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국가정보원장에 지명했다. 이종석 국정원장 지명자는 대북 유화론자로 북한에 대해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해 온 사람이다.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에 대응할 때 북한 내부의 시각과 논리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북한 체제나 행동을 대한민국 가치 기준 또는 세계 보편적 기준을 적용하지 말고, 북한 내부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북한의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접근할 경우 북한의 불법 핵 개발, 인권 탄압, 3대 세습 등도 정당화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용인(容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꼽힌다. 기본권이 심각하게 제한되고 정치적 반대자들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지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없다. 그럼에도 '내재적 접근법'으로 보자면 이는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가령 집안의 가장이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일삼아도 그 남자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현재의 가난 등 '그 집안의 특수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그 폭력 행위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이 그 아버지를 사랑하고 의지한다고 해서 그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 집안 사정이니 그대로 방치(放置)해야 하나? 북한 정권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애국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독재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종석 지명자는 2017년 한반도 평화포럼에서 "우리에게 북한은 독재국가지만 주민들은 북한에 애국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내재적 접근법은 모든 독재를 용인한다. 흉악 범죄도 용인될 수 있다. 흉악범과 독재자를 이해하기 위해 선량한 시민, 선량한 국가가 얼마나 오래 피해를 감수해야 하나? 내재적 접근법은 상대의 행동 양식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칫 심각한 오류(誤謬)로 외교·안보 참사를 부를 수 있다. 이종석 지명자는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햇볕 정책 실패라기보다) 미국이 우리의 포용 정책을 원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earful@imaeil.com
2025-06-11 19:55:17
[전당열전-조두진] 이재명 정부에는 충신이 많아질까, 간신이 많아질까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행적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이재명 대통령 인사는 다 옳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국무총리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노무현 정부)을 국가정보원장에 지명했다. 김민석 의원은 1985년 5월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의 주동자다. '그가 미국 비자는 받을 수 있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미국과 통상, 관세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대한민국 행정부의 제2인자이자 대통령을 보좌해 정부 운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이 과연 이 대통령이 내건 실용일까? 이종석 국정원장 지명자는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한국 외교 안보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2018년 "(햇볕 정책 실패라기 보다) 미국이 우리의 포용 정책을 원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제주포럼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은 절대 왕조 국가의 군주 특성과 현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을 겸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일-북러중 블록화가 심화된 시점에 이종석 국정원장 지명이 과연 실용과 국익에 도움이 되나? 한미 동맹간 신뢰 균열과 외교·안보·통상에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에서 견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의 첫 인선을 평가해달라'는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이재명 대통령이 하는 인사는 다 옳습니다"라고 말했다. ▶ 황제에게 가감 없이 직언한 배구 중국 당 태종(재위 626-649)이 권좌에 올랐을 때 관리들 사이에서는 뇌물 수수가 만연했다. 앞선 왕조인 수나라 양제 때부터 내려온 악폐가 새 왕조에서도 근절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나라는 수나라 무장 출신인 당 고조 이연(李淵:566년~635년)이 형식상 황제 자리를 선양(禪讓) 받은(강제로 빼앗은) 나라이므로 신하들 상당수는 수나라 시절 관리였고, 수나라 때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뇌물수수가 근절되지 않자 당 태종은 '덫'을 놓았다. 사람을 시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게 하고, 그 뇌물을 받은 사람을 색출하게 한 것이다. 어느 신하가 비단 한 필을 받았다. 태종은 일벌백계(一罰百戒) 차원에서 그를 처형하려고 했다. 이때 호부상서(戶部尙書) 배구(裵矩)가 반대의견을 강력하게 폈다. "관리가 뇌물을 받은 것은 엄히 처벌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폐하가 속임수를 써서 뇌물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짓도록 만들어 벌하는 것으로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란다'는 성현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이 직언을 들은 당 태종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배구를 크게 칭찬했다. ▶ 간신 배구가 충신으로 변한 까닭 배구는 당나라 전신인 수나라의 신하였다. 당시 그는 시종일관 수 양제가 듣기 좋아하는 소리로 비위를 맞추는 간신배였다. 그랬던 배구가 당나라 태종의 신하가 되자 어쩐 일인지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가 개과천선(改過遷善)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나라 양제는 거짓말이라도 듣기 좋은 소리를 좋아하지만, 당 태종 이세민은 귀에 거슬리더라도 나라에 이로운 바른 말을 좋아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군주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냐에 따라 간신도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사법제도 일방적 변경 추진 침묵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겠다는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원조직법이 시행되면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대법원장 포함 대법관 10명을 교체하고, 늘어나는 대법관 16명 등 총 26명을 임명하게 된다.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헌법상 '대법원장 제청' 절차가 있지만,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원치 않는 인사를 제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이유로 1인당 연간 3천 건에 달하는 과중한 업무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상고심 전담 재판부'를 조직하면 될 일이다. 대법관 증원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대법원 구성을 강제 변경하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 대법원 및 여야, 학계와 깊은 논의도 없었다. 민주주의 국가, 법치국가에서 사법 제도의 일방적 변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에서는 자중하자는 목소리가 없다. ▶간신·충신 양산은 군주에 달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을 추구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잠재성장률을 3%로 올리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개혁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성장과 투자를 막는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전국민에게 25만원을 풀거나 기본소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 의료개혁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범위와 방식을 제한하고, 하도급 노동자가 원청 기업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허용하는 '노란 봉투법', 이사회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고, 이사를 선출할 때 소액주주의 입김을 더 많이 반영하는 '집중 투표제도'를 활성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고집하고 있다. 모두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 시키는 법안들이다. 전국민 25만원 지급도 추진할 태세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이를 자제하자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뜻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의 판단과 말이 모두 옳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싫어하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 정부에 충신이 많아질 것인지, 간신배가 득실거릴지는 이 대통령에게 달렸다.
