "각 지역 상주 직원들의 복장을 지역별로 색깔만 다른 화랑 코스튬으로 통일한다거나, 4개 지역 스탬프 투어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통일성과 연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북 의성군에 건립된 최치원 문학관 내부에 있는 MBC 영상을 활용한 전시. 김우정 기자
영주 문수면에 있는 천지인전통사상체험관 내부 전시. 김우정 기자

◆글자만 한가득…매력 없는 콘텐츠

그런가 하면, 하드웨어 중심의 시대에 뒤떨어진 전시 기법으로 잊혀 가는 전시관들도 많았다.

3대 문화권 사업 중 '신라 본(本) 역사지움 조성사업'으로 지난 2019년 경북 의성군에 건립된 최치원문학관. 203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됐으나 규모에 비해 지루한 전시로 문학관을 다 둘러보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 3월 27일 오전 10시 30분쯤 찾은 최치원문학관 내부는 한산했다. 사무실과 세미나실 등이 들어선 1층, 휴게실과 게스트룸으로 쓰이는 2층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시가 이뤄지는 곳은 지하 1층뿐이었다. 지하 1층은 최치원 선생의 일대기와 필사본 영상자료를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조성돼 있으나 글자가 빼곡히 적힌 패널만 가득할 뿐이었다.

전시된 계원필경, 격황소서 등 최치원 선생이 집필한 책자는 모두 복제본이었고, 영상자료도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최치원 선생 일대기 다큐멘터리의 영상을 활용한 것으로, 최치원문학관만의 차별성이 떨어졌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내부 전시. 윤정훈 기자
경북 의성군에 건립된 최치원 문학관 내부에 있는 MBC 영상을 활용한 전시. 김우정 기자

이를 방증하듯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주요관광지점 입장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최치원문학관 방문객은 7천881명에 그쳤다. 문학관에서 차로 6분 거리에 있는 고운사의 지난해 이용객이 8만9천805명에 달했다. 문학관이 의성에서도 외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용객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다.

문학관 담당자는 "고운사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입장료가 있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분들도 많다"며 "외지에 있다 보니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올해는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이용객 확대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글자 위주의 '무매력' 전시관은 흔하다. 3대 문화권 사업으로 건립된 전시관 대부분이 2020년도 전후로 개장해, 요즘 전시 트렌드에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영주 무섬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천지인사상문화체험관'은 천, 지, 인 3가지 테마로 나눠 역술과 천문 관련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시설은 깔끔했지만, 팔괘, 음양, 사상, 태극 등 생소한 개념에 대한 설명을 넓은 족자 위에 긴 글로 써 놓아 이해하기 어렵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있는 가야산역사신화테마관 내부 전시. 윤정훈 기자

성주 중심지에서 차로 30분 정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쳐야 도착할 수 있는 가야산역사신화공원 테마관도 비슷했다. 2층의 정견모주와 가야 건국 신화를 주제로 조성된 트릭아트존 등 일부를 제외하곤 단조로운 조형물과 글자 위주의 패널 전시가 따분함을 자아냈다. 용바위 전설을 소개하는 블라인드 위엔 원고지 1.9장(공백 제외 280자) 분량의 글이 아래 영문 번역과 함께 빼곡히 적혀있었다.

옆에 백운리 마애여래 입상, 박이현 설화에 대한 소개도 똑같은 방식으로 전시돼있어, 짧은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현대인의 눈길을 끌기에 역부족으로 보였다.

테마관 리뉴얼 계획에 대해 성주군 관계자는 "아직 3대 문화권 사업이 전체적으로 완료되지 않아 각 사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관련 예산이 잡히지 않아 현재로선 리뉴얼 계획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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