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운동권 기득권 정치 청산론

이종철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
이종철 전 고려대 총학생회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10 총선을 통해 '운동권 정치인 청산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 비대위원장은 운동권 기득권 정치인들이 나라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야당을 위해서라도 이들이 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386 운동권 정치인들이 우리나라 정치 전면에 대거 등장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였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00년 16대 총선 때 인천 계양에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당시 37세였다. 그는 같은 지역구에서 5선을 했고, 40대에 인천광역시장도 했다. 임종석 전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34세 때 국회의원이 됐다. 조정식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41세 나이로 국회의원이 된 이래 내리 5선을 했다. 우상호 의원은 42세, 윤호중 의원은 41세, 이인영 의원은 40세, 정청래 의원은 39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이들이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됐고, 국회의원 생활을 오래 했기에 퇴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한 비대위원장이 '86 운동권 청산'을 주장하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동시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선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절에 양심을 못 가졌거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자기 일신의 출세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이다.

민주화 성취는 국민 전체의 공(功)이지 운동권들만의 공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고도 그 수고와 공로를 뒤로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운동권 출신들도 많다. 민주화 운동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도 많다. 한 위원장은 1980년 광주항쟁 때 유치원에 다녔다. 모든 세대들이 각자의 시대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럼에도 '운동권 출신 기득권 정치인들'은 자신들만이 선(善)이라는 선민의식에 빠져 산다. 그러면서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돌리고, 뇌물을 받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운동권 경력이 남들의 전문성을 폄하할 권리가 되고, 운동권 경력이 있으니 부정부패쯤은 별것 아니라는 식이다.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파탄 상태다.

선민의식과 부패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의식과 시야는 여전히 군부독재와 싸우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시장경제'라고 하면 이들은 불평등과 소득 격차만 떠올릴 뿐, 시장의 순기능(예: 부자들이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사회적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점)을 모른다. 그래서 자신들이 할 일은 부자에게서 빼앗아 빈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의적'(義賊) 수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가진 자를 습격하는 의적 수준의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시대착오적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각종 규제 강화, 법인세 인상, 소득주도성장 등이 모두 그런 인식에서 나왔다.

운동권 출신 기득권 정치인들은 현실성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는커녕 대안이 될 수도 없는 허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없는 사실(사실이 아닌 과거 또는 현실성 없는 미래)를 띄워 대중을 속이고 분노를 야기해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다. 대한민국의 자산을 늘리는 정치가 아니라 분노와 갈등 조장으로 반사이익만 챙기는 것이다. 그들은 땀 흘려 돈 벌 궁리보다는 각종 시민 단체를 만들어 정부 지원을 받아내거나 걸핏하면 무슨 위원회니 진상규명단을 만들어 실리를 챙긴다.

역사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일 간에는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다. 하지만 운동권 정치인들의 인식 세계에는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어느 쪽이 우리 국민과 국가, 미래 세대를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지만 살필 뿐이다.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구호를 보면 이들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19세기 후반 '외세와 수교는 죽어도 안 된다'던 조선 선비의 깜깜한 세계관에서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기적을 만든 대한민국에 세계 각국은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운동권 출신 기득권 정치인의 인식은 수구·폐쇄적 민족 테두리의 과거사에 머물러 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지, 운동권 기득권 정치인을 위해 국민과 국가가 존재할 수는 없다. 운동권 정치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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