2025-06-11 19:30:00
6·3 대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9.42%)의 득표율 차이는 8.27%포인트였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득표율 8.34%보다 적다. 그래서 김문수-이준석이 단일화했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겠지만, 두 후보가 김문수로 단일화했더라도 승리할 수 없었다.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전부가 김문수 후보에게 올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국민의힘 후보가 되었더라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가 호남 표와 중도 표 일부를 갖고 오더라도 '후보 강제 교체'에 따른 파열음(破裂音)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에 따라 치러진 조기 대선이었다. 국민의힘에는 초대형 악재, 민주당에는 초대형 호재, 정치 진영 색이 옅은 국민들에게는 '심판 선거'였다. 국민의힘 대패가 예견(豫見)된 선거였다. 그럼에도 김문수 후보가 41.15%를 득표한 것은 순전히 그의 '개인기' 덕분이다. 정직·청렴·유능·겸손·강단·순수함이 이재명이라는 사람과 대조(對照)됐던 것이다. 그 덕분에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심판 분위기가 다소 희석되고, 인간 김문수와 인간 이재명 대결 양상을 띤 것이다. 비상계엄에 따른 심판 선거이고 패색이 짙음에도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보수 우파 유권자들이 기권하지 않고, 투표에 적극 참여한 것도 후보가 김문수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민 41.15%가 자신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대선 득표율 41.15%는 인간 김문수에 대한 호평(好評)이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당권 싸움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또 당권 경쟁에 돌입할 것이다. 대선 기간에도 후보를 돕기보다는 당권을 노린 행보를 보인 인사도 있다. 국민의힘은 당권 다툼이 아니라, 상대와 싸울 줄 아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개인의 자리와 당권 싸움에만 골몰한다면 작년부터 이어진 총선 참패, 비상계엄과 탄핵, 대선 참패가 끝이 아닐 것이다. 내년 지방 선거, 차기 총선에서도 패할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치에 건강한 견제(牽制)가 사라지는 것으로 국민과 국가에 큰 해악(害惡)이다. earful@imaeil.com
2025-06-04 20:08:17
[전당열전-조두진] 안철수와 이준석, 뛰어난 장수들의 벼슬 크기가 달라질 까닭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주저 없이 전장에 뛰어든 안철수 6·3 대선전에서 주요 정당의 세 후보를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정치인은 안철수 의원이다. 그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선택 받지 못했다. 함께 경선에 나섰던 다른 후보들이 경선이 끝난 후 당적(黨籍)을 버리거나, 이런저런 조건을 달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지원에 뜨뜻미지근할 때, 안철수 의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어떤 약속도 요구도, 전제 조건도 없이 김문수 후보 지원에 뛰어든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단일화에도 적극 나섰고, 김문수 후보에게 '대통령 임기 단축, 4년 중임제' 개헌안을 제안했고, 김 후보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87체제'를 끝내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 진영의 지지를 끌어내는데도 기여했다. 또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는 "후보 교체 과정의 아픔을 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나서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향해서는 "경선 과정에서 서운한 점이 있었다면 국민과 당원들을 위해 너그러이 풀어주시기를 바란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향한 공격 역시 누구보다 매섭다. ▶실력과 인품 갖췄으나 벼슬 낮아 이광(李廣·?~기원전 119년 사망)은 중국 한나라 때 장수다. 그는 전투에 임했다 하면 이겼다. 전투에 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이장군 열전'은 이렇게 전한다. 「이 장군은 군사를 인솔할 때 식량과 물이 부족한 곳에서 물을 발견해도 병졸들이 물을 다 마시기 전에는 물 가까이 가지 않았다. 병졸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도 음식을 먹었다. 이렇듯 관대하고 까다롭지 않아서 병졸들은 그의 휘하에서 싸우고 싶어 했다. 이 장군은 활을 쏠 때 적이 습격해 와도 거리가 수십 보 안으로 들어오지 않거나 명중시킬 자신이 없으면 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쏘았다하면 적이 고꾸라졌다.」 이처럼 용맹과 인품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광의 벼슬은 낮았다. 황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투에서 싸울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를 몰랐다. 대장군들에게 잘 보이지 못했기에 대장군들은 이광에게 중요한 싸움에서 공(功)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장수가 높은 벼슬을 받는 것은 전투 능력은 물론이고, 중요한 싸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공을 세우느냐에 달렸다. 이광은 싸움에 능했지만 꼭 이겨야 할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 공(功) 세우고 표 받는 것이 정치인 정치인은 평소 유권자들에게 공(功)을 세우고, 선거에서 표로 돌려 받는다. 구군(區郡) 의원 출마자는 그 크기에 맞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출마자는 또 그 크기에 맞는 공을 세우는 것이다. 보수우파 진영의 대권 주자라면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절박하다고 여기는 전투에서 공을 세워야 한다. 안철수 의원은 지금까지 많은 양보를 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자신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했음에도 지지율 5%에 불과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그 양보는 대선 직행을 위한 포석(布石)으로 비춰졌고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 단일화'로 중도 사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로 사퇴했다. 안 의원은 여러 차례 양보했지만 그 공이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양보로 대가를 노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양보한 뒤, 단일 후보의 당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다. 지지층의 눈에 들만한 공(功)을 세우지 못한 것이다. ▶ 싸워야 할 곳에서 싸우는 안철수 그랬던 안 의원이 6·3대선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 의원은 김문수 후보를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전력 차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며 "지금은 대장선(船)을 따를 때다. 그 길만이 승리의 길이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헌신, 모두 하나 된 마음과 행동이다"고 외쳤다. 당내 경선에서 패한 사람이, 자신의 경쟁자였던 후보를 이처럼 혼신을 다해 돕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선에 참가했던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안 의원 역시 국민의힘 당내 경선 과정에서 계파간 이해관계에 따른 앙금을 비롯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김문수 후보의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안 의원은 한마디 말 없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싸워야 할 곳에서 안 싸운 이준석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많은 보수우파 국민들로부터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 압박을 받고 있지만 꿈쩍도 않는다. 국민의힘이 사실상 대통령 후보직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이준석 후보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요지부동이다. 김-이 단일화 여부를 묻는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이 후보는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완주 요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우파 국민들은 이준석의 대선 완주를 보수우파 분열로 받아들인다. 보수우파 유권자들에게는 김-이 후보 단일화가 절박한데, 이 후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준석 후보는 일을 잘 한다. 대선 TV 토론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정치세대교체'라는 국민적 지지도 받고 있다. 능력이 뛰어나고 싸움에도 능하지만, 그는 적어도 6·3대선에서는 싸워야 할 위치에서, 싸워야 할 상대와, 싸워야 할 방식으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 6·3대선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안철수 의원은 싸워야 할 곳에서 싸움으로써 보수우파 국민들에게 큰 빚을 안겼다. 반면 이준석 후보는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절박하게 생각하는 전투에서 아직은 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에 따른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분명하게 할 것이다.
