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뭐라 해도 월드컵이다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전창훈 문화체육부장

영국의 사회학자 엘리스 캐시모어는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이란 저서를 통해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현대사회의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사회는 과거와 비교해 예측 가능한 일이 많아졌고, 삶이 너무 뻔해서 무언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것이 바로 스포츠라고 했다. 특히 축구는 승패의 불확실성이나 그 격렬함에 있어 사람들이 열광하기에 충분한 스포츠다.

카타르 월드컵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월드컵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악재가 겹친 게 크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4일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거리 응원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구시와 경북도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들도 거리 응원을 줄지어 취소했다. 이태원 참사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거리 응원을 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조치에 공감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월드컵 거리 응원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4년마다 돌아오는 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거리 응원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중 하나인 멕시코전을 앞두고 '붉은 악마' 회원들이 광화문 사거리에 모인 게 시초로 평가된다. 그러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경기장에 못 간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인 것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후 20년간 굳건히 지켜온 월드컵 대표 문화다. 2030세대는 어릴 때부터 거리 응원에 익숙해 있던 터라 아쉬움이 더욱 큰 듯하다.

손흥민 선수의 갑작스러운 부상도 대형 악재다. 손흥민은 지난 2일 프랑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 볼을 경합하다 안면 골절을 입었다. 곧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완전히 회복하는 데 최소 8주가량 걸린다고 한다. 손흥민은 월드컵 출전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여러 여건상 잘해 봐야 마지막 포르투갈전 정도 뛸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다. 출전하더라도 안면 보호 마스크를 써야 해서 경기력에 악영향을 줄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로써 16강 진출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것은 분명하다. 일각에선 16강 탈락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더욱이 카타르에 대한 세계인들의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카타르 현지에서 월드컵 경기장과 호텔 등의 건설에 동원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상습적인 노동 착취가 있다는 비난이 일면서 보이콧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이례적으로 겨울에 월드컵이 치러지는 탓에 선수들의 줄부상 우려가 적잖은 등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이번 월드컵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여느 대회보다 꺾였고 분위기 또한 침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월드컵에서 예기치 못한 스포츠 그 이상의 전율과 감동을 숱하게 경험했다. 국가대표팀의 기적도 마찬가지다. 가깝게는 지난 2018년 세계 최강 독일을 2대 0으로 격파한 것은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특히 손흥민이 30m 전력 질주로 두 번째 골을 터트린 순간은 마치 16강에 진출한 듯한 격한 뭉클함을 주었다. 이번에도 그들은 국민들을 열광케 할 드라마를 써내기 위해 카타르로 떠났다. 그렇기에 우리의 응원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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