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그 공천, 소통된 건가요?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쟈는 또 누 집 아로?"

총선 예비후보 등록 이후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한 예비후보자가 인사하고 돌아서자 읍내 촌로들이 자기들끼리 묻고 답한다. 당적 표시는 죄다 빨간색 바탕이니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을 구분하기 힘들다며 부모가 누군지 묻는 것이다.

그렇게 예비후보자 집안의 내력을 줄줄 주고받으며 근본을 따진다. 걸어 다니는 도서관답게 그 집안이 친일을 했는지, 독립운동을 했는지, 윗대에서 면서기를 했는지, 몇 마지기 논밭을 일궜는지 오래지 않아 정리한다. 뼈대 있는 집안이라면 조선시대 벼슬까지 뻗어간다. 총선에 나서려면 온 집안이 샅샅이 파헤쳐질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지역에서도 쉽게 알 만한 사람이 출마하면 이런 일은 덜 일어날 것이다. 선거 때만 지역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며, 소통하겠다며 나서니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다. 선향(先鄕)이라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한둘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한 것도 아니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래서 정치인은 본인 부고를 제외하고 자주 언론에 나와야 좋다고 했던가.

소통을 뜻하는 영어 표현 'communicate'의 접두어 'comm'에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같이 뭔가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소통이라는 것이다.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뜻밖의 혐오 논리가 탄생하기 마련이다. 얼굴이라도 봐야 한다는 강박이 만든 회식일지라도 부장들의 회식 개최를 혐오의 눈으로 볼 것만도 아닌 까닭이다. 집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란 말이다. 세상 유치해 보이는 대환장 회식 건배사일지언정 밑바탕에는 소통이 있다.

실제로 효과가 있다. 같이 먹고, 같은 노래를 떼로 부르면 생기는 일체감이라는 게 있다. 교가는 내부 단합을 끌어내는 마법 같은 노래다. 립싱크로 불렀거나 말거나, 재학 시절 조회 때마다 이걸 왜 부르나 의구심이 들었다면 동문회에 가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엔간한 학교 동문회의 마지막 순서는 교가 합창이다.

동시대에 같은 경험을 했다는 감정적 일체감은 소통의 문턱을 한층 낮춘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을 찾으며 입은 옷이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가슴팍에 '1992'라 적힌 것이었는데 1992년은 롯데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다. 확실한 메시지, 저는 부산 시민 여러분과 중요한 순간을 함께합니다, 가 담긴 것이다. 그도 설명했다. 92학번이고 롯데의 1992년 우승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애도하는 방식도 공감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노란 리본 모양의 머리끈을 한 정치인이 경기 안산에 간다거나, '2003'이라 적힌 상의를 입은 정치인이 2월의 대구를 찾는다면 시민들이 의미를 단박에 알아챌 것은 자명하다.

4월 총선 공천이 본격화하고 있다. 여야 모두 심혈을 기울인다 하겠지만 '윤심'이니 '명심'이니 '자객 공천'이니 하는 지역 민심과 유리된, 허황한 단어들이 또다시 부유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결과가 다르길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했다. 과학적 격언이 정치에서도 일관되게 통하는 건 아니겠지만 민심의 교감과 거리가 먼 구호, 레퍼토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길 바란다. 지역과 오래 호흡해 온 이들이 지역민과 오랜 소통을 거쳐 출마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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