2025-06-03 12:49:39
[매일칼럼-조두진] '고졸 출신'이 영부인이 되겠다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친민주당 성향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서 "김문수 씨가 대학생 출신 노동자로 찐노동자(고졸 노동자 설난영)와 혼인한 거예요. 그러면 그 관계가 어떨지 짐작하실 수 있죠? 김문수 씨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에요, 설난영 씨가 생각하기에는.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런 남자와 혼인을 통해 내가 조금 고양(高揚)되었고, 국회의원 사모님이 되었죠. 남편을 더욱 우러러보겠죠. 경기도지사 사모님이 됐어요. 더더욱 우러러보겠죠. 그런데 대통령 후보까지 됐어요. 원래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온 거예요.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 씨의 인생에서는 갈 수 없는 자리예요. 이제 영부인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뜻이죠"라고 말했다. 인구센서스 자료와 연도별 교육 통계자료를 보면, 대졸 이상 학력자는 1960년 약 2%, 1965년 3%, 1970년 5%, 1975년 7%, 1980년 10%, 1985년 15%를 기록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 진학률이 급증했다. 그 시절, 한국인 학력이 낮았던 것은 나라가 가난하고, 부모가 가난했기 때문이다. 1960, 70년대에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엄청난 '부모 찬스'를 누린 사람들이다. 국가로부터도 혜택을 받았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공부 안 하고 놀아도 대학만 졸업하면 비교적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유시민은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도 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이 진학보다는 노동 현장으로 갔다. 그들이 고등학교·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부모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교육 기회가 현저히 적었다. 많은 여성들은 오빠나 동생의 학업을 위해 희생했다. 그들은 공장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잔업 수당을 벌기 위해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그들이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집으로 돈을 부친 덕분에 고향의 오빠와 동생들은 먹고 입고 공부했다. 그들이 밤을 새워 만든 가발과 고무신과 옷가지와 간단한 기계 부품과 전자 부품은 허약했던 대한민국이 오늘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서는 기초가 되었다. 유시민은 이 모든 헌신과 노력과 성취를 '학력 계급'으로 구분해 모독(冒瀆)했다. 그뿐만 아니다. 유시민은 한 여성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을 그저 남편에게 기대어 '우쭐'하는 수준으로 비하했다. 함께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동반자의 협력을 우열 관계로, 권력 서열 관계로 폄훼(貶毁)한 것이다. 발언이 비판을 받자 유시민은 "계급주의나 여성, 노동 비하 의도는 없었다"면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설 씨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란 내재적 접근법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아는가? 궁예도 울고 갈 '관심법'이다. 해괴한 논리로 또 한 번 여성과 노동자를 조롱한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유시민의 그 이후 발언이다. 그는 "제가 막 비난받는다고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더라. 어제오늘 욕을 먹고 있는데, 이재명 후보가 지난 3년간 당한 거에 비하면 100분의 1도 안 된다. 이런 정도의 비난을 365일 받으며 수년간 살아온 사람이 생각나더라. 그 삶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이 주류가 되는 나라, 이런 자들이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은 아닐 것이다.
2025-06-02 19:59:50
6·3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 격차(隔差)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곧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하는 '블랙아웃 기간(Blackout Period)'에 들어간다. 박지원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25일 "(대선이 임박해지면) 지지율 격차가 5% 미만으로 더 좁혀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필자는 그보다 더 좁혀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선거 하루이틀 전 두 후보 지지율 격차가 3% 정도에서 6·3 대선이 치러질 경우 캐스팅 보트(Casting vote·결정권)는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쥐게 된다고 본다.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전국 득표율은 48.56%,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은 47.83%였다. 윤 후보는 16,394,815표를 얻었고, 이 후보는 16,147,738표를 얻었다. 두 후보의 전국 득표 차이는 247,077표였다. 대구에서 윤 후보는 1,199,888표(75.14%)를 얻었고, 이 후보는 345,045표(21.60%)를 얻었다. 경북에서 윤 후보는 1,278,922표(72.76%)를 얻었고, 이 후보는 418,371표(23.80%)를 얻었다. 두 후보의 승패를 가른 247,077표는 윤 후보가 대구경북에서 획득한 2,478,810표의 10분의 1이 채 안 된다. 당시 윤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대구경북 유권자 10명 중 1명꼴로 투표하지 않았다면 당락(當落)은 바뀌었을 것이다. 사람의 정치 성향은 잘 바뀌지 않는다. 특히 단시간에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뀌더라도 그 숫자는 미미(微微)할 것이다. 다만, 여러 이유로 투표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아 선거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현재 대구경북 선거 열기(熱氣)는 지난 20대 대선에 비해 뜨뜻미지근하다. 김문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많이 뒤처지는 것도 대구경북이 뜨겁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대선 당시 대구 투표율은 78.7%, 경북 투표율은 78.1%였다. 이대로 대선이 진행돼 대구경북 투표율이 75% 이하로 떨어진다면 이재명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대구경북 투표율이 79%를 넘는다면 김문수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얼마나 투표에 참여하느냐가 이번 대선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earful@imaeil.com
2025-05-26 19:43:31
6·3 대선을 2주 정도 앞두고 있지만 국민의힘 기류는 혼연일체(渾然一體)로 보기 어렵다. 어떤 의원들은 김문수 후보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어떤 의원들은 김 후보가 당내 경선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와 즉시 만나 단일화를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시간을 끌며 미룬 것)에 대한 후유증 때문에…. 국민의힘 당원들과 보수 우파 국민들 중에서도 그런 이유로 김 후보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입장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런 유권자 중 한 사람이지만, 최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선 지원 유세에 뜨뜻미지근한 상황에서 안 의원은 선뜻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유세(遊說)에 뛰어들었다. 당내 분위기와 관련해 며칠 전 안 의원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혼자 대장선을 몰고 나가 133척의 왜군과 싸웠는데, 지금 김문수 후보의 모습이 그렇게 고독해 보인다. 이순신 장군 뒤에는 결기(決起)를 잃은 장수들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보수 우파 지지층의 뜨뜻미지근한 김문수 지지를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안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이다. 김 후보와는 탄핵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이다. 당내 경선 과정에 나타난 계파 간 이해관계와 관련해서도 안철수 후보의 한(恨)이 다른 후보들보다 깊으면 깊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의원은 "지금은 대장선인 김문수 후보를 따를 때"라며 압도적 화력의 '적 함대'를 향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장수로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책임과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한 전 국무총리와 아름답게 단일화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수 우파 유권자들의 아쉬움과 우려가 크다. 투표할 마음이 없어졌다는 사람들도 있다. 김 후보는 이 점에 대해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뜨뜻미지근한 유권자들과 당원들을 격동(激動)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 당원들과 보수 우파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안철수'가 된다면 어떤 싸움인들 두렵겠는가. earful@imaeil.com
2025-05-19 20:24:04
