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입양 장애아의 인간승리

'나의 왼발'은 오직 왼발만 자유로운 한 영국인의 재활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치료를 받는 의사에게 "꺼져!"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 발음마저 정확하지 않다. 의사는 그를 향해 "내가 당신에게 '꺼져!'라는 그 말 한 마디라도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하고 떠나겠다"고 외친다.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이는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장애인들이 고통과 좌절감에 빠진 채 그늘 속에 버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후천성 장애인들이 이런 현실에 내던져지고 있지만, 장애아로 태어난 죄로 버려지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더구나 해외 입양아 3명 중 1명이 장애아라는 사실은 낯 뜨거운 치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청년으로 성장한 입양아들이 자신이 버려지게 된 사회적 환경에 대해 우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천성 시각장애의 역경을 딛고 세계의 대학생이 선망하는 '로즈 장학생'으로 뽑힌 한인 입양아 이정남(21.미국명 자카리 배틀스)씨의 인간 승리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자 마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라다 3세 때 입양돼 미국으로 가게 됐지만 '기회의 땅'에 올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을 헤아려 보라.

▲미국의 한 학교 관계자가 '그는 걸어다니는 의지력의 상징'이라고 말하고 있듯 그의 성취 과정은 '장애와의 중단없는 투쟁'이었다. 그는 전과목 'A'로 고등학교를 나와 일류대에 낙방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오는 5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평점 만점으로 수학.컴퓨터과학.프랑스어 등 3개 학위를 함께 받는 그는 3년간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 수리분석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이정남씨는 18세가 돼서야 한국의 낳아준 아버지에게 첫 편지를 썼다고 한다. 지난해 6월 자신의 여동생도 선천성 시각장애라는 이유로 고아원에 버려진 사실을 알고 그 소재를 애타게 찾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소문 중일 뿐 고아원들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장애인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사회, 그들을 생산적 가치 창출의 일원으로 일으키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사회가 아쉽기만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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