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SKT 가입자 관리시스템이 해킹됐다.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피해자가 2,3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SKT에 피해자 1인당 10만 원을 보상하라고 권고했다. SKT는 이 조정안을 거부했다. 법원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태도다. 이제 피해자가 보상을 받으려면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 하지만 입증(立證)이 쉽지 않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금산분리(金産分離) 완화와 공정거래법 개정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장이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진 기업집단의 경제적 집중과 협상력 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정책 과제"라고 반박했다. 이 와중에 상속세 통계 논란이 터졌다. 대한상의가 최근 3년 우리나라를 떠난 부자가 2,400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과장된 숫자였다. 대통령이 직접 적절치 않다고 언급했다. 그 직후 대한상의 임원 전원이 물러났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부딪치는 일은 2천 년 전 그리스에도 있었다. 키몬은 아테네에서 가장 부유한 귀족이었다. 그는 매일 저녁 공짜 밥을 제공하고, 밭을 개방해서 누구나 곡식을 가져가게 했다. 키몬은 재산을 활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시민들이 부자에 매수당하는 것을 보며 페리클리스는 공화국의 위기를 느꼈다. 재산이 없던 그는 세금을 거둬서 공무(公務)를 맡은 시민들에게 줬다. 부자의 시혜(施惠)를 세금으로 대체했다.
지금은 고대 그리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권력이 커졌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조차 다음과 같이 거대기업을 비판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불가피하고, 기업을 경쟁에서 보호해야 새로운 기술이 활용된다고 생각한다. 거대기업은 순수한 경쟁의 결과가 아니다. 정치권력의 보호 아래 거대기업이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거대기업은 자본과 노동의 합작품(合作品)이다. 특정 거대기업이 직원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지만, 소비자와 다른 노동자가 그 대가를 치른다.
거대기업에 대한 맹신(盲信)은 기업이 곧 국가라는 망상(妄想)을 낳기도 한다. 제너럴 모터스(GM) 최고경영자 찰리 윌슨은 자신의 장관 임명청문회에서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50년 뒤 GM은 파산했다. 미국은 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그만큼 거대기업의 영향력은 크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주권(主權)이 국민에게 있다. 우리나라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創意)를 존중한다.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공화국과 시장경제, 좋은 말이지만 현실에서 둘은 충돌한다. 공화국에서 한 사람은 한 표를 행사한다. 시장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영향력이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공화국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
미국은 건국 초부터 이 문제를 고민했다.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대규모 제조업이 등장하면 독립적 판단력이 약한 노동자들이 도시를 채워서 시민의식이 저하될 것으로 봤다. 그는 제조업이 아니라 거대기업을 경계했다. 19세기 중반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의 리더는 "머지않아 정부가 기업을 통제할 것인가, 기업이 정부를 통제할 것인가가 문제가 될 것"이라 말했다.
이런 고민은 20세기 초에도 계속됐다. 브랜다이스 연방대법관은 '거대함의 저주'(curse of bigness)를 경고했다. 거대기업은 직접적으로 민주적 제도를 압도하고, 간접적으로 노동자의 시민 역량을 떨어트린다. 문제는 거대기업에 맞서다가 정부 자신이 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괴물과 싸우는 자가 괴물이 되는 셈이다. 경제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거대함'은 공화국을 위협한다.
선거철이 되니 개헌 얘기가 또 나온다. 권력구조 개편은 급하지 않다. 이른바 '1987년 체제'로 정치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됐다. 반면 경제권력에 대해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정부는 세습(世襲)되는 거대기업을 이기기 어렵다. 갈수록 거대기업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공화국에 왕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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