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대 문화권 대해부] 보수만 하면 ok? 새로움 없이 방치되는 관광지들

포항 해파랑길, 직접 걸어보니…시설 하자·콘텐츠 부족
청송 솔누리느림보세상 탐방로, 사실상 데크길만 있는 수준
그럼에도 시설 노후화로 보수 비용은 매년 증가 추세

지난 6일 오후 2시쯤 찾은 경북 청송군의 솔누리느림보세상 탐방로는 사실상 나무 데크길만 조성된 수준이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6일 오후 2시쯤 찾은 경북 청송군의 솔누리느림보세상 탐방로는 사실상 나무 데크길만 조성된 수준이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3대 문화권 사업 관광지 가운데 필요한 시설만 보수하고 새로운 콘텐츠 없이 관행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는 보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갈수록 오래된 시설이 많아지면서 '세금 먹는 하마'만 늘어날 우려도 제기된다.

◆해파랑길 18코스…열악한 도보 환경·시설 하자

지난 14일 동대구역에서 오전 10시 4분 출발 기차를 타고 30분 뒤 포항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포항 해파랑길 18코스의 시작점인 칠포해변에 내렸다. 3대 문화권 사업 중 '동해안 연안 녹색길'에 포함된 곳이다.

입구 안내판 옆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인증 스탬프를 획득한 뒤, 오전 11시 42분부터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18.9㎞에 달하는 모든 구간이 데크로 조성된 게 아니었다. 왕복 2차로 도로와 마을 이면도로, 자갈길, 모래밭 등을 걸어야 했다. 6시간 48분 동안 해오름 전망대, 오도리해변, 이가리닻전망대, 월포해수욕장 등 주요 지점을 지나 종점인 화진해수욕장에 다다랐다.

해파랑길 중 간간이 있는 도로 옆을 걷는 구간. 사람 한 명이 통행하기에도 버거울 만큼 폭이 좁아 달리는 차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했다. 윤정훈 기자
해파랑길 중 간간이 있는 도로 옆을 걷는 구간. 사람 한 명이 통행하기에도 버거울 만큼 폭이 좁아 달리는 차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했다. 윤정훈 기자

특히 도로 옆을 걷는 구간은 위험했다. 사람 한 명이 통행하기에도 힘들 만큼 폭이 좁아 달리는 차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했다.

제때 시설 보수가 이뤄지지 못한 채 방치된 곳도 눈에 띄었다. 칠포해수욕장과 해오름전망대 사이 가파른 계단의 경우 기둥이 뽑혀있고 난간 손잡이 일부가 떨어져 추락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월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안내판은 뽑힌 채 쓰러져 있었고, 팻말도 훼손된 상태였다.

즐길만한 콘텐츠도 부족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두루누비' 앱에 소개된 18코스의 볼거리로는 해골바위, 전망대, 방파제 그림들, 벽화 등이 있지만 일부 전망대를 제외하곤 관광객을 유인할 만한 곳이 없었다. 바위는 안내문만 달랑 설치돼있고,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 동물이 그려진 방석리 방파제 그림들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지난달 14일 방문한 포항 칠포해수욕장 근처 해파랑길 입구. 가파른 경사임에도 일부 난간이 없는 등 시설 하자가 발견됐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14일 방문한 포항 칠포해수욕장 근처 해파랑길 입구. 가파른 경사임에도 일부 난간이 없는 등 시설 하자가 발견됐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14일 방문한 포항 칠포해수욕장 근처 해파랑길 입구. 가파른 경사임에도 일부 난간이 없는 등 시설 하자가 발견됐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14일 방문한 포항 칠포해수욕장 근처 해파랑길 입구. 가파른 경사임에도 일부 난간이 없는 등 시설 하자가 발견됐다. 윤정훈 기자

또 다른 문제는 대중교통이 여의찮다는 점이다. 코스 종점인 화진해수욕장에서 버스로 포항역까지 가려면 1시간 넘게 걸린다. 우선 배차간격 40분에 오후 6시가 막차인 송라지선 마을버스를 타고 송라면행정복지센터까지 가야 한다. 거기서 25분마다 오는 5000번 급행버스로 환승해 28개 정류장을 지나야 포항역에 도착할 수 있다.

사실상 택시 이용이 필수다. 이날 매일신문 취재진은 기차비 2만900원(동대구역~포항역 왕복), 택시비 4만9천200원(포항역→칠포해수욕장 1만7천850원, 화진해수욕장→포항역 3만1천350원) 등 교통비로만 7만100원을 지출했다.

포항에서 20년 넘게 택시를 운전한 A(59) 씨는 "주말엔 화진해수욕장 안내판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 종종 있다. 해파랑길을 다 걷고 포항역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운전자도 사고 걱정 없이 운전할 수 있게 해파랑길 일부 차도 구간에 보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포항 월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안내판의 팻말 일부가 훼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윤정훈 기자
포항 월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안내판의 팻말 일부가 훼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윤정훈 기자

포항시는 최근 북구 둘레길 정밀안전점검 용역을 진행하는 등 시설물 보수에 나섰다.

