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30> 예술의 종교편향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지난달 20일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지역 예술인들이
지난달 20일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지역 예술인들이 '종교화합자문위원회의 극단적 종교편향판정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헌재 기자.

고전이라는 것은 역사와 세월을 통해 걸러져 온 명작이며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저자와 음악가, 화가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것으로 신과 인간, 나와 세계, 선과 악, 미와 추,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 등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고전은 물질에 집착하는 현실적인 인간이 아니라 삶을 사유하고 궁극적인 의미를 탐구하며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고전은 인류가 쌓아온 정신문화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예술은 당대 역사와 사회, 문화, 종교, 가치관 등을 투영하며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작품이다. 예술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음악은 당대를 가장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일찍이 서양 음악이 학문적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자들이 음악을 교육, 윤리와 연결한 측면이 크다. 또 중세 수도원과 대학에서 음악을 수학 4과(산수, 기하, 천문, 음악)인 학문 이론으로 가르쳤다는 점에 있다. 음악은 교회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이론적인 체계를 구축하였고 교회와 수도원은 음악 행위의 장이 되었다. 중세 이후에도 교회 음악의 전통은 양식적인 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세는 음악 외에도 시, 극, 철학, 수학, 회화, 조각, 건축 등 모든 학문과 예술 영역이 교회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반종교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이 시기에 싹을 틔웠다.

대구는 유네스코 지정 음악창의도시다. 이 도시가 종교와 예술을 분리하지 못하고 종교 편향성이라는 잣대로 특정 음악들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게 한 결정은 예술의 고유성을 침범하는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나타나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화합보다는 배척을 조장하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논리의 잣대를 이어가면 공자를 모시는 문묘제례악, 불교를 근본으로 하는 한국 전통 음악, 무속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굿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을 다시는 향유할 수 없게 된다. 또 종교적 색채를 띠는 미술 작품은 공공 미술관에 전시할 수 없으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은 토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에 비치하면 안된다는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21세기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성을 띠는 시대다. 온갖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는 교류의 시대이며 정신문화가 기계 문명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변화와 혼란의 시대다. 인류가 험난한 지대를 횡단하고 있는 만큼 예술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에서도 새로운 가치 개념의 정립과 내용 미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서양 예술사는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은 우리를 위로하고 필요한 질문 앞에 서게 하는 것이다. 예술을 종교 편향으로 문제시하는 일은 예술을 통한 질문을 영원히 그치라는 요구이며 인류가 축적해 온 찬란한 문화유산을 부정하는 일이며 예술의 존립을 위협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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