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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37>상쾌한 필치의 유쾌한 화풍

미술사 연구자

이방운(1761~1823?), 망천별서도(輞川別墅圖), 종이에 담채, 50×3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방운(1761~1823?), 망천별서도(輞川別墅圖), 종이에 담채, 50×3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정조~순조 때 화가 이방운의 '망천별서도'다. 망천은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가 살던 곳의 지명이고, 별서는 시골에 있는 집이다. 왕유는 수도 장안의 교외인 종남산 망천에 별장을 마련해 놓고 때론 관직을 수행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때론 이곳에서 호젓한 일상을 누리며 시를 지었다. 반관반은(半官半隱)의 유연한 태도로 자신만의 공간을 전원에 꾸린 것이다.

왕유는 망천장을 노래한 시를 '망천집'으로 묶었고 이곳 풍경을 망천도로 그렸다. 그래서 스스로를 시인이자 화가라고 했고 세상에도 그렇게 알려졌다고 했다. 왕유의 시는 400여 편 전하지만 그림은 남아있지 않다.

왕유의 망천장은 사냥과 연회를 즐기는 오락과 유흥의 장소인 황실 원림이나 이를 본뜬 귀족의 장원과 다르다. 망천장은 지식인이 산수자연과 교감하는 탈속의 장소로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의 도래를 알리는 의미를 지닌다. 망천장은 이후 백거이의 여산초당, 사마광의 독락당, 심괄의 몽계원, 소순흠의 창랑정 등으로 이어지는 사대부 원림의 선구이다.

왕유의 시골집은 한자문화권 지식인들에게 이상적 공간으로 흠모됐고, 문인의 호젓한 주거지를 일컫는 대명사가 된 상상의 망천장은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즐겨 그림으로 그려졌다.

이방운은 중국의 화보와 조선의 실경을 절충해 중국인 듯, 조선인 듯 이중적 풍경으로 왕유의 망천장에 빗댄 전원생활을 그렸다. 대단한 규모의 별장이다. 이런 여유로움이라면 수도의 삼공(三公)이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이방운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빠트리지 않는 경쾌한 필치다.

제화시는 왕유가 장맛비 내리는 망천장에서 지은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이다. 녹색과 푸른색이 화면에 가득한 것은 이 시에 따라 물기 어린 청량한 대기를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첫 두 구를 보면 이렇다.

적우공림연화지(積雨空林煙火遲)/ 장마라 빈 숲에 밥 짓는 연기 느리더니

증려취서향동치(蒸藜炊黍餉東菑)/ 명아주 찌고 기장밥 지어 동쪽 밭으로 나른다

어떤 풍경과 그 풍경 속 인물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소식은 "왕유의 시를 음미하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왕유의 그림을 감상하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다. 송나라 때까지만 해도 왕유의 그림이 남아있어서 소식은 시인 왕유의 그림에서 문학의 향기를 간파한 것이다.

소식이 왕유의 시와 그림을 비평한 명구인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8자는 문학과 회화가 밀접하다는 주장을 명쾌하게 각인시킨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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