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승만 복권(復權)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남북 분단 조장. 국민 모두가 38선은 임시 조처이고 곧 통일한다고 믿었는데 이승만은 일찌감치 1946년 6월 '정읍 발언'으로 남북 분단을 기정사실화하고 결국 반쪽 정권을 장악했다. 미국조차도 생각하지 않던 남한 단정으로 몰고 감으로써 6·25전쟁과 남북 분단, 대립을 가져오는 단초를 제공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가 지난해 11월 한 일간 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이승만=남북 분단의 원흉'이라는 좌파의 프레임을 답습하고 있다. 남북 분단의 원인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읍 발언'을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 '한반도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가 양측의 대립으로 무기 휴회(休會)돼 통일 정부라는 우리의 염원 실현이 멀어지고 있어 남한에 임시정부를 세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뒤 북한에서 소련이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좌파들은 이를 '남한 단정론(單政論)'으로 몬다. 이승만이 북한보다 먼저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했다는 것이다. 비열한 거짓말이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소련 극동전선군 총사령관 바실레프스키와 연해주 군관구에 북한에 단독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10월 8일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열려 '북조선 중앙은행 설립'을 결정했고 28일에는 중앙행정기관인 '북조선 5도 행정국'이 만들어졌다.

이런 북한 단독정부 수립 작업은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위원장, 김두봉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수립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때가 정읍 발언 4개월 전이었다. 북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웠던 것이다. '인민위원회' 앞에 '임시'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분단 책임을 가리려는 속임수였다.

대한민국 건국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한 역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첫 주말 관객 3만5천 명을 돌파해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고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관객 후기가 "교과 과정에서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공과가 있는데 과 때문에 공까지 부정당하는 것은 안타깝다" 등 호평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승만이 자유 대한민국 건국 영웅으로 속히 복권(復權)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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