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에 조변(서기 1008~1084)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와 관련해선 두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청빈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강직한 성품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사람'(知非子)이란 아호(雅號)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개가 엿보인다.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자 그는 백성 구휼(救恤)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토호·사찰의 지원을 이끌어내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했다. 하지만 자신은 물욕이 없어 가야금 하나와 학 한 마리가 전 재산이라는 뜻의 일금일학(一琴一鶴)이란 고사성어를 남겼다.
젊은 시절에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라는 감찰 벼슬을 맡아 부정 척결에 힘썼다. 권세가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12차례나 탄핵 상소를 올려 무능한 재상을 물러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 철면어사(鐵面御史)였다.
1천 년 전 이야기를 꺼낸 건 철면어사는 사라지고 철면피들만 득시글대는 요즘 정치판 때문이다. 정명한 처신으로 귀감이 되겠다는 공명심(功名心)은 애당초 없었던 듯하다. 선출된 권력 운운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만을 떠는 모습에 말문이 닫힌다.
국회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지난 21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가결됐다. 조변이 재상 탄핵 사유로 꼽았던 불학무술(不學無術·학식이 넓지 못하고 재능이 부족함)이 한덕수 총리에게도 해당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에게 과실이 없지는 않으나 뜬금없다.
현 정부 들어 해임 건의는 박진 외교·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도 탄핵 소추 직전까지 몰렸다가 물러났다.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첫 검사 탄핵 역시 제21대 국회가 남긴 진기록이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해임·탄핵 카드를 마치 전가보도(傳家寶刀), 치트키(Cheat Key)처럼 휘두른다. 국정을 바로잡을 최후의 수단을 너무 자주 빼들고 있다. 여론전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여당 압박용으로 써먹지만 체감 위력은 갈수록 줄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로 대혼란에 빠진 민주당이 얼마나 더 이 전략을 밀어붙일지 알 순 없다. '개딸'들의 요구대로 대통령 탄핵까지 불사할지도 두고 볼 일이다. 이 대표는 단식 중이던 지난 5일 "링 위에 올라가 있는 선수들이 국리민복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끌어내려야 하고, 그게 민주주의"라고 분위기를 띄운 바 있다.
민주주의를 지킬 헌법 장치인 줄로만 알았던 해임 건의·탄핵소추권이 남발되는 현실 앞에서 200일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결국 누가 정치를 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되느냐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솔직히 공공선(公共善)에 대한 인식 없이 개인의 영달만을 좇는 부라퀴들을 걸러낼 능력을 기존 정치권에서 기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정당의 존재는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 요소이지만 그들은 굳건한 '철면피 카르텔'인 탓이다. 후원금을 횡령하고, 돈 봉투를 나눠 갖고도 검찰의 조작이라 우기고, 가짜 뉴스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이들을 보라!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당 혹은 무소속 후보들은 또 눈속임하려 하겠지만 국민들이 냉철한 판단으로 새로운 정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댓글 많은 뉴스
전한길 "쓰레기"라 한 친구는 '조국 수호대'
'나 홀로 인용' 정계선 집 주소 확산…유튜버들 몰려가 시위
민주당, 韓 복귀 하루만에 재탄핵?…"마은혁 임명 안하면 파면"
'이재명 무죄' 선고한 최은정·이예슬·정재오 판사는 누구?
'국회의원 총사퇴·재선거' 제안한 이언주…與, 릴레이 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