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이상준] 산불 특별법부터 제정하라

이상준 국장석부장

1일 국회 앞에서 열린 경북 산불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국회 앞에서 열린 경북 산불피해 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준 국장석부장
이상준 국장석부장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경북 산불 피해 주민들이 참고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이날 상경한 1천여 명의 피해 주민들은 '산불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산불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정부와 국회는 지체 없이 산불 재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 3월 22일 의성군 야산에서 발화해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을 집어삼킨 화마(火魔)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약 10만㏊)의 산림을 태웠다. 태풍급 돌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진 산불은 피해 주민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주택, 농·수산시설, 농·산림작물 등 정부가 추산한 산불 피해액만 1조818억원을 기록했다.

산불 발생 이후 100일. 피해 주민들은 여전히 공황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해 복구는커녕 원상회복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산불 피해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현행 지원 체계로는 이번 같은 사상 초유의 산불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 응급 복구와 일부 생계 지원만 가능할 뿐 재건(再建)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번 산불로 집은 물론 논밭, 공장 등 생계 수단까지 모두 잃은 피해 주민들에겐 '특별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대형 산불 재난에 따른 광범위한 피해와 현행 제도에서 피해 복구 및 보상이 어려운 부문에 대한 지원, 나아가 지역사회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특별법 제정이 너무 더디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는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5건이 발의돼 있다. ▷피해자 배상 및 보상 규모의 현실화 ▷피해 복구 지원 강화 ▷산불 대응 역량 확보 ▷재정 지원 및 규제 특례 적용 등이 담겼다. 지난 5월 출범한 국회 산불피해지원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 3일에야 첫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를 열고, 5개 법안에 대한 심사를 시작했다. 특별위원회 활동 기한은 10월 31일까지다.

앞으로 특별법 제정이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는 결국 지난달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새 정부는 선심성(善心性) 포퓰리즘이라는 야당의 강한 반발에도 '민생(民生) 회복 소비 쿠폰' 지급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출범 한 달 만에 2차 추경을 통해 12조2천억원 규모의 전 국민 소비 쿠폰 지급을 확정했다.

반면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북동부 지역 '민생 회복'은 정권 교체 시기와 맞물려 잊히고 외면당했다. 지난 정부 당시 탄핵 정국과 연이은 대통령 선거 등 격변(激變)의 정치 상황 속에서 피해 복구와 재건은 계속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에 따른 모든 고통은 피해 주민들과 지역사회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피해 주민들은 결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난 1일 상경한 주민들은 "지금은 우리가 이 자리에 섰지만, 다음에 누가 이 자리에 서서 목이 터지게 외칠지 모른다. 그저 다시 농촌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로 책임 있는 누군가가 피해 주민들의 눈물과 호소에 행동으로 답할 차례다. 새 정부와 국회는 경북 산불 피해 복구와 재건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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