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의 경주 그곳에 가고 싶다] <20>황금의 나라, 경주

인디아나 존스, 황금 유물 찾아 천년제국 올 수도

새모양 금관장식과 수막새
새모양 금관장식과 수막새

며칠 전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후속편을 제작한다면 '황금의 나라' 신라의 금관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야기는 어떨까? 금관총과 천마총, 황남대총, 서봉총 금령총 등 발굴하는 고분마다 화려한 금관과 금은보화로 만든 장신구들이 대거 출토된 경주의 고분에는 얼마나 많고 다양한 신라시대의 황금 유물들이 숨어있는 지 알 수 없는 보물창고와 같은 존재다.

일제 식민지시절 처음으로 발굴된 신라 금관은 이후 다섯 개나 더 출토되었다. 화려한 금관 등 황금 장신구들은 '마립간' 시대 이후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특별한 장신구였다. 금관은 신라 왕들이 가진 특별한 권위를 과시하는 그것이었다. 가히 신라는 황금제국이었다.

사리장엄구
사리장엄구

◆인디아나 존스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공주의 사랑을 표현한 고대 페르시아의 서사집 '쿠쉬나메'에는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중국에서 신라에 도착하는 장면이 묘사돼있다. "바실라(신라)는 평범한 도시가 아니었다. 선녀로 가득찬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깨끗한 물이 사방에서 흐르고 있었으며 개천 가까이에는 향나무들이 있었다. 정원은 재스민으로 풍성하였고 향기로운 튤립과 히야신스로 가득했다....

보초병이 문을 열자 그곳은 낙원처럼 보였다. 도시의 냄새가 너무나 향기로워서 사람의 넋을 잃게 하였다. 모든 일들이 말을 타고 있었으며 아비틴에게 황금을 선물했다. 모든 길과 거리는 반짝거렸으며 중국산 실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가인(佳人)들은 지붕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풍악소리가 온 도시에 울려 퍼졌다. 궁 전체가 하늘색 배경에 금으로 장식되어있었고 모든 의자에는 사파이어와 루비가 세공되어 있었다..."

천마총 금관
천마총 금관

7세기 말 신라를 찾아 온 페르시아왕자의 눈에 비친 경주는 온 도시가 황금으로 번쩍거리고 왕궁 월성은 황금 뿐 아니라 온갖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어 중국 시안과 로마, 콘스탄티노플 등의 당시 세계 최고의 국제도시의 명성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던 모양이다. 거기다 신라왕은 페르시아인들에게 황금을 아낌없이 선물로 줬다.

<삼국유사> 진한조는 "신라는 전성기에 서울이 17만8936호(戶)였고, 1360방(坊), 55리(里),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왕궁 뿐 아니라 성골과 진골 등 귀족들의 집도 금으로 치장해서 번쩍이는 '금입택'이었다. 김유신 장군의 '재매정택'(財買井宅)은 물론이고 지상택, 북유택, 남유택, 장사택, 상앵택,하앵택 등 삼국유사는 무려 서른 여 곳에 이르는 금입택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궁궐과 귀족들의 금입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경주는 이방인의 눈에 동방의 지상낙원이자 파라다이스로 여겨졌을 법하다. 황금제국 신라를 찾아 온 페르시아 왕자가 벌이는 모험과 신라공주와의 사랑 그리고 페르시아왕자를 위해 제작한 왕관 선물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는 인디아나존스와 같은 어드벤처 영화의 색다른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라는 주제의 특별전시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라는 주제의 특별전시

◆박물관은 살아있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는 <천마,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의 특별전시(5.4~7.16)가 열리고 있다. 박물관 본관에서도 상설 전시가 있지만 특별전시는 늘 경주와 신라를 새롭게 한다.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번 전시는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다래 '천마'를 비롯, 금관과 금장신구 등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천마총 출토 금관과 새 날개 모양 금관 꾸미개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천마(天馬)가 그려진 말다래나 말장신구보다 날아오르는 듯 날렵한 새 날개와 나비 모양의 금관꾸미개가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소 황금을 돌보듯이 하는 건 아니지만, 황금으로 만든 장신구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최고의 예술품이다.

