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13년 집필 '사자성어큰사전' 펴낸 임무출 씨…"마부작침의 결과"

8천여 사자성어 3천200쪽에 담아
'今日=금요일?' 젊은 세대 문해력 키우는 데 도움 됐으면…

지난 4일 대구 한 서점에서 만난 임무출 씨가 최근 펴낸
지난 4일 대구 한 서점에서 만난 임무출 씨가 최근 펴낸 '사자성어큰사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몇 년 전 온라인상에서는 '사흘'의 뜻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한 래퍼가 새 앨범 수록곡 가사를 공개하면서 '하루 이틀 삼일 사흘 일주일이 지나가'라는 표현을 쓴 게 발단이었다. 이를 두고 "나흘과 사흘을 혼동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두고 "어떻게 사흘의 뜻을 모르냐"부터 "'사'로 시작해 '사흘'이 4일인 줄 알았다"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이 같은 젊은 세대의 어휘력 논란은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일례로 한 SNS에 게재된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 말씀'이란 표현을 두고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세요?" "제대로 된 사과를 하세요" "심심한 사과라니,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한데"라는 댓글이 실제로 달리기도 했다. '심심하다'는 '깊고 간절하다'는 뜻이지만 이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 이해한 탓이다.

그밖에도 '고지식하다'는 표현을 '높은(高) 지식'으로 오인하거나,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해 보고서 기한을 잘못 안 대학생이 교수에게 항의한 사연, '이지적'이라는 말에 '제가 그렇게 쉬워 보여요?'라고 반응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 임무출(77) 씨가 펴낸 '사자성어큰사전'은 젊은 세대의 어휘력과 문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책이다. 8천70여개 사자성어를 3천200쪽 분량의 2권의 책에 나눠 실었다.

임무출 씨는 국문학 박사이자 한글학회 회원이다. 2011년 정년퇴직 때까지 43년 동안 진량중고등학교 등에서 국어를 가르쳤고, 이 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20권의 우리말 교양서를 펴냈다.

지난 4일 대구 한 서점에서 만난 임 씨는 "젊은 세대의 어휘력과 문해력 저하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각 한자의 훈(訓)을 바탕으로 직역(直譯)한 뒤 의역(意譯)으로 보완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다. 한자의 훈만 알아도 어느 정도 뜻을 파악할 수 있기에, 이를 통해 어휘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임무출 씨가 최근 펴낸
임무출 씨가 최근 펴낸 '사자성어큰사전'. 박이정 제공

-집필을 시작해 탈고까지 13년이 걸렸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책을 낸 계기가 있나.

▶퇴직한 해 어느 날 밤 꿈을 꿨다. 어린 손주가 책을 읽다가 '미인박명'이란 사자성어의 뜻을 물었다. 잠을 깬 뒤 문득 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정상비약처럼 집에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사자성어 사전이 세상에 필요하겠구나.'

이런 동기로 집필을 시작해 불철주야로 매달렸다. 2019년 10월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고 이듬해 1월 첫 교정지를 받았다. 그때 문득 유래가 있는 사자성어를 찾아 유래를 밝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판사에 작업 중지 요청을 했다. 이 작업을 끝내고 2024년 4월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13년 만이었다. 그 후 1년간의 교정 작업을 거쳐 책이 나왔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자세로 매진했다.

-이 사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사자성어를 직역했다는 점인 것 같다.

▶집필 당시 몇몇 이들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는데 뭐하려고 이런 고생을 하냐"고 물었다. 그럴 때면 인터넷에선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사자성어 자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사실 인터넷에 나오는 자료는 사자성어 유래에 해당하는 원문을 의역해놓은 게 대다수다. 의역은 원뜻의 묘미를 잃을 수 있고 주관적인 번역이 되기 쉽다. 어조사를 제대로 번역하지 않아 원문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사례도 상당수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 부정확한 자료를 사람들이 그대로 옮겨 자료를 재생산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직역을 중심에 둔 사자성어 사전이다. 대부분의 기존 사전이 상황 중심의 의역을 택한 것과 달리, 이 책은 최대한 원뜻의 묘미를 살려 각 한자의 훈을 바탕으로 직역한 뒤 의역으로 보완하는 방식을 취했다. 기존 자료엔 없는 사자성어의 구성도 밝혔다.

지난 4일 대구 한 서점에서 만난 임무출 씨가 최근 펴낸
지난 4일 대구 한 서점에서 만난 임무출 씨가 최근 펴낸 '사자성어큰사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직역이 왜 중요한가.

▶'고기압(高氣壓)'이란 단어를 예로 들어보자. 직역하면 '공기를 누르는 것(기압)이 (다른 곳보다) 높다'는 의미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의역하면 '주위보다 높은 기압', '대기 중에서 높이가 같은 주위보다 기압이 높은 영역'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단어를 직역하면 의역한 것을 몰라도 대충 뜻을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어휘력이나 문해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직역은 시험 때문에 암기해야 하는 것(의역)이 아니라 미래를 푸는 열쇠다. 단어 풀이의 한 단계 발전이고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낸 책을 보면 개인적인 창작활동을 하거나 국문학에 대한 관심 보다는 '국어'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컸던 것 같다. 계기가 있나.

▶1990년부터 1997년까지 계명대학교에서 교양국어를 가르쳤는데 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학생들에게 채만식의 소설 '탁류'를 읽고 리포트를 써오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모르는 말 투성이라며 다른 책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학생들이 모를 만한 단어들이 많았다. 그때 우리말의 위기를 실감했고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채만식 어휘사전' 집필을 시작해 1997년 책이 나왔다.

이후에도 학생과 시민들이 어휘의 중요성을 깨닫고 보다 쉽게 우리말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했고 '김유정 어휘사전', '퍼즐로 배우는 우리말', '순우리말 알아맞히기',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 어휘사전' 등을 차례로 출간하게 됐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한글학회로부터 '국어 운동 공로 표창'도 받았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자성어에 등장하는 인물을 찾아 그 유래와 역사, 문화, 인물 등을 두루 소개하는 '사자성어 인물사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사자성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퍼즐 형식의 '사자성어 알아맞히기' 책을 출간해 사자성어 시리즈를 완성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고사성어와 관련된 책을 내고 싶다. 유래가 있는 사자성어인 고사성어를 따로 떼어내 체계적으로 정리할 생각이다. 출처 기록이 없는 것은 출처를 찾아 수록하고 직역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짚어보면서 언중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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