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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44>송헌(松軒) 태조가 고향집에 손수 심은 소나무

미술사 연구자

정선(1676-1759),
정선(1676-1759), '함흥본궁송도', 비단에 채색, 28.9×23.3㎝,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장

'함흥본궁송(咸興本宮松)'으로 제목을 쓴 겸재 정선의 소나무 그림이다. 함경남도 함흥의 태조 이성계 옛집에 있는 소나무를 그렸다.

조선이 세워진 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나자 태조는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 함흥으로 간다. 이후 태종 이방원이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자 분노한 상왕(上王) 태조는 조정에서 차사를 보낼 때마다 돌려보내지 않아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다.

이 함흥본궁의 정전(正殿) 뒤쪽에 태조가 심은 소나무 여섯 그루가 있으며, 태조의 호 송헌(松軒)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남구만의 '약천집'(1674년)에 나온다. 태조는 소나무를 좋아해 송헌으로 호를 지었던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의 왕들도 호가 있었다.

18세기에도 함흥본궁에 태조가 손수 심은 '수식송(手植松)'이 있다고 기록됐다. 크기는 몸통이 남자의 아름으로 두 아름이나 되고 높이가 대여섯 길은 됐으며 가지와 줄기가 용이 몸을 튼 듯 구불구불한 모양이라고 했다. '괘궁송(掛弓松)'이라고도 했는데 태조가 뒤뜰에서 활쏘기 연습을 할 때 이 소나무에 활을 걸어 뒀기 때문이다.

정선이 이 소나무를 봤는지는 알 수 없고, 함흥에 직접 갔다 왔던 창암 박사해가 정선에서 이 소나무의 모습을 설명해줘 그림으로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정선은 상상으로 이 소나무를 그렸을 것 같다. '겸재'로 서명한 뒤쪽에 누군가가 이렇게 써 넣었다.

겸로(謙老) 필력수건(筆力雖健) 비신조(非神助) 하능작차(何能作此)/ 겸재 노인의 필력이 비록 강건하다 해도 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렇게 그릴 수 있겠는가

'신조(神助)'라고 한 것은 태조의 신령이 작용해 태조의 분신 같은 이 소나무를 잘 그려냈다는 뜻일 것이다. 날짜는 없지만 '겸재 노인'이라고 했으므로 정선의 만년작일 것이다. 본궁 뒤쪽에서 바라보며 제일 앞에 담장을 두고 그 위로 훌쩍 솟은 소나무 세 그루를 화면을 꽉 채우며 웅장한 모습으로 그렸다. 높다란 소나무가 본궁의 전각을 굽어보는 대담하고 인상적인 구도이다.

오른쪽의 제화는 정선이 이 그림에 담은 뜻처럼 태조의 가피로 나라가 무궁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오유축(吾有祝) 일만세위춘(一萬歲爲春) 일만세위추(一萬歲爲秋)"는 "나는 축원하네. 봄이 일 만년이고 가을이 일 만년이기를"으로 해석된다.

태조 이성계는 고향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 소나무를 심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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