다른 신라 금관들과 달리 단촐하게 3개의 맞장식과 2개의 엇가지 장식이 결합된 형태의 천마총 금관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신라시대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유행했다는 황금귀걸이와 황금으로 만든 긴 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황금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관 꾸미개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대릉원과 노서동 고분군에는 얼마나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관과 황금장신구들이 있을까 기대하면서 신라를 신라답게 만들어 낸 황금시대를 기억했다. 천년제국의 여운은 금관과 금장신구 등 황금유물로만 남겨지진 않는다. '천년의 미소'를 간직한 '수막새'를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신라인의 향기를 제대로 느꼈다고 할 수 없다.

천년의 미소, 수막새
천년의 미소, 수막새

◆천년의 미소, 수막새

지상낙원이자 현세의 '부처의 땅' 불국토(佛國土)를 자처한 신라는 궁궐과 금입택은 물론이고 황룡사와 불국사 등 사찰 건축에도 진심이었다. 기와는 특히 사찰의 지붕을 장식하는 최종적인 마감재이자 신과 인간의 세계, 즉 하늘과 땅을 구분짓는 경계선을 알리는 장치이면서 마지막 장식품이었다. 그래서 최종 마감재인 수막새와 치미에 귀신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아 험상궂은 도깨비 형상이나 부처를 새겨넣었다.

황룡사 터에서 출토되는 수막새에 도깨비 문양이나 무서운 동물이 그려진 것은 그 때문이다. 황룡사 출토 치미에는 사람 형상이 새겨져있다. 일본 나라시의 도다이지(東大寺) 등 일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미는 묘하게도 신라 치미와 닮았다. 우연일까? 치미 뿐 아니라 도깨비나 귀신 대신 온화한 미소를 띤 사람 얼굴의 수막새가 경주에서 발견됐다.

일본 나라시에 있는 동대사 치미
일본 나라시에 있는 동대사 치미

넓은 이마와 오똑한 코, 잔잔한 미소를 띤 두 빰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원와당'(圓瓦當)이 그것이다. 한쪽 귀퉁이가 소실됐지만 신라인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듯한 수막새는 보통의 수막새처럼 찍어낸 것이 아니라 원형으로 만들어서 손으로 빚어낸 것이 특징이다. 귀면와 대신 온화한 수막새라니! 귀신도 깜짝 놀라서 달아 났으려나.

이 수막새는 일제치하인 1934년 다나카 도시노부라는 일본인이 경주에서 구입해서 일본으로 반출했으나 해방 후인 1964년 박일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이 다나카씨에게 편지를 보내 기증을 부탁, 국내에 반환된 사연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신라의 진면목을 만나지 못했다.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와 동궁, 월지 등 천년제국이 망한 후 1,300여년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은 건축물은 신라의 숨결을 간직한 소중한 유적들이다. 수학여행과 추억여행을 통해 월성 주변을 돌아보고 남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신라시대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적들을 만나고 박물관을 여러번 찾아도 경주는 단 번에 신라의 모든 것을 토해내지도, 드러내지도 않는다. 복구시킨 월정교를 지나다가 문득 물에 빠진 원효대사가 허둥대는 모습을 환영처럼 보기도 하고 지척지간에 있는 '천관사터'에서는 김유신과 천관의 사랑을 기억해내기도 한다. 화랑들의 이야기는 단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

페르시아를 건너왔다가 신라공주를 데리고 돌아간 아비틴왕자의 후예들이 처용이 되거나 왕의 호위무사가 돼 신라인으로 살아간 후일담도 듣지 못했다. 월성은 아직 완전하게 발굴되지 않아, 월성에서 벌어진 야사는 손도 대지 못했다. 선덕과 진덕 진성여왕 등 신라의 세 여왕 시대 역시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다.

영천으로 가는 길목 건천읍에 있는 나지막한 '금척리' 고분군은 신라의 삼보 중의 하나인 금척이 묻혀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나당연합군 사령관 소정방이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는 박혁거세의 금척(金尺)이 어디 묻혀있는 지는 박제상이 쓴 '징심록'과 '금척지'에 적혀있다지만 서책들을 가진 후손들마저 6.25 전쟁 와중에 북으로 가서 사라졌다.

경주, 천년 신라로의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끝〉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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