6·3 대통령 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이번 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선다. 하지만 이 판세가 대선일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速斷)이다. 격차는 상당히 좁혀질 것이다. 현재 크게 앞서감에도 이재명 후보가 '이삭 줍기'에 총력전을 펼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구미 유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칭찬, '낭만의 정치인 홍준표를 기억하며'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 등이 바로 '이삭 줍기'다.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 승부는 3요소, 즉 구도, 바람, 인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현재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구도는 막판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4명의 군소 후보들이 있지만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요 세 후보의 인물됨 역시 대다수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다. 상대방의 인간적 단점을 공격한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터진들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선거 승부를 가르는 3요소(구도, 바람, 인물) 중 이번 대선에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바람'뿐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르는 선거다. 민주당이 줄곧 '내란 종식'을 외치는 것도 이번 선거를 '심판 선거'로 묶어 두기 위해서다. 이 프레임을 바꾸지 못하면 김문수 후보는 이길 수 없다. 이재명 후보는 지지층이 견고하지만, 반대층도 견고하다. 김문수 후보가 승부수를 던져야 할 대상은 정해져 있다. 이재명 후보에 반대하는 세력, 그러나 김문수 후보도 탐탁지 않다고 여기는 유권자들을 얼마나 격동(激動)하느냐가 관건이다. 김문수 후보 입장에서는 이번 대선을 곪을 대로 곪은 '정쟁 정치 종식'으로 몰아가야 한다. 1년 365일 싸움만 일삼는 구태 정치를 일소하기 위해 '임기 내 분권형 개헌(대통령-총리, 중앙-지방)'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개헌 세력 대 반개헌 세력의 결전, 대한민국 정치를 확 바꾸자는 세력과 정쟁 정치를 고집하는 세력 간의 결전으로 몰아가는 것 외에 현재 추세를 돌릴 방법은 없다고 본다. 단지 몇몇 신선한 공약으로 이재명도 싫고 김문수도 별로라는 유권자들과 제3지대 정치세력의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 earful@imaeil.com
2025-05-14 20:14:48
[전당열전-조두진] 눈앞의 분란과 갈등 피하자고 법원이 법치를 포기하나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법원 판결을 정치권이 처벌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재판이 줄줄이 대선 이후로 연기됐다. 이 후보 5개 재판 중 3개(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대장동 재판, 위증교사 항소심 재판)가 대선 후로 밀렸고, 준비기일 절차 중이라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과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 만 진행 중이다. 법원은 재판을 연기하면서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라고 했지만, 실은 민주당의 거센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은 3차 내란, 사법테러로 규정, 조희대 대법원장 자진 사퇴, 국정조사, 탄핵을 주장했다. 조 대법원장에게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라고도 했다.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자 '조희대 특검법'을 발의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정치권이 대법원장을 상대로 특검법을 발의하거나 탄핵하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 공직선거법 상고심을 신속히 재판한 것을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하지만,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재판을 질질 끌어온 것은 이 후보와 민주당이었다. '6·3·3 원칙'에 따라 1년 안에 끝냈어야 할 재판을 2년 7개월이나 끌어온 것이다. 그런 상황임에도 파기환송심 법원은 이런 잘못을 바로 잡기는커녕 재판을 미뤄 버렸다. ▶ 신속한 재판이 정치 중립 위반? 전국 법관 대표들이 오는 26일 임시 회의를 열고 대법원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신속하게 파기환송한 것이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은 아닌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권의 공격이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지도 다룬다고 하지만 무게는 대법원 비판에 실린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유력 정치인 재판을 질질 끄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모를까, 신속재판이 어째서 문제라는 말인가? 공직선거법의 취지는 '선거법을 위반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공정한 선거를 치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반칙을 저지른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공직선거법의 목적이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선거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재판을 미루는 것이 공정하고 법 취지에 맞다는 말인가? 당장의 혼란과 갈등을 피하려고 법원이 법치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 ▶ "반대 의견으로 화합 해치지 마라" 일본의 미국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이 일본 패배로 끝나고, 도쿄 전범재판이 열렸다. 일본의 제40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육군대신 겸 육군참모총장으로 태평양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도조 히데키(1884년 12월 30일 ~ 1948년 12월 23일)가 법정에 섰다. 그의 변호사는 도조 히데키가 미-일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이렇게 변호했다. "후퇴하거나 공격을 주저하면 부하들을 통솔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 하지 말자거나, 전쟁을 중단하자는 주장을 내면 군부 내의 화합을 지킬 수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도조 히데키 맞춤형 변명인 측면도 있다. 일본 해군은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반대했다. 하지만 '육군과 해군의 화합' 이라는 깨지 말아야 할 불문율, 정치권과 언론의 '하나된 일본' '대일본 제국의 영광' 이라는 논리에 묻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1884년 4월 4일~1943년 4월 18일)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유학했고,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다. 그는 미국이 기습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협상에 나서기는커녕, 압도적 경제력을 바탕으로 거세게 보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일본이 실익도 없는 중일전쟁(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쟁을 질질 끌었던 것도 내부 불화를 금기시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어느 군 지휘부가 '중국에서 철수'를 주장하면 철수에 반대하는 다른 지휘부와 충돌이 불가피하고, 내부 '화(和·화합)'를 깨뜨릴 것이 두려워, 장차 큰 화(禍)를 부를 줄 알면서 침묵한 것이다. ▶ 혼란·갈등 각오하고 원칙 지켰어야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이 예정대로 5월 15일 열리고,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대법원이 재상고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확정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선거 비용 낭비는 물론, 국정 공백과 극심한 정치 혼란, 나아가 준 내전 상태에 가까운 국민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판을 일정대로 진행했었어야 했다. ▶ 화(和)가 화(禍)로 번질 가능성 커 재판을 연기함으로써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데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사실상 최종 유죄 선고만 미뤄진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선거 다음 날부터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합법성과 정당성을 놓고 온 나라가 들끓게 될 것이다. 물론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민주당이 이 후보 재판을 중단하거나 면소(免訴)하는 법안을 만들고, 이재명 대통령이 곧바로 의결해 사법 리스크를 떨쳐버릴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미 '피고인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법원은 임기 종료 시까지 재판을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 법사위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이 후보가 재판받고 있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죄를 무력화하는 법안도 발의했고, 14일엔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켰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법으로 자신이 받고 있는 재판을 무력화할 경우 이 후보는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겠지만, 대한민국 법치는 무너진다. 눈앞의 분란과 다툼을 피하자고, 대한민국에 치명적인 화(禍)를 초래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층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라가 나라가 아닌 꼴로 가고 있다. 참 기이하다.