이한국 포항시 걷는길조성팀장은 "경상북도가 올해부터 2027년까지 포항 구간만 국가 지원 지방도 확장공사를 진행하는데, 해파랑길이 포함돼 1m 폭 정도의 노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셔틀 운영 계획에 대해선 "해파랑길에만 운영하기엔 수요가 적어서 어렵다"고 말했다.

◆데크길만 '달랑'·버섯 자라는 기구… 매년 관리비만 눈덩이

'솔누리 느림보 세상 사업'은 경북 청송군의 3대 문화권 사업으로, 당초 달기약수 지구, 주산지 지구, 너구마을 지구, 탐방로 등 4개 사업으로 추진됐으나 지금은 탐방로만 조성돼 있다. 2018년 장난끼공화국을 탈바꿈해 만들어진 달빛예술학교는 요리, 미술, 공예, 예절 다도체험 등이 진행됐으나 코로나19 이후 2021년부터는 사실상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탐방로는 사실상 나무 데크길만 조성된 수준으로, 지난 2016년 6월 준공돼 10년 가까이 흘러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다.

청송군에 따르면 탐방로는 공사비 57억6천만원, 자재비 31억3천만원으로 설치에만 89억원 가량 예산이 투입됐다. 여기에 목재 데크 부패를 막기 위해 도장 공사를 실시하는 데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억620만원을 썼다. 이 비용은 2018년 936만원에서 2019년 1천398만→2021년 3천84만→2022년 2천9만→2023년 3천193만원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운영 수익이 없는 상황에 시설 유지보수를 위해 투입되는 세금만 점점 증가하는 것.

청송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3대 문화권 사업 중에서도 부진한 곳으로 분류됐고, 현재로선 추가 사업 진행 없이 개보수 정도만 담당하고 있다"며 "이미 준공된 탐방로의 경우 청송에 있는 주왕산 주산지 등 인기 관광지와 연계해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 군의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6일 영천 화랑설화마을 내 설화재현마을에 설치된 세속오계 퍼즐 사이 버섯이 자라고 있는 모습. 윤정훈 기자
지난 3월 26일 영천 화랑설화마을 내 설화재현마을에 설치된 세속오계 퍼즐 사이 버섯이 자라고 있는 모습. 윤정훈 기자

지난 2020년 개장한 영천 화랑설화마을 역시 시설 유지·보수 비용이 2020년 4천700만원에서 2021년 9천86만→2022년 1억3천369만→2023년 4억3천765억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4D돔영상관·신화랑우주체험관 유지·보수에 투입되는 바람에 설화재현마을에 대한 관리는 소홀했다. 영천시에 따르면 2020~2023년 설화재현마을 시설의 유지·보수에 집행된 금액은 490만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4D돔영상관과 신화랑우주체험관에 투입된 예산은 1억1천만원에 이른다.

이러한 차이는 시설 상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설화재현마을 시설들의 노후화가 상당했다. 안내판이나 과녁 등 시설물 중 일부는 겉이 벗겨져 녹슨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화랑의 계율인 세속오계를 한 글자씩 맞춰 완성해보는 퍼즐 놀이 기구의 경우 퍼즐이 헛돌았고, 퍼즐 사이에 버섯이 자란 것을 확인했다. 지난 3월 26일 방문 후 이달 12일 다시 찾은 확인한 결과, 버섯은 제거돼 있었으나 일부 퍼즐이 고정되지 않는 문제는 그대로였다.

지난 3월 29일 방문한 고령 대가야생활촌. 이곳에 오두막집 형태로 조성된
지난 3월 29일 방문한 고령 대가야생활촌. 이곳에 오두막집 형태로 조성된 '하늘미술관'은 벽면뿐만 아니라 강아지 조형물, 앉은뱅이 테이블, 큰 테이블 가릴 것 없이 다 낙서에 점령당한 모습이었다. 윤정훈 기자
낙서로 뒤덮인 벽면. 윤정훈 기자
낙서로 뒤덮인 벽면. 윤정훈 기자

아예 방치하다시피 한 관광지는 더 있었다. 지난 3월 29일 방문한 고령 대가야생활촌. 이곳에 오두막집 형태로 조성된 '하늘미술관'은 건물 외벽부터 이용객들의 낙서가 가득했다. 내부는 더 심각했다. 빈센트 반 고흐, 바실리 칸딘스키,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걸린 벽면은 낙서로 뒤덮여 원래 작품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강아지 조형물, 앉은뱅이 테이블, 큰 테이블 가릴 것 없이 다 낙서에 점령당한 모습이었다.

지난 12일 다시 찾은 하늘미술관 입구엔 재단장을 위한 출입제한 팻말이 걸려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12일 다시 찾은 하늘미술관 입구엔 재단장을 위한 출입제한 팻말이 걸려있다. 윤정훈 기자

상주 직원이 없어서 이용객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비치된 그림 도구로 시설물에 낙서를 남긴 것이다. 하늘미술관 관련 민원이 쏟아지자 고령군은 지난달부터 재단장에 나섰다. 지난 12일 다시 찾은 하늘미술관은 외벽의 낙서는 지워진 상태였고, 입구엔 출입 제한 팻말이 걸려있었다.

남중석 고령군시설사업소 팀장은 "학원 등에서 단체로 온 어린 이용객들이 과격하게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이라며 "차라지 '낙서의 성지' 콘셉트로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미관상 좋지 않아 리모델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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