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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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당첨자=손해숙(의성군 금성면 산운2리)
다음 주 글감은 '9월이면…'입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 콩·쌀 볶아주던 정 많은 외사촌 언니
외갓집 하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나의 외가는 지금은 마당까지 차가 들어가지만 그 시절에는 버스를 타고 가서 나룻배로 강을 건너고 또 삼십여분을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시골 농가였다. 방학이 되면 정기 행사처럼 일주일 정도씩은 외가에서 놀다 왔는데 지나치게 깔끔한 외숙모는 농가답지 않게 늘 집안을 깨끗하게 해놓아 마루에 올라 갈 때는 행여나 내 발자국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곤 했었다.
우리 집에서는 제삿날이나 명절이 아니면 얻어먹기 힘들었던 하얀 쌀밥과 생선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외양간에 걸려있는 소 여물을 끊이는 가마솥에 물을 데워 빨래판을 걸쳐놓고 앉아 목욕을 할 때면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며 쳐다보는 소가 나에게 달려들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마음 훈훈하게 해준 것은 외사촌 언니다. 그때는 먹을거리가 귀했던 만큼 간식거리가 흔치 않았는데 나의 외가는 많은 농사를 짓는 관계로 곡식이 흔했던 터라 내가 가면 언니는 먹을 것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곡식 창고에서 쌀이나 콩 따위를 한 바가지 퍼다 뒷마당에 걸려있는 가마솥에서 볶아내어 주었다.
정이 많은 언니는 또 다른 먹을거리가 있으면 아무도 몰래 나를 부엌으로 불러 살강 위에 엎어져있는 그릇 밑에서 꺼내어 먹이곤 했으니 또 집으로 돌아올 때, 물론 외숙모께서 차비를 주시기는 했지만 언니는 외숙모 모르게 한 되 정도의 쌀을 퍼다 동네의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과자와 바꿔 가면서 먹으라고 주고 일부는 돈으로 받아 내 손에 꼭 줘 보내곤 했다.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 있는 언니, 집안 대사가 있지 않으면 만나기도 어렵지만 나는 외갓집하면 그 언니가 먼저 생각난다. 그래서 나도 시누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외숙모, 외갓집이 되고 싶어 나름대로 신경을 써 보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 시절과 같은 환경도 없을 뿐더러 학원이다 과외다 하며 아이들이 저마다 더 바쁜 세상이라 과연 아이들의 외갓집은 어떤 이미지로 남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근수(대구 동구 검사동)
♥詩書에 능하셨는데…효도 못한게 한스러워
나의 외가는 안동군 풍천면 검무산 밑 진천동이다. 나는 소년 시절 진천 외갓집에 자주 놀러갔다. 외가에 가면 어른들이 반기고 사랑해 주셨기도 했지만 흰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집은 외갓집에서 2km가량 남쪽에 있는 풍천평야 인근에 있었는데 당시 해마다 낙동강이 범람하여 흉년이 자주 들었다. 쌀밥은 고사하고 잡곡밥도 제대로 못먹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혼자 외갓집에 자주 갔었다. 외할아버지는 인자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너는 농사 일이 좋으냐? 글 배우는 것이 좋으냐?" 물으시며 한문책을 펴 놓으시며 한자를 묻기도 하시고 집에 돌아올 때는 꼭 주머니에 간직해 두었던 은전 몇 닢을 주셨다. 나로서는 좀체 만져보기 어려운 큰 돈이었다.
스물한 살에 교원시험에 합격하고 외가에 갔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시서(詩書)에 능하셨던 외할아버지 문집에는 여러 편의 명시가 남아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진천마을 뒷산 검무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봉황이 즐겨 찾던 곳으로 이 산의 정기가 뻗어 내린 진천 일대는 만인을 수용하는 낙지가 될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0여년 만에 경상북도 도청이 외할아버지가 사시던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40여년의 교편 생활을 마치고 난 지금, 나도 외할아버지처럼 손자와 외손자를 두고 있다. 생전 외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여 주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손자와 외손자를 사랑으로 대한다. 외갓집 생각을 하니 새삼 인자하고 근엄하시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역력하다.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박덕근(대구 북구 산격동)
♥한 솥 쪄낸 옥수수·햇감자 차지고 맛나
오랜만에 아이들 외갓집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마을 입구부터 허리 굽고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만 보인다. 모두가 아흔이 넘어 백수를 바라보는 장수 마을이다. 친한 친지들은 다 떠나고 외갓집이라 해봐야 엄마가 고향을 지키며 산기슭을 보듬고 있다.