2025-05-14 19:30:00
6·3 대통령 선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의 단일화를 놓고 국민의힘에서 파열음(破裂音)이 나오자 보수·우파층에서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단일화에 시간을 좀 갖자'는 김 후보를 향해 "한덕수 후보와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기에 경선에서 지지했다. 본인이 한덕수가 아니라 김덕수 등 누구라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앞장서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壓迫)한다.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김 후보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떤 스토리를 만드느냐에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자마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곧바로 "김문수 후보는 한덕수 후보와 며칠 안에 단일화해라"는 식으로 요구한 것은 온당치 않았다. 김 후보와 한 후보가 경선을 통해 단일화할 리는 없고, 여론조사로 결정할 것이다. 현재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가 김 후보에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여론조사로 단일화하라는 것은 김 후보에게 대선 후보 자격을 한 후보에게 넘기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는 국민의힘이 자신들이 선출한 대선 후보를 '바지 후보'로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당 지도부 주도의 '김문수-한덕수 단일화'는 컨벤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런 방식으로 한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한덕수는 국힘 지도부의 아바타'라는 공격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 안에 단일화한다면 가장 좋다. 그렇더라도 단일화 시점을 당 지도부가 정하는 것은 사리(事理)에 맞지 않고, 전략적으로도 좋지 않다. 김 후보의 결단에 맡겨야 한다. 현재 지지율에서 밀리는 김 후보에게 빅 매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김 후보는 너무 늦지 않게, 비록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일 후보 결정전에서 김문수-한덕수 어느 쪽이 이겨도 본선에서 필패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단일화가 아니라 두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단일화해야 감동 스토리가 나온다. 하루이틀 먼저 단일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스토리를 만드느냐가 관건(關鍵)이다. earful@imaeil.com
2025-05-07 20:05:20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을 5월 1일 선고한다. 보수·우파 국민들 중에는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를 낙마(落馬)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번 상고심에서 파기자판(2심 무죄 판결을 깨고 대법원이 직접 유죄 판결함)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본다.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냄)하더라도 재판에 몇 달이 걸리고 이 후보가 6·3 대선에서 승리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공중분해될 것이다. 필자는 '힘센 정치인 재판'과 관련해 사법부(司法府)가 스스로 독립을 포기했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25일 '이재명 위증교사 사건' 1심 재판부가 "위증은 있었으나 위증교사는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나, 올해 3월 26일 공직선거법 2심 재판부가 1심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것을 보면서 말이다. 녹음 파일, 동영상 증거가 명백함에도 해괴한 논리로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것으로 법원이 오직 법률로,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판단할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법원에 기대는 것이 백일몽(白日夢)이듯, 6·3 대선에서 이 후보의 대장동·백현동·성남FC·대북송금, 형수 욕설, 전과(前科), 숱한 말 바꾸기, 포퓰리즘, 불안한 외교·안보관 등을 아무리 물고 늘어져도 헛일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중 1, 2개만 문제 되어도 낙마하겠지만, 이재명은 끄떡없다. 역설적이게도 워낙 흠이 많기에, 흠이 흠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몰랐던 이 후보의 또 다른 문제가 터지더라도 그는 타격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수·우파가 이길 수 있다. 6·3 대선을 '정치 혁명', 즉 현재 정치와 미래 정치의 결전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실패해야 야당이 승리하는 구조, 야당을 밟아야 정부·여당이 사는 구조, 지지고 볶으며 국민 분열과 갈등을 자양(滋養)으로 살아가는 '저급한 정치'와 '새로운 정치'가 격돌하는 대선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시작은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결별하는 개헌이다. 6·3 대선을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하는 개헌을 화두(話頭)로 어떤 정치를 펼치고,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earful@imaeil.com
2025-04-30 19:47:07
[전당열전-조두진] 국민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먹겠다면 도리 없다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무조건적 이재명 후보 지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전국 순회 경선에서 89.77% 득표율로 6·3대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여야의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및 당 대표 선거를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2022년 이재명 후보가 처음 민주당 대표가 됐을 때만 해도 당 지도부에 '비(非)이재명'계가 있었지만 지난 총선 때 비명계가 대거 공천 탈락하고 강성 친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민주당 내에 이 전 대표를 견제할 세력은 사라졌고, 이재명 일극(一極) 체제가 완성됐다.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후보의 잦은 말 바꾸기와 막말, 숱한 범죄 혐의와 전과(前科), 위험해 보이는 외교·안보관, 무리한 법안 밀어붙이기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꺼리기는커녕 그의 모든 언행을 추종(追從)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지층의 평가가 이러하니, 이 후보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엇비슷한 행보(行步)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중도층 공략을 위해 '우 클릭'하고 있지만 말이다. ▶ 허벅지 살을 베어 배를 채운다 "군주의 도리는 백성을 먼저 보살피는 데 있다. 백성을 착취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배를 채우는 것과 같다. 당장은 배가 부르지만 몸이 약해져서 곧 죽게 된다." '정관정요(貞觀政要)' '군도(君道)'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관정요'는 중국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당태종(재위 626-649)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 중 정치에 관한 부분을 당 태종 사후에 오긍(吳兢:670~749)이 정리한 책이다. 나라를 바로 이끌기 위한 그들의 고민과 방식이 담겨 있다. 당나라 때는 황제가 나라의 주인으로 최고 권력을 휘둘렀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군주'인 셈이다. 국민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한국 국민은 4년 마다 국회의원을, 5년마다 대통령을 갈아 치우는 막강한 권력자다. 자기 주도로 권력을 행사하는지, 정치인에게 놀아나는지는 모르겠지만. ▶ 군주·국민을 속이는 간신배들 군주가 주인이던 시대에 군주에게 아첨하거나 군주를 속이는 신하들이 있었듯,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 포퓰리스트들, 모리배(謀利輩)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달콤한 말과 거짓 비전, 거짓 통계로 국민을 현혹한다. 이때 군주와 국민이 현명하게 살펴서 제대로 판단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군주가 간신에게 놀아나듯, 국민 역시 정치인에 놀아난다. 문재인 정부가 주택·소득·고용에 관한 통계를 조작·왜곡해(감사원 감사결과)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것이 그런 예다. 과거 군주들 중에는 "백성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자"는 간신배의 말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당장 편하고,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기에 그 말에 따른 자들이 있었다. 간신배와 군주가 그렇게 뭉친 나라는 어김없이 망조(亡兆)가 들었다. ▶ 간신이 국가 멸망 부르지 않는다 국민들 다수는 정치인의 감언이설이 종국(終局)에는 나라와 국민을 말아 먹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당장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에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가 망하면 고생과 치욕은 물론, 목숨도 위태롭지만 당장 편하고 달콤한 길을 가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모리배와 정치 포퓰리스트가 존재했다. 하지만 단지 몇몇 정치 포퓰리스트들, 몇몇 모리배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없었다. 현명한 군주가 그들을 견제하고 내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몇몇 정치 포퓰리스트가 나라를 말아 먹을 수는 없다. 현명한 국민이 나쁜 정치에 철퇴를 내리면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군주)이 달콤한 말에 귀 기울이면 '남미(南美)' 꼴이 난다. ▶ 허벅지 베어 먹는 달콤한 법안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논란 많은 법안을 마구 밀어붙였다.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한덕수·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한 거부권을 합하면 42회나 된다. 그 중 경제 관련 법안만 보자.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신설한 '상법 개정안', 이는 경영진이 투자를 결정했는데, 그 투자로 인해 재무 상황이 악화돼 단기적으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주들이 "회사가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회사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꺼릴 것이다. 또 13조원이 투입되는 '전국민 25만원 지원법'과 시장에서 남는 쌀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고, 채소 등 가격 하락으로 발생한 생산자 손해를 국가가 보전(保全)해 주는 내용을 담은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 등)'이 그런 법안이다. 요즘 쌀 농사는 거의 100% 기계화 되어 있다. 양곡법이 통과되어 가격과 판매가 보장된다면 농민들은 쌀 생산을 줄이기는커녕 늘릴 것이다. 쌀은 더욱 과잉 생산되고, 자급률이 매우 낮은 콩·밀 등은 여전히 농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이런 법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먹고 배를 채우는 법'이 아니면 무엇인가. ▶ 尹은 불통이고 李는 소통? 윤석열 정부 당시 민주당 지지층과 많은 친야(親野) 언론은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런 불통 대통령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지금과 같은 법안을 고집할 경우), 우리는 농민과 소액 주주와 국회와 훌륭하게 소통하는 대통령을 얻는 대신, 국가의 쇠락을 목도(目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군주) 다수가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말이다. 군주(국민)와 신하(정치인)가 한 뜻이 되어 '제 허벅지 살'을 베어 먹겠다면 도리 없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제 허벅지 살을 베어 먹고 "배 부르다"며 흡족해하는 국민에게 닥칠 미래는 하나 뿐임을.
