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대 문화권 사업 대해부] 쌓아 올린 시설물, 되돌아온 건 막대한 혈세 부담

①혈세 블랙홀이 된 국책사업
경주 화랑마을, 수입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운영비…6년간 176억8천만원 적자
7년 만에 930억 원 누적 적자…운영비 눈덩이, 시원찮은 수입
시설비 추가 지출, 미개장 사업장 관리 등 곳곳에 숨겨진 비용

2021년 사업이 중단된 이후 방치된 청송 장난끼 공화국의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021년 사업이 중단된 이후 방치된 청송 장난끼 공화국의 모습.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꿈은 컸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2조원을 투자한 관광개발은 막대한 운영적자로 되돌아왔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해마다 세금으로 관광시설을 유지하고 있다.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이하 3대 문화권 사업)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45개에 이르는 전체 3대 문화권 사업의 실태와 문제, 해법을 담은 시리즈를 7회에 걸쳐 보도한다.

◆이용객 늘어도…관리운영비 부담

지난달 초 방문한 경주 화랑마을의 모습. 벚꽃이 한창이었지만 평일이어서 한산한 모습이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초 방문한 경주 화랑마을의 모습. 벚꽃이 한창이었지만 평일이어서 한산한 모습이다. 윤정훈 기자

벚꽃 한창이었던 지난 4월 4일 오후 2시쯤 경북 경주시 석장동 '화랑마을'. 정원 한가운데 축구장 크기의 넓은 잔디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와 폭포, 분수 등이 어우러진 가운데 첨성대 조형물과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화랑상이 방문객을 맞았다.

주차장 바로 옆, 성벽 모양으로 외관을 장식한 3층 높이의 화랑전시관이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다함과 관창 등 신라를 대표하는 화랑을 비롯해 황산벌 전투와 평양성 전투를 소개한 그림과 글이 있었다.

서울에서 경주로 여행을 온 직장동료 4명은 화랑 콘텐츠에 대한 설렘과 함께 홍보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행 중 최아름(34) 씨는 "전시관 외벽에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니 가슴이 요동친다"고 했고 황용연(45) 씨는 "경주에 자주 오는 편인데 여기는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정보력이 높은 편인데 화랑마을은 잘 몰랐다"고 말했다.

경주 화랑마을 내 전시실. 화랑을 소개하는 전시물로 글과 평면적인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윤정훈 기자
경주 화랑마을 내 전시실. 화랑을 소개하는 전시물로 글과 평면적인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윤정훈 기자

2018년 10월 문을 연 화랑마을은 조성 사업비가 888억5천만원이다. 3대 문화권 사업 45개 중 7번째로 큰 규모다. 전체 면적은 28만6천㎡(8만6천800평)로 넓고, 건축면적도 9천998㎡(3천 평)에 이른다. 화랑전시관과 화백관(교육관) 등 전시·교육시설을 비롯해 신라관(생활관)과 육부촌(한옥생활관), 호국야영장(42면) 등 다양한 수련·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박현주 경주시 화랑마을 경영관리팀장은 "청소년수련시설이어서 주로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 찾는다. 잔디밭 등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가족 단위 이용객도 많다"며 "무엇보다 숙박시설의 인기가 높다. 온라인 예약을 진행하면 10초 안에 마감된다"고 설명했다.

경주시에 따르면 숙박시설인 육부촌과 야영장을 찾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5만3천372명으로 바닥을 찍었다가, 이후 점차 회복해 2022년 6만9천680명, 지난해 9만2천992명을 기록했다.

이용객이 늘어도 지출 부담은 여전하다는 데 고민이 있다. 시설 규모가 큰 만큼 관리운영비도 많이 든다. 화랑마을은 3대 문화권 사업 가운데 누적 관리운영비가 가장 많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221억5천만원을 지출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입은 20.2%인 44억7천만원에 그쳤다. 적자가 176억8천만원이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개보수할 시설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화랑마을은 시설물 관리비로 2021~2023년 모두 38억4천만원을 썼다. 한 해 평균 12억8천만원을 지출한 셈이다. 올해도 18억5천만원을 시설물 관리비 예산으로 책정했다.

