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아뢰옵기도 송구하오나…

이상헌 세종본부장
이상헌 세종본부장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한 여고생의 무용담이다.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스즈메가 평화를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 간다는 내용이다.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여"로 시작하는 주문(呪文)이 꽤 인상적이다.

앞으로 한반도에 펼쳐질 대재앙의 문은 인구 절벽이 아닐까? 국가 소멸 위기까지 거론되는 각종 통계들을 보면 섬뜩하기만 하다.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 현상의 지속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에 따르면 2050년 세계 204개 국가 중 155개 나라가 인구 감소를 겪을 전망이다. 최근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100년 안에 자국 인구가 현재 1억2천만 명에서 3천만 명대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외신들이 큰 관심을 보일 정도로 한국의 국가로서 지속가능성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수도권 쏠림까지 심화하면서 그야말로 사라질 처지에 몰린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소 '웃픈' 뉴스들에서조차 절박함이 느껴진다.

제22대 총선에서 여야 역시 저출생 관련 공약을 쏟아 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나란히 인구 대응 부처 신설을 내걸었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저출생 정책을 부총리급의 인구부로 통합해 국가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인구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구성에 정치권이 동의한다는 의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저고위는 집행권, 예산권이 없어 각 부처 정책의 나열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저고위는 조만간 저출생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역대 최저치를 매년 갈아 치우고 있는 합계출산율을 현재 0.72명에서 1명대로 끌어올리는 중장기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쥐어 짜내기 식 아이디어로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인구부 신설에 합의하더라도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통해 새 부처의 역할을 설정하고, 관련 법률·제도를 정비해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중복에 따른 비효율, 옥상옥(屋上屋) 논란만 이어질 터이다.

특히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려면 정부조직법을 고쳐야 하는 만큼 여야 합의가 필수적이다. 여성가족부의 존폐 여부가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 저출생 정책에 대한 재평가를 놓고서도 여야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각 정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저출생 대책 상당수 또한 법 개정과 재정 투입이 전제이다. 육아기 유연근무 및 근로시간 단축, 신혼·출산 부부를 위한 주거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대변화를 두고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매몰돼 맞선다면 저출생 극복은 요원해진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제1 야당 당수와 곧 회동한다. 국가 소멸 위기에 대한 논의야말로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의제가 아닐까 싶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현실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제시한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 시각을 바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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