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퀴지, 안트라퀴논 블루, 콘트라스트. 유주희 작가의 작업을 대변하는 키워드 세 가지다.
나무판 끝에 고무날이 달린, 실크스크린 인쇄 도구로도 쓰이는 스퀴지. 캔버스에 스퀴지로 물감을 밀어내고 당기기를 반복하면 강렬한 색의 대비와 함께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이 생긴다. 유 작가는 그러한 흔적이 반복되면서 어떤 부분은 존재감 있게 살아나고, 어떤 부분은 깊이 침잠하는 듯 표현되는 것이 스퀴지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부드러운 붓으로 작업하는 게 성격에 안맞더라고요. 스퀴지를 써서 강한 콘트라스트를 나타내기로 했죠. 결국 제 작품은 행위 자체가 전부예요. 행위의 흔적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인 셈입니다."
그의 작품 저변에는 여성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표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잠재한다. 열악한 시골에서 자라난 아이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버텨온 삶에 대한 열정과 여성 작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
1958년 경남 하동, 마산에서 나고 자라 영남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유 작가는 결혼, 육아 등으로 20여 년간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1년 대학원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그 해 신조미술협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 때 선보였던 작품이 그의 첫 시리즈인 '형(形)과 태(態)'다. 역시 스퀴지를 이용해 200호 이상의 캔버스에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를 선보였다.
'형과 태' 작품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작가는 캔버스의 3분의 1 부분을 다양한 색으로 채우게 된다. 이 작품들이 '존재 너머의 풍경'(Landscape over being) 시리즈다. 관람객과 시장의 호응을 얻었지만 작업 과정이 힘에 부친 탓에, 그는 스퀴지를 이용해 스타카토식으로 색을 끊어서 표현한 '무제'(Untitled) 시리즈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다 만난 색이 바로 안트라퀴논 블루(Anthraquinone Blue)다. 대비를 가장 명징하게 나타내는 색이고, 어릴 적 뛰놀던 자연을 담고 있는 듯 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에 안트라퀴논 블루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물감 수급이 어려워진 탓이다. 최근작은 비슷한 색감인 스말트 휴(Smalt Hue)를 사용했다.
지난해 가창으로 작업실을 옮긴 유 작가는 올 상반기에만 100점이 넘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최근작은 기존 작품에서 보인 추상표현을 해체하는 과정이 엿보인다. 그는 "작품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요즘,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구 앞산에 있는 갤러리동원이 유주희 작가의 개인전 'Repetition_Trace of meditation'을 선보이고 있다. 자유로운 표현 속 생명력을 지닌 유 작가의 작품 2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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