2025-04-30 15:22:59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대통령 궐위(闕位)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권한 행사를 헌재가 막았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責務)를 진다'고 규정한다.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대통령과 꼭 같이 헌법 수호 책무를 진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리 없다. 헌재는 헌법기관이다. 한 권한대행의 헌재 후보 지명은 헌법재판소 기능 정상화라는 헌법 수호 행위였다. 이것은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원식 국회의장과 변호사 1명이 문제 삼았고, 헌재는 이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아직 본안 판단이 남아 있지만, 효력 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사실상 6·3 대선 전에 헌법재판관 임명은 물 건너갔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가 야권의 비판과 헌재 결정에 의해 막힌 것이다. 헌법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다. 이는 권한대행의 권한이 대통령 권한과 동일하다는 말이다. 헌재는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에 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지명·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류의 명제(命題) 외에 세상에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정할 수 없다'는 식의 판결은 '무엇이든 해석하기 나름이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법 조항'이 아니라 '해석'과 '평가'로 결정할 것 같으면 법률 전문가인 판사가 재판할 필요가 있나. 세상 경험 많고 현명한 사람이 재판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충격이었다. 당시 재판부가 들고나왔던 "직무 유기, 협박 발언은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나, 헌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지명·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논란이 큰 정치적 사건에 대해 법원은 판단하지 않겠다'는 말, 또는 '힘센 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13세기 이전 중세 유럽에서 횡행(橫行)했던 '결투 재판'은 민사·형사 사건의 유·무죄를 '결투'로 가린 것이다. 이긴 자는 신(神)이 선택한 자이므로 옳다는 논리였다. 작금(昨今)에 법원과 헌재의 판결을 보면 그 야만적 재판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활한 것 같다. 헌재의 효력 정지 가처분 9대 0 인용이나 동영상과 녹음 파일 증거가 있음에도 이 전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무죄, 위증교사 1심 무죄 선고 등이 그런 예다.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사실상 '무죄 선고'나 다름없다. 6·3 대선에서 이 전 대표가 승리하면 그의 '허위 사실 공표죄'는 공중분해될 테니 말이다. 대법원의 '책임 회피'라고 본다. 재판부가 어떻고, 법률이 어떻고, 법관의 양심이 어떻고… 해 봐야 공허(空虛)하다. 21세기 한국에서 정치 관련 재판은 중세 유럽의 '결투 재판'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이긴 자가 옳다. 선거에서 지면 찌그러지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하시라. 투표만이 이 모든 무법 같은 사태를 정리할 수 있다.
2025-04-28 20:16:38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 재위(1724년 10월~1776년 4월) 무렵 서양에서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발생했고, 백과전서(과학·예술·기술 사전)를 펴내고 있었다. 그렇게 축적(蓄積)한 지식과 에너지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진출했다. 조선 관상감 김태서가 북경에서 사비(私費)로 망원경을 구입해 영조에게 바쳤다. 이 망원경은 빛을 차단하는 효과(렌즈에 색을 넣음)가 있어 태양을 관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조는 김태서가 올린 망원경을 보더니 화를 내며 때려 부쉈다. 영조가 망원경을 부순 이유는 이랬다. "해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태양을 관찰하는 망원경을 '과학'으로 이해하지 않고, '왕을 엿보는' '왕의 권위를 침해하는' 불경스러운 물건으로 이해한 것이다. 1745년 일이다. 당시 서양에서 망원경은 별들의 구체적인 모양이나 운행을 탐구하는 도구였지만, 영조 임금에게는 왕의 권위를 침해하는 불경스러운 기구로 보였다. 하나의 망원경이 세계관에 따라 미지(未知)의 영역을 탐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부숴 없애야 할 요물이 되기도 한 것이다. 18세기 조선 통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 의학자가 서양에서 들어온 인체 해부도(解剖圖)를 보여 주며 장기(臟器)를 설명했다. 이에 조선 통신사 일행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열어 봐야 아는 것은 소인배이고 군자는 열지 않아도 안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열심히 탐독하면 세상만사를 다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안 보고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니 1871년 조선 고종이 환절기 건강 관리를 위해 어의(御醫)의 처방을 받아 어린아이의 똥오줌을 먹고 '몸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6·3 대선 예비 후보 중에 국제 흐름에 정통한 후보가 한 사람이라도 있나? 대부분 '싸움 기술자' 아니면 국내 정치만 아는 인물 아닌가.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재벌 해체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후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국민의 성실·노력·창의성을 북돋우기는커녕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후보…. 이들이 망원경을 때려 부순 영조 임금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earful@imaeil.com
2025-04-23 20:13:16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대선 후보를 권리당원 투표 50%와 일반 국민 여론 조사 50%를 합산해 선출하기로 했다. 지난 19·20대 대선에서 권리당원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선거인단을 모집해 '국민경선'을 실시했는데, 이번에 권리당원에게 50%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경선 룰을 바꾼 것이다. 이에 대해 김두관 전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저버리고 배제했다"고 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민주당 원칙인 국민경선이 무너진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경선 룰을 바꾼 것은 기존 방식대로 선거인단을 모집할 경우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역선택'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현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경선을 하더라도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룰을 바꾼 것은 '눈곱만큼의 위협 요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민주당은 2024년 6월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일 1년 전 사퇴해야 한다는 기존 당헌(黨憲) 조항에 예외를 두는 개정안을 만들었다. 당시는 2027년 3월 대선을 염두에 둔 상태였다. 기존 당헌대로라면 민주당 대표는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2026년 3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이 전 대표는 2026년 6월 열리는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권을 휘두르기 어렵고 당 장악력이 약화된다. 이를 막기 위해 당헌을 바꾼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 대표 뜻에 반(反)하는 의원들이 대거 공천 탈락했다. 비명계의 비판이 거셌지만 이 전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면 이 전 대표와 측근들의 사법 문제를 변호·관리했던 율사(律士)들은 금배지를 달았다. 이처럼 이 전 대표는 비판이나 원칙을 무시하고, 경선 룰이나 당헌도 '이재명 맞춤형'으로 고친다. 룰도 당헌도 이 전 대표를 위한 '도구(道具)'에 불과한 것이다. 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법을 자신에게 맞추는 셈이다. 그런 이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의 훌륭한 도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국민의 도구'가 될지, 그 말조차 '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21세기 한국의 슈퍼 울트라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라는 점은 분명하다. earful@imaeil.com
2025-04-16 20:15:32
[전당열전-조두진] 싸웠다가 크게 질까 두려워 무난히 지는 쪽을 택하는 국민의힘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악착 같은 야권과 그 지지층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대 0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심리 시작부터 속도전을 펼쳤다. 하지만 2월 25일 변론을 종결하고 38일이나 지나 선고했다. 탄핵에 찬성하는 재판관 숫자가 6명이 되지 않아 선고 기일을 빨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탄핵 인용 5대 기각 3 구도가 고착 상태라는 추측이 나돌자 더불어민주당은 마은혁 헌법 재판관 후보 임명을 강하게 압박했다.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마은혁을 임명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직무복귀하자 역시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바로 재탄핵에 들어가겠다"고 겁박(劫迫)했다. 다음 순위 국무위원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승계할 경우에도 "마은혁 재판관을 즉시 임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따박따박 탄핵하겠다"고 공언했다. 헌법재판소를 향한 공격도 거셌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보수·중도로 분류되는 정형식, 김복형, 조한창 헌법 재판관의 실명을 콕 집어 거론하며 "을사오적의 길을 가지 말라"며 터무니 없는 말을 퍼부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야권이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입장인 헌법재판관을 개인 문제로 협박했다는 설(說)도 파다(播多)하다. 