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이 동네를 구하라] 반전(反轉), 되찾은 활기: 성내3동, 침산2동

쇠퇴한 지역에 주거·문화 창출 "젊은 층 돌아왔다"
달성공원역 일대 곳곳에 아파트 입주 예정, 수창청춘맨숀 등 '문화 명소'
삼성창조캠퍼스로 변신한 제일모직 터, 자녀 데리고 온 젊은 층으로 북적

1일 대구 중구 성내3동 대구문화예술발전소 일대에 아파트 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1일 대구 중구 성내3동 대구문화예술발전소 일대에 아파트 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1일 대구 북구 침산2동 칠성초등학교 앞 문구점이 하굣길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번성하다가 쇠퇴를 맞은 동네가 있는 반면 오랜 세월 침체를 겪다 되살아난 지역도 있다.

대구 중구 성내3동과 북구 침산2동은 오랫동안 '낙후된 동네'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다가 최근 각광 받기 시작했다.

◆중구 성내3동…대구역 주변 신주거공간 부상, 최근 5년 사이 인구 41% 급증

▷아파트 개발 봇물·문화공간 조성

지난달 26일 오후 대구 중구 도시철도3호선 달성공원역. 달성네거리 부근에서 서문시장 쪽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아파트 공사장의 펜스가 있었다. 높게 솟은 대형 크레인도 사방에서 보였다.

성내3동은 오래된 공구점이 많고 성매매 업소 집결지인 자갈마당이 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공동화를 겪은 곳이다. 그러다 2015년 도시철도 3호선 개통으로 접근성이 향상된 데다, 대구역 주변이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떠오르면서 이곳의 발전 가능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17년 10월 입주를 시작한 1천5가구 규모의 대구역센트럴자이 아파트를 신호탄으로 '낙후된 도심 철로변'의 이미지를 급격히 지워가고 있다. 2023~2024년 사이 달성공원과 수창초교, 달성네거리 인근에 3천 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새로 들어선다.

이에 힘입어 2015~2020년 사이 성내3동의 인구는 41.4% 증가해 달성군과 금호지구를 제외하고 대구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최근 대구예술발전소 등 지역 예술인과 젊은 층을 아우르는 명소로도 부각되고 있다.

동네의 활력은 유일한 학교인 수창초교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수창초교는 학생 수가 적어 한때 폐교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몰려들 학생에 대비해 시설 증설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임지희 수창초교 교감은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기 때문에 입학할 학생들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현재 15개 학급인데, 늘어날 입학생과 전학생을 위해 46개 학급 정도로 증설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수창초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 30대는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는데 무엇보다 학교와 거리가 가까워 만족스럽다"며 "자갈마당이 없어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 들어왔다. 주변에 학원, 프랜차이즈 카페, 음식점이 추가로 들어서면 더욱 살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온 주민도 있다. 20여 년 전 성내3동을 떠났던 김경미(47) 씨는 몇 해 전 음식점을 열 곳을 물색하다가 다시 이곳을 찾았다. 수창청춘맨숀, 대구예술발전소가 명소로 자리매김하면서 젊은 층이 몰려드는 것을 보면서다.

김 씨는 "20여 년 전 신혼시절 살았던 성내3동은 '대구에 정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의 슬럼가였다. 당시 이 동네에는 병원이 없어 아프면 침산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했을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지금은 동네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구 유입이 되고 매출도 보장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불안한 골목 상인들

성내3동에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아파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들이 있다. 공구골목, 오토바이골목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수십년간 일군 생업 터전이 언젠가는 아파트 물결에 사라질까 봐 걱정이 깊다.

철공소 사장 김규식(가명·66) 씨는 "아파트가 들어오기 전 대형 정비공장들이 있던 시절에는 공구 수요가 많아 일하기가 좋았다. 얼핏 '남은 상가들도 다 밀고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말이 도는데, 월세 30만~50만원 수준인 이 곳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오토바이 판매점 주인은 "오토바이 가게는 밀집돼 있어야 시너지효과가 난다. 오토바이 시트 부품 등 관련 업종의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면 상권 자체가 쇠퇴할 게 뻔하다"고 걱정했다.

