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55) 씨는 일본 맥주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출시 첫날 발주를 넣은 후 3주가 지나도록 추가 발주는커녕 구경도 못했다. 해당 제품은 '아사히 수퍼드라이 생맥주캔'으로 생맥주와 유사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해져 지난 1일 시중에 풀리자마자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A씨는 "대부분 20~30대 젊은 사람들이 사 갔다. 언제 들어오는지, 전화해서 알려달라는 손님도 있었다"며 "한창 대란을 겪던 포켓몬 빵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노(No) 재팬'으로 불리던 일본상품 불매 운동 분위기가 '예스(Yes) 재팬'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때 발주를 포기했던 일본 맥주는 품귀 현상을 보이고 일본 여행과 의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소비가 크게 늘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맥주 수입액은 307만4천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1만8천달러보다 866.7% 급증한 수치다. 같은 기간 수입량도 3천870t(톤)으로 851.7% 늘었다. 이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단행되기 시작한 2019년 7월 이후 최대다.
일본 여행도 대세가 됐다. 한국은행과 일본 정부 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160만700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일본을 방문한 전체 여행객 중 3분의 1에 달한다. 대구국제공항에서 올해 1~4월 일본으로 향한 여객 수는 6만2천381명으로 같은 기간 대구공항 전체 국제선 여객의 44%를 차지했다.
지난달 3박 4일 일정으로 가족과 함께 오사카‧교토 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김모(22) 씨는 "적은 비용으로 해외여행이 가능하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듯한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 색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예스 재팬'이 가장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는 문화다. 지난 1월에 개봉한 일본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누적 관객 수 467만을 달성했으며,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지난 3월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국내에 상영한 일본 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2030세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국가화‧탈역사화된 상품에 대한 개인의 소비가 만든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박정호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컨텐츠 자체를 국가나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내 즐길 수 있다는 관념이 자리 잡은 것 같다"며 "정치적 이해관계나 과거사 문제와 같은 무거운 역사 인식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개인의 경험이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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