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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25>구약의 '전도서': 헛된 것들의 아름다움

이경규 계명대 교수

성경책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성경책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이경규 계명대 교수
이경규 계명대 교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전도서의 출발 문장이다. 12장밖에 안 되는 이 텍스트 안에 '헛되다'(vanity)는 말이 38회나 나온다. 세속에도 이렇게 총체적인 허무를 말하는 책은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화자(전도자)는 선언한다. 죽은 자가 산 자보다 행복하고 태어나지 않은 자가 산 자보다 행복하며, 사람도 짐승과 똑같이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다고.

대체 이런 책이 어떻게 성경에 포함되었을까? 실제로 전도서는 구약의 정경화(Canonization) 과정에서 논란이 가장 많은 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경으로 인정받은 데는 마지막 구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12:13)."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원성이 인간에게 허용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헛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놀랍게도 전도자는 지극히 세속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하는 수고 중에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몫이로다(5:18).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니, 성경이 이래도 되는가? 여기서 선하다는 말은 원어로 '토브'(tob)이고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지은 창조물에 대해 '보기에 좋다'(tob)는 말을 반복하는데, 이는 아름답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러나 개별 피조물이 항구적으로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래서 전도자는 "때를 따라 in its time" 아름답다고 한정한다. 말하자면 아름다움은 타이밍이다. 모든 것은 왔다가 사라지는, 헛된 것이지만 아름다운 때를 가진다. 어떻게 보면 헛되기에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헛된 것이다.

전도자는 빛을 가장 아름답다고 하며 해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고 한다(11:7). 낮의 해는 바라볼 수도 없으니 일출이나 일몰을 말한다. 실로 노을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나. 볼 게 많지 않은 중동의 사막 지대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빛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모든 속도는 상대적이지만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다.

전도서의 총체적 허무는 '해 아래'(under the sun)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화자는 이 부사구를 30회 이상 쓴다. 해는 뜨고 지며 '빠르게'(hastening)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1:5). 해는 모든 현상의 근원으로서 아름다움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헛됨의 원인이다. 여기에 헛됨과 아름다움의 역설이 있다. 해 아래서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젊은 시절이다. 이 젊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청년이여 네 어린 시절을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11:9).

젊음을 기뻐하고 젊음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것이 반드시 쾌락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도자는 그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라고 한다(11:9). 영원을 동경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젊음의 기쁨이 될 수는 없을까? 이것도 결국 헛되겠지만 좀 더 좋은(tob) 아름다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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