그야말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몇몇 의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대통령 탄핵심판을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심지어 자기 당 소속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인물이 그 후임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후보로 나서도 그러려니 한다. 나경원 의원만 이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다. ▶ 흉기를 든 자에 대처하는 법 일본 센코구시대(戦国時代) 최후 승자이자 에도막부(江戸幕府)의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년~1616년)가 아직은 세력이 약할 때였다. 미카와(三河) 지역(지금의 아이치 현 동부)의 작은 성(城)의 성주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성 밖으로 나간 사이, 한 남자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이때 도쿠가와의 부하 중 한 명이 난동을 피우는 남자를 맨손으로 제압해 꽁꽁 묶었다. 사람들은 "성주님이 돌아오시면 큰 상을 내릴 것" 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했다. 얼마 후 성으로 돌아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초지종을 들은 후 난동꾼을 제압한 남자를 크게 꾸짖고 성 밖으로 추방했다. 큰 상을 내릴 줄 알았던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쿠가와가 그 용감한 사나이를 꾸짖고 추방한 이유는 이랬다. "상대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면, 그 흉기에 맞설만한 무기를 들고 난동꾼을 제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자는 자신의 힘과 용맹을 믿고 맨손으로 난동꾼에 맞섰다. 요행이 제압에 성공했지만 대단히 무모한 짓이었다. 자칫하면 자신이 죽거나 다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런 자를 벌하지 않고 큰 상을 내린다면, 앞으로도 이런 무모한 자가 속출할 것이고, 장수들은 전투에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자신의 용맹을 믿고 돌진해 부하들을 모두 죽게 할 것이다." ▶ 싸움 발생하면 어물쩍 물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에 반해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승복은 윤석열(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탄핵이 기각되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공식 천명해야 한다. 불복·저항 선언으로 위헌 릴레이를 멈춰 세우자"고 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만 대조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심판에서 헌법재판관 8명 중 7명이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냈다. 하지만 우리법 연구회 출신 정계선 재판관은 '파면' 의견을 고집했다. 한덕수 대행을 파면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었나? 그럼에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당초 '탄핵 반대' 입장으로 알려졌던 보수·중도 재판관들이 다수 의견에 동참해버린 것과 대조적이다. 국민의힘과 보수·우파의 태도가 이렇다. 싸움이 한창인데, 체면·윤리·양심을 찾거나 한 대도 맞기 싫다며 물러선다. 그러니 항상 질 수밖에. ▶ 신사의 언어 VS 깡패의 주먹 한국에서 보수·우파 리더들이 여차하면 물러나고, 진보·좌파 리더들이 악착 같이 싸우는 것은 좌파 진영은 격렬하게 싸우는 이들에게 보상을 주지만, 우파 진영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걸핏하면 '극우' '반민족' 프레임을 씌우는 데, 이때 보수·우파 정치인들은 공격 받고 있는 동료를 돕기는커녕 '자신도 공격 받을까봐' 손절해버린다. 싸웠다가 크게 패할까봐 두려워 무난히 지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1950, 6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허약하고, 불결했던(위생적으로) 대한민국을 이만큼 부유하고 강하고, 깨끗한 나라로 만든 것은 보수우파의 가치(더 많이 성장하자) 덕분이었지, 진보좌파의 가치(더 많이 나누어 쓰자) 덕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충돌이 발생하면 보수우파 리더들이 어물쩍 물러서니 많은 국민들이 보수우파가 '정당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오해한다. 국민 다수가 보수우파 가치의 정당성을 의심한다면 우리나라는 좌경화되기 마련이다. 나라가 쇠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외부 적보다 내부 적이 훨씬 위협적이다. 한국 좌파는 격렬한데, 우파는 안이하고 기회주의적이다. 좌파는 선동 언어로 속이는데, 우파는 논리로 설명한다.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대중이 간단한 선동에 끌리겠나, 복잡한 논리에 끌리겠나. 흔히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싸움판에서 펜은 칼을 이기지 못하고, 신사의 언어는 깡패의 주먹을 이길 수 없다. 상대가 무기를 들면, 나도 무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늘 패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2025-04-16 20:12:57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罷免)했다. 헌재는 2월 25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종결하고 38일이나 선고를 미뤘다. 세간에는 탄핵 찬성 5대(對) 반대 3 구도가 고착(固着) 상태였다는 추측이 많았다. 그렇다면 5대 3으로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선고기일을 잡지 않고 버텼고, 더불어민주당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라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겁박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탄핵 반대 입장이던 헌법재판관 3인 중 1명이 인용 쪽으로 돌아섰다는 설(說)이 파다(播多)하다. 탄핵 반대 입장인 3명 중 1명이 찬성으로 돌아서자 나머지 재판관 2명도 돌아섰다는 추측이 많다. 어차피 대통령 탄핵을 막을 수 없으니 국민 간 충돌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8대 0 만장일치에 동의했다는 분석이다. 그 분석이 맞는다면 헌재는 '사법 독립'을 포기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를 '전체주의(全體主義)'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만든 결정이기도 하다. 헌법재판관 6명이 탄핵에 찬성하더라도 반대 입장이었던 2명은 소수 의견을 냈어야 했다. 이는 단순히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을 위로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수 편과 생각이 다를 때 소수가 질서와 평화를 위해 자기 생각을 거둬들이는 것이 일상이 되면 전체주의 사회가 된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탄핵소추는 정치인들에게는 정쟁(政爭)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지지와 반대의 감정 대립이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의 재판이라면 정치적 사건 역시 철저히 사법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 불안 속에서도 사법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또 그래야만 국민들이 정치적 지지 여부나 감정 대립을 넘어 판결의 법적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탄핵 반대 재판관들이 반대 사유를 명시해야 찬성 사유 또한 선명(鮮明)해진다는 말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인용할 사유도 많았고, 각하·기각해야 할 사유도 많았다. 헌재 재판관들은 그중 탄핵 인용 편에 섰다. 탄핵 반대 국민들이 이번 판결을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야 할 사유'를 납득할 만한 근거로 돌파하지 않고 8대 0이라는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뭉갰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5-04-09 19:58:10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4일로 지정했다. 4일 나올 탄핵심판 결과와 무관하게 헌재의 1일 '선고기일 지정'이 더불어민주당을 구했다고 본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자 민주당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3월) 30일까지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바로 재탄핵에 들어가겠다. 모든 국무위원들 역시 권한대행에 승계(承繼)될 경우 마은혁 재판관을 즉시 임명하라.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즉시 탄핵하겠다"고 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한 권한대행을 향해 "4월 1일까지 헌법 수호 책무(責務)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중대 결심을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아무것도 따지지 않겠다'고 나온 것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기대와 다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자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고는 대통령 탄핵이 어렵겠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1일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지정함으로써 당장 마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없어졌다. 마은혁 미임명을 이유로 국무위원 줄탄핵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 덕분에 민주당이 살았다고 본다. 만약 민주당 강경파의 공언대로 한 권한대행 재탄핵을 비롯해 국무위원 줄탄핵에 나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무위원 전원을 탄핵소추하고, 국회나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7일이 지나면 대통령이 임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헌법재판관 자동 임명법'을 통과시켜 마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못하도록 한 다음 '후임자가 없을 때는 헌법재판관 임기를 연장한다는 법'을 통과시켜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을 자리에 계속 앉혀 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윤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국회 다수당이라고 꺼진 불을 살릴 수 없고,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재판관을 붙들 수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여당이 국회 다수당을 차지했을 때 법을 고쳐 대통령 임기 연장도 가능할 것이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그런 시도를 한다면 국민들이 그냥 두겠는가?