고희를 훌쩍 넘기신 어머니는 큰딸 식솔들이 온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동네 어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도회지에서 자란 아이들은 뭐가 신기한지 어설프고 두엄 냄새가 퀴퀴하게 나는 마당과 뒤뜰을 뛰어다니며 분주하다.
나 어릴 적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유년을 보냈다. 어느덧 불쑥 커서 시골을 벗어나 남의 아낙이 되고, 다 큰 삼남매 데리고 친정에 왔다. 연락할 때마다 하루하루 몸이 쇠약해져 가는 노친네가 안쓰럽고 애가 타서 먼 길 마다하고 오긴 왔는데,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허리 굽고 아픈 다리를 끌며 손자 녀석들 먹일 욕심에 손발이 바쁘다. 한 솥 쪄낸 옥수수며 분이 파삭한 햇감자며 금방 쪄낸 감자송편은 찰지고도 맛이 난다. 어젯밤 꼬박 세워 준비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하나 건네자 당신은 틀니가 안 맞는지 잇몸이 아프다며 손사래를 친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이지만 맛나게도 먹어 준다. 그 모습이 보기 좋은지 연방 입가가 방긋하다.
밤이 되자 산 가까운 집이다 보니 모기가 많다. 흔한 모기약을 뿌려도 소용이 없다. 큼직한 모기장을 쳐놓으니 애들이 신기해서 웃는다. 나도 몇십년 만에 모기장 안에서 자 본다. 초저녁 별이 유난히 빛나고 휘영청 보름달이 밤 마실을 다닌다. 어릴 적 어머니 다리를 베고 누워 옛날 얘기 들은 적이 생각나 나도 내 아이들에게 얘기 하나를 들려줬다. 다 듣고 난 아이 셋이 이구동성으로 지어낸 얘기라며 깔깔댄다. 먼 산 부엉이가 날이 밝길 기다리는 울음소릴 낸다. 고요한 산골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정겹게 아침 인사를 한다. 아이들 외갓집에 앞으로 몇 년 더 오려는가 싶어 괜스레 코끝이 찡하다.
윤선주(대구 달서구 이곡동)
♥모깃불 피우고 옥수수 먹는 재미 잊을 수 없어
외갓집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집이다. 외갓집에 가면 엄마만큼 따뜻한 외할머니와 외숙모, 그리고 조카들과 잘 놀아 주는 외삼촌이 계셨다.
여름방학이 되면 며칠에 한 번씩은 가까운 동네에 있는 외갓집에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외할머니는 내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쮸쮸바'를 하나 사다가 그릇에 담아 두었는데 그것이 녹아 물이 되어 마시기도 했다.
외사촌 언니, 오빠랑 동생들과 놀 수도 있었고 외숙모께서 밭에 나가 토마토, 수박 같은 과일과 옥수수를 맛있게 삶아 주시기도 하셨다.
여름밤 마루 바닥에 앉아서 쑥을 피워 연기를 내어 모기를 쫓으며 외사촌 언니, 오빠랑 동생들과 노래 자랑도 하며 이야기도 하며 맛있게 삶은 옥수수 먹는 재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성인이 되어 도시로 나와 살면서 거의 가지 못하고 명절마다 한 번씩 갈 때면 참 좋아하셨는데 지금은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모두 결혼을 하여 40,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도 여름방학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외갓집에 가면 외숙모님과 외삼촌이 과일이며 채소들을 듬뿍 담아 주시며, 아이들과는 냇가에서 피라미도 잡아주며 재미있게 놀아 주신다. 나이가 들어서도 외갓집은 고향과 같고 나 또한 그들에게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가 해주셨던 것처럼 고향과 같은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유정 (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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