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촉법으로 치를 '비싼 대가'

김봄이 디지털국 기자
김봄이 디지털국 기자

#서울 한 아파트에서 70대 노인이 8세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숨졌다. 아이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형사적 책임은 물론 보호처분조차 받지 않는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별생각 없이 장난으로 돌을 던졌다"고 말했고, 유족들은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황망함을 토로한다.

#인천에서는 여중생 1명이 또래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속옷만 입은 채로 촬영까지 당했다. 가해자는 6명, 이들 중 3명이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라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피해 학생의 부모에게 "저희는 촉법이라 형사처벌 안 받는다 ㅎㅎ"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소년범'에 대한 이슈에 불이 붙었다. 촉법소년의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거나 혹은 규정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끓고 있다.

현행법상 만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형법상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만 10세 미만 '범법소년'은 형사처분과 보호처분 모두 받지 않고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은 형사처분에서는 자유롭지만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 연령 기준은 1958년 법 제정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형사 미성년자의 범죄는 늘었다. 무엇보다 범죄 양상이 점차 계획적이고 흉악해졌고, 자신이 형사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악용하는 사례들까지 등장하면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성인 3천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연령을 낮추는 것은 범죄 예방 효과가 미미하고, 소년범죄는 처벌보다는 교화를 통한 재범 방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연령만 낮추는 것은 무의미하다. 치료와 교육 목적의 교정 시설을 충분히 마련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하는 등의 대안도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단순히 처벌을 적용할 '물리적 나이'가 핵심이 아니다. '촉법'을 훈장처럼 여기는 형사 미성년자에게는 경각심을 줄 수 있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되지 않으면서 피해자가 느끼는 상실감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점에서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호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게 만들자 '호텔 델루나'의 사장 장만월은 가해자의 부모를 찾아간다. 그는 유일한 증거를 부모에게 건네며 '아이가 책임지게 할 것'인지 '자신의 입을 막을 것인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두 번째를 택할 경우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 경고한다.

결국 부모는 증거를 불태우고 아이의 죄를 감추는 걸 택한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아이를 '보호'한 것이다. 장만월이 말한 '비싼 대가'는 아이의 영혼이 소멸되는 것이었다. 자식의 영혼은 사라지고, 그 몸에는 피해자의 영혼이 들어가 살게 된다. 판타지라지만 '영혼이 파괴된다'는 점은 현실적이다. 지나친 법 제도의 보호가 영혼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

지난해 법무부는 촉법소년의 기준을 만 13세로 낮추는 '소년·형법 개정'을 발의했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기 전에 소년범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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