2025-04-03 05:00:00
[전당열전-조두진] 이재명 공직선거법 항소심 재판 무죄 선고는 "악어 판결"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의견 표명이므로 허위 사실 아냐" 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새롭게 드러난 증거 하나 없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백현동 발언은 전체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해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21년 10월 경기도지사 신분으로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재명 대표는 백현동 개발 사업 관련한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질문(질문 형식이지만 사실상 해명 기회 제공)에 "만약에 (백현동 개발부지 용도변경을) 안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국토교통부가) 협박해서"라고 답변했다. 이 대표가 당시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귀 시(市)가 적의 판단할 사항'이라는 공문을 "협박으로 느꼈다"고 말했다면 의견 표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직무유기 이런 것을 문제삼겠다고 협박해서"라고 말했다. 자신의 의견이나 느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직무유기, 협박했다'라는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다. 게다가 1심 법원에 증인으로 나온 성남시 공무원 중 협박으로 느꼈다는 사람이 없었고, 국토부 공무원 중에도 직무유기로 문제삼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의견 표명"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것과 관련한 법원 판단도 납득하기 어렵다. 당시는 이 대표가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는지 여부가 쟁점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대표와 김문기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이에 이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국민의힘이 사진을 조작해서 골프를 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재명 대표가 김문기씨와 골프를 안 쳤다는 말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며 역시 허위사실 공표로 볼 수 없다고 했다. ▶ "네 자식을 먹을까, 살려줄까?" 고대 이집트에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나일강 강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악어가 물어갔다. 아이의 아버지는 자식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악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이를 돌려줄까? 돌려주지 않을까? 내 생각을 맞춘다면, 아이를 산 채로 돌려 주마!" 아이의 아버지가 '돌려 주겠지요' 라고 말한다면 악어는 '틀렸다'며 아이를 잡아먹을 심산이었다. 마찬가지로 '돌려주지 않겠지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돌려 줄 생각이었는데, 틀렸다'고 할 작정이었다.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악어는 아이를 돌려 줄 생각이 없었다. 부모의 어떤 대답, 어떤 논리, 어떤 증거로도 악어가 이미 정해놓은 결론(아이를 잡아먹겠다)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 '무죄 결론' 정해놓고 판결하는 듯 유독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재판에는 '무죄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게 논리를 개발하고, 법리를 갖다붙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많다. 2020년 7월 대법원은 이재명 대표의 2018년 6월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관련 발언'에 대해 '적극적인 거짓말이 아니면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2심 당선 무효형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이 사건에서 권순일 당시 대법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된 화천대유 고문으로 활동하며 보수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되었다. 2023년 9월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관련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당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疏明)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기에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2024년 11월 이재명 대표 위증교사 사건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는 "이재명에게 김진성으로 하여금 위증하도록 결의하게 하려는 고의, 즉 교사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위증한 사람에게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는데, 그 교사한 사람에게는 '교사할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고의로 교사하지 않았는데, 증인이 스스로 위증을 해서 이 대표의 무죄를 이끌어냈다'는 말이다. ▶ 악어가 강을 떠나 마을에 침입하면 이재명 대표 관련 각종 판결은 우리 사법(司法)이 정치에 오염(汚染)됐음을 보여 주는 방증(傍證)이다. 판사의 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는 말이다. 판사도 사람이다. 그들이 특정한 정치적 이념을 갖는 것, 특정 정치인,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의 일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조항에서 '양심'은 법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법관의 직업 윤리적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악어가 나일강이라는 거대한 강 속에서, 강의 질서를 준수하는 한, 사람 역시 그 질서를 존중한다. 악어가 나일강에서 사람을 잡아 먹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악어가 마을에 침범해 제 멋대로 사람을 물어가는 데도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없다. 악어 사냥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판사는 법과 법 원칙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정치적 이념, 정치적 지지 잣대로 재판한다면 악어가 마을에 침범해 사람을 마음대로 물어가는 격(사법의 정치화)이다. 대법원마저 이 대표 관련 재판에서 법을 농락하고 국민상식을 우롱한다면 국민들은 법원의 역할과 권위를 부정하게 될 것이다.
2025-04-02 18:30:00
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문기 씨(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와 골프 치지 않았다" "국토부로부터 백현동 용지 변경을 협박당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허위로 판단,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 항소심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백현동 발언은 전체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해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고, 김문기 씨와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한 이 대표의 "국민의힘에서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조작된 것"이라는 발언은 "김문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이고, 골프를 같이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아무리 다시 살펴봐도 이 대표의 발언은 명백한 허위사실 공표로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진심으로 이 대표의 발언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많은 법률가들도 법리를 끼워 맞췄다고 평가한다. 법원은 왜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다"고 판결했을까? 재판부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대표와 그 지지자들이 딱 원하는 판결이 나온 만큼, 이 대표 지지자들의 생각을 통해 재판부의 속내를 짐작할 수는 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스스로 '합리적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선거 과정에는 크고 작은 허위사실이 유포되곤 하는데, 대선에서 패한 이 대표만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국민 절반 가까이가 대선 후보로 지지하는 인물의 정치적 운명을 '사법(司法)'으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라는 주장을 펼친다. 거물 정치인 이재명이 정치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는 법원이 아니라 국민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위와 같은 이유로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背信)이다. 이것은 이 대표를 지지하는 국민이냐,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직 선거에 나선 후보의 거짓말에 대해 법원이 "국민이 알아서 평가할 영역"이라고 한다면 일견 국민 뜻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현장에서 주먹으로 승부 보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025-03-27 20:12:43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단독] 김민석 子위해 법 발의한 강득구, 金 청문회 간사하려다 불발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불법 정치자금 논란' 김민석 "사건 담당 검사, 증인으로 불러도 좋다"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