이에 도심 개발은 기존 주민들과 미래 세대까지 선순환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북성로 기반 문화예술단체 '훌라' 관계자는 "공구점들이 이곳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지역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다. 개발로 소외된 이들은 누군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대식 북성로상점가 상인회장은 "재개발로 북성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며 "이곳의 기계 소음, 미관 등으로 향후 아파트 입주민들과 갈등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1일 대구 북구 침산2동 칠성초등학교 앞 문구점이 하굣길 아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침산2동…빈터로 방치된 옛 제일모직 터, 창조캠퍼스 문 열고 인파 몰려

▷상전벽해처럼 변한 제일모직 터 주변

같은 날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외출한 젊은 가족들로 북적였다. 일대 주민들의 여유로운 생활을 반영하듯 피트니스, 발레 등을 가르치는 체육시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났을 무렵인 오후 8시쯤, 이곳은 인근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변했다. 자녀와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들은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면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침산2동은 1954년 설립된 제일모직 공장이 1996년 구미로 이전한 후 20여년간 빈터로 방치돼 황량함이 감도는 동네였다. 9만3천980㎡에 이르는 제일모직 터가 방치돼 주거지로서의 매력은 크지 않던 곳이었다

삼성창조캠퍼스 인근에 사는 윤모(26) 씨는 "이 근처 경명여고를 다녔는데 당시 제일모직 터 내부가 전혀 관리되지 않아 바깥에서도 무성한 풀이 보일 정도였다"며 "친구와 호기심에 잠깐 들어갔다가 경비원에게 걸려 쫓겨났던 기억이 있다. 그 넓은 부지가 쓸모없이 버려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침산2동 일대는 2017년 삼성창조캠퍼스가 문을 열고, 최근 대구 엑스코선 및 경북도청 후적지를 둘러싼 각종 개발 호재가 알려지면서 인구가 몰리고 있다. 2015~2020년 사이 인구가 13.5% 증가했고,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는 1천 명당 12명으로 대구에서 두 번째로 적었다.

창조단지 안 벤치에서 만난 윤성호(가명·85) 씨는 삼성창조캠퍼스 인근에서 모터를 수리하고 원동기를 제조하는 전업사를 55년간 운영하다 5년 전 몸이 힘들어 그만뒀다. 윤 씨는 "주말에 이곳에 오면 아이들을 데리고 길쭉한 것(보드)을 타는 부모들로 넘쳐난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는 젊은이들이 많고 나이 지긋한 어른은 어쩌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칠성초교, 졸업생 규모 일정하게 유지침산2동의 칠성초교는 2009년 48개 학급에서 올해는 53개 학급으로 늘었다.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졸업생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곳 졸업생은 2009년 266명에서 2012, 2013년 각각 275명으로 늘었다. 2015년 237명으로 잠시 줄었지만, 올해 2월 다시 늘어난 25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같은 변화는 칠성초교 앞에서 수십년간 문구점을 해 온 할머니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강복수(86) 씨는 칠성초교 앞 '제일문구'를 40년 넘게 운영했다. 강 씨의 가게는 과거에 머물러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반면 건너편 문구점은 학생들로 붐빈다.

BTS 등 인기 아이돌 포토카드나 화려한 장난감을 갖춘 건너편 문구점과 달리 강 씨의 가게에는 '아폴로', '별사탕' 같은 예전 식품만이 있어서다. 두 문구점은 아파트 개발로 침산2동을 떠난 옛 주민과 아파트가 들어선 후 유입된 젊은 층의 상반된 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강 씨는 "칠성초교의 학년당 학급이 10개가 넘었던 과거부터 학생들이 빠져나가던 시절, 그리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학교가 다시 몸집을 키운 지난 세월을 옆에서 지켜봤다"면서 "건너편 문구점 말고도 학교 앞에는 문구점 네 곳이 더 있었는데 지금까지 살아 남은 건 여기뿐이다. 곧 장사는 접을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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