◆하드웨어형 사업의 역습…쌓여가는 적자

전체 예산 1조9천666억원을 투입한 3대 문화권 사업은 대구(군위 포함)와 경북의 모든 지자체가 참여했다. 전체 45개 사업으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완료할 예정이었지만 여전히 4개 사업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2014년부터 일부 사업을 준공했고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관광지들이 문을 열었다. 준공·개장한 41개 사업 중 6개는 별도의 관리운영비가 없고, 나머지 35개 중 32개(91.4%)는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세금으로 메우는 운영적자 규모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매일신문의 취재 결과, 3대 문화권 사업의 2017~2023년 누적 관리운영비는 모두 1천313억8천만원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수입은 380억6천만원으로 적자가 933억1천만원에 이른다. 지출과 비교해 벌어들이는 수입률은 29%에 불과했다.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여는 곳이 늘면서, 관리운영비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3대 문화권 사업 관리운영비는 2017년 28억2천만원에서 시작해 점차 늘었다. 코로나19로 2020년에는 주춤했지만 이후 증가세를 이어갔다. 최근 3년간 추이를 보면 2021~2023년 사이 186억9천만→295억8천만→364억4천만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3대 문화권 사업은 전시관과 야외 공원 등 대부분 하드웨어에 투자가 집중됐다. 사업마다 시설과 건물 규모가 크고, 이는 결국 적자 부담이 되돌아왔다. 총사업비를 보면, 45개 사업 중 5개가 1천억원이 넘고, 500억원 이상~1천억원 미만이 6개다. 통상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 되는 경우가 11개나 된다.

경북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출 대부분은 고정비용이다. 해설과 안내를 위해 곳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건비를 비롯해 수도·전기요금 등 공공운영비가 들어간다. 여기에 조경 관리, 전시물 보수와 건물 수리 등 시설 관련 비용도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모가 클수록 고정비용이 많고 또 준공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수리할 곳도 점차 많아진다"고 걱정했다.

고령 대가야생활촌의 특색 없는 놀이터 모습. 윤정훈 기자

◆초라한 수입…입장료·체험료로 역부족

반면 수입 확대는 더디다. 급기야 최근에는 정체된 모습까지 보인다. 개장 초기인 2017년 수입은 2억9천만원으로 관리운영비의 10.1%에 불과했다. 이후 조금씩 늘어나는 듯했지만 2022년과 지난해 각각 100억5천만원, 104억4천만원으로 성장세가 둔화됐다.

사업들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수입은 주로 전시·관람 입장료, 체험료, 숙박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숙박시설을 갖춘 곳은 숙박료 수입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입장료와 체험료 수입이 거의 전부였다.

아예 입장료가 무료인 곳들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3대 문화권 사업장의 전시시설 34곳 가운데 22곳(64.7%)은 입장료가 없다. 전시·관람 이용객이 늘어도 수입 확대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다. 결국 세금 지원이 없으면 유지 자체가 어려운 관광지가 상당수인 셈이다.

일부 관광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입장료를 폐지·인하하는 등 유인책을 썼지만, 수입에는 역효과가 났다.

2021년 사업이 중단된 이후 운영이 멈춘 청송 장난끼 공화국의 텅 빈 모습 .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고령 대가야생활촌의 특색 없는 놀이터 모습. 윤정훈 기자

고령의 '대가야생활촌'은 지난해 9월부터 입장료(3천~5천원)를 무료로 전환했다. 체험료만 유료로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10~12월 방문객은 2022년 1만4천73명에서 지난해 1만9천711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연간 입장료 수입은 2022년 1억5천만원에서 지난해 7천500만원으로 급감했다.

영주의 '선비세상'도 관광객 유인하고자 지난해 8월 입장료를 인하했다. 개인 기준으로 1만1천~1만5천원에서 3천~5천원으로 낮췄다. 다행히 9~12월 이용객은 2022년 3만3천231명에서 지난해 4만1천812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입(입장료+체험료)은 1억9천만원에서 9천90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영주시 관계자는 "올해 선비세상 운영비로 64억원을 책정했다. 토지보상비부터 건축비까지 그동안 들어간 돈도 많아 어떻게든 활성화해 적자를 줄여야 한다"며 "최근에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 홍보를 하는 등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영주 선비세상의 모습. 2022년 개장해 시설은 깨끗했지만 찾은 사람이 없어 텅 빈 모습. 김우정 기자
2021년 사업이 중단된 이후 운영이 멈춘 청송 장난끼 공화국의 텅 빈 모습 .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청송 장난끼 공화국 건물의 내부 모습. 사진 김우정 기자
영주 선비세상의 모습. 2022년 개장해 시설은 깨끗했지만 찾은 사람이 없어 텅 빈 모습. 김우정 기자
청송 장난끼 공화국 건물의 내부 모습. 사진 김우정 기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