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용한 해고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석민 디지털논설실장

MZ세대를 중심으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신조어가 각광을 받고 있다. 직역하면 '조용히 회사를 그만둔다'는 의미이지만, 실제로는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고 건강한 삶을 우선한다'는 뜻이다. 미국 언론 더힐은 "핵심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 범위 이상으로 일할 때, 승진이나 더 많은 급여 등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허슬 컬처(hustle culture)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조용한 사직자의 대부분이 MZ세대이고, 코로나19가 부른 대퇴직의 연장"이라고 설명했다. '조용한 사직' 열풍이 불고 있는 미국은 지난달 실업률 3.7%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이다.

반면 경기침체와 실적 악화에다, 내년도 최악의 경제 한파를 예고한 국내 대기업들은 '조용한 해고'가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적으로 채용 축소나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기 힘든 만큼, 저성과자나 고연차 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회유에 가까운 간접적 방식으로 인력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물밑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해고'는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인력 관리를 하면서 여론이나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우려스럽다. 아예 공식적으로 감원 절차에 들어간 곳도 있다.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롯데면세점, 롯데하이마트, 하이트진로, OB맥주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5대 시중은행에서 2천400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기업의 '조용한 해고'가 확산하면 그 여파는 관련 산업 전반에 크게 미친다. 사회적 시선과 구성원의 동요 등을 우려한 대기업의 '조용한 해고'가 중견·중소기업엔 '감원 태풍'이 될 수 있다. 10대 그룹은 지난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38만 명의 신규 채용을 약속했다. 실제로 올해 채용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신규 채용 규모를 유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의 글로벌 기업 환경을 만들자는 새 정부의 정책을 '초부자 감세' 논리로 왜곡시킨 '집권 야당' 탓에 서민·중산층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 셈이다. 가짜 민생으로 범죄 피의자 정치인의 방탄에 올인하는 부패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경제회복도, 고용안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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