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하자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은 '대구판 빌라왕 사건'의 피해자들도 수개월째 고통받고 있다.
대구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 유모(28) 씨는 쌓이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개인회생을 고려하고 있다. 대출로 마련한 1억2천만원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그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5개월을 버텼다. 유 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전세로 들어온 원룸인데 빚만 떠안았다"며 "불면증으로 잠도 못잔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피해자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번 사건으로 남구 대명동, 서구 내당동 빌라 6채에서 살고 있는 임차인 77명이 53억5천9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빌라를 사들인 집주인이 지난달 13일 경찰에 붙잡혔지만 별다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24일 당·정 전세사기대책협의회를 만들고 대책을 발표했다. ▷임차인의 주거권 보장 ▷우선 매수권 부여 ▷장기 저리 융자 지원 ▷공공임대주택 전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구 내당동에 사는 피해자 김모(31) 씨는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해준다면 언제까지 보장해줄 건지 등 구체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피부로 와 닿는 대책으로 피해 최소화에 대한 믿음을 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 유모(34) 씨는 "대부분 매수 능력이 없는 상황이라 우선 매수권도 소용이 없다"며 "빚내서 보증금을 마련했는데 또 대출을 받으라니 이중 스트레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긴급 주거지원, 금융지원도 경매가 끝나야만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남구 대명동에 사는 피해자 정모(31) 씨는 "집이 경매가 넘어가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범인이 잡혔지만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가 들끓자 전세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돈을 아끼려고 월세가 아닌 전세를 선택하곤 했던 청년들은 이제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하는 실정이다.
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사는 이정연(28·가명) 씨는 "피해자들이 사회초년생이 많아 남 일 같지 않다"며 "전세사기 사건이 곳곳에서 터지니 불안해서 돈 더 내고 좁은 집에 살더라도 마음 편하고 싶어 월세를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명 대구과학대 금융부동산과 교수는 "우선 매수권의 경우 정부가 낙찰 대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 법리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며 "이후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세대출 반환보증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내용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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