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개전(開戰) 당시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열두 배에 가까웠다. 중화학공업과 군수산업의 기초인 철강도 열두 배, 자동차 보유 대수는 160배, 석유는 776배나 됐다.('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가토 요코〈加藤陽子〉) 총력전에서 이런 국력 격차는 패배의 예약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했다. 그러나 피할 수 있었다. 진주만 기습 8개월 전인 1941년 4월 총리 대신 직속 기구로 설립된 총력전연구소가 5개월간 전쟁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필패'(必敗)로 나왔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기습 공격으로 이길 수 있지만 물량의 열세 때문에 장기전을 치를 능력은 없고, 소련의 참전으로 패전을 맞는다."
그러나 당시 제3차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내각의 육군 대신이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이는 어디까지나 책상에서 이뤄진 연습이다. 실제 전쟁은 제군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러일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겼다. 전쟁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 밖의 일이 승리로 연결된다"며 시뮬레이션 결과를 묵살했다.('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총력전연구소가 '필패'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으로 당시 일본 내각과 똑같은 체제의 모의 내각을 구성해 부처별로 기탄 없이 의견을 내도록 한 것이다. 이 모의 내각은 당시 일본 민·관계의 소장 엘리트 33명으로 구성돼 균형 감각과 전문성을 겸비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이 2018년 이후 4년간 한미 연합훈련 때 범정부적 전시 지휘소를 가동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잘 말해준다. 범정부적 전시 지휘소는 정부 모든 부처·기관·실무자로 구성되는 일종의 모의 내각으로, 북한의 기습 등 국가 비상사태 시 정부의 모든 조직이 유기적으로 대처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가동하지 않아 지난 22일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 때 범정부 전시 지휘소가 4년 만에 꾸려졌지만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아 혼선이 빚어졌다고 한다. 우리의 비상사태 대처 능력이 저하된 것이다. 일본 제국은 외면하긴 했지만 모의 내각으로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냈다. 문 정권은 그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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