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로 간 사내들 이야기 '노킹 온 해븐스 도어'이다. 이안의 '라이프 오브 파이'도 뤽 베송의 '그랑블루'도 빼놓을 순 없다. 영화에서 바다는 인물의 고난과 모험의 공간이거나 삶과 죽음의 원천으로 사용되곤 했다.
평론가 에리카 발솜의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를 만난 건 거제의 작은 책방이었다. 바다를 터전삼은 도시답게, 그 도시의 책방답게 놓여있던 책. 낯선 이름과 낯선 형식이 눈을 사로잡았다. 영화와 미술의 교차점을 연구하는 저자는 자기 전문 분야인 다큐멘터리를 반영하면서 바다가 스크린에 나타난 많은 방법을 관찰한다. "최근의 실험 다큐멘터리에서 바다가 자주 다뤄지는 경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바다를 다룬 영화의 역사 속에 어떻게 틈입할 수 있는지 궁금증으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일 터.
영화가 바다를 배경으로 선택하는 것과, 바다와 관련한 삶을 영화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발솜이 채택한 바다는 장르영화의 컨벤션이 탄생하는 공간이 아니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 너무 광대하여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세계. 친밀하고 낯선 공간, 이를테면 언캐니(uncanny)의 대상인 바다이다. 때문인지 책은 프로이트와 바르트를 거치고 영화 속 바다의 의미와 확장성을 찾아가는 탐구의 결과물에 가깝다. '영화와 바다'라는 말랑말랑한 수사와 125쪽의 짧은 분량에 혹했다가는 곤혹스런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다섯 개 챕터로 구성된 책에서 흥미로운 건 3장 '연안 노동' 편이다. 연안 노동자의 계급투쟁을 이끌어낸 기록을 소환하는 저자는 1967년 어업협동조합을 가능케 한 포고프로세스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이 작업은 영상을 외부에 전시 관람케 함으로써 타자와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전형이 아닌, 내부에서 소화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제작과 시청과 피드백 과정을 모두 지역민 손에 맡길 때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4장에서는 노예무역선을 다룬 일련의 할리우드 영화들(극소수에 불과함에도)조차 백인의 면죄부 발행에 비중을 두었다고 지적하는데, 저자의 시선이 날카롭다 못해 아프다. 몇 개의 영화와 몇몇 장면으로 부채청산을 했다고 믿고 싶은 미국의 욕심이 알레고리화 된 사례로 보는 관점들. 이 대목에서 할리우드 서부극이 저지른 원죄를 대속하려는 '늑대와 춤을'이 생각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는 너무 늦게 도착했을 뿐더러 너무 많은 상을 받음으로써 진짜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때론 극명하게 갈린다. 루키노 비스콘티 '흔들리는 대지'의 어부들과 미카엘 하네케 '해피 엔드'의 부르주아가 접하는 바다를 대조하며 대양의 쓸모가 현대사회에서 계급과 어떻게 합쳐지거나 파편화 되는지를 드러내는 것, 저자가 다큐멘터리스트라는 점을 배제하더라도 정당한 시선이다.
책의 서문에서 발솜은 런던에서 열린 김수용 감독의 '갯마을' 상영회에 참석했으나 이미 원고가 끝난 후라 다룰 수 없음을 무척 아쉬워한다. 우리 영화를 호명하니 반갑다. 책과 별개로 덧붙이자면, 하인숙의 무진도, 서래의 바다도 기억하자. 이불호청 빨래를 끝낸 고된 몸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던 파이란의 화진포도 잊지 말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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