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50~60년 서예 외길 걸어 온 남매 작가의 전시

수성아트피아 기획전 ‘붓, 노를 삼다’
혜정 류영희, 문강 류재학 작품 한자리에

혜정 류영희 작가. 수성아트피아 제공
혜정 류영희 작가. 수성아트피아 제공
문강 류재학 작가. 수성아트피아 제공
문강 류재학 작가. 수성아트피아 제공

'서산묵해(書山墨海) 연주필즙(硯舟筆楫)'. 서예의 산과 먹의 바다, 그 깊은 세계에서 벼루로 배를 삼고 붓으로 노를 저은 세월만 50~60년. 지역 서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남매 서예가인 혜정 류영희(82), 문강 류재학(69) 작가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가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다.

류영희 작가는 어릴 적 제사가 많은 종갓집에서 태어나 지방(紙榜)을 쓰고 남은 먹물로 붓글씨를 즐겨 썼다. 항상 먹을 가까이 했던 그는 대구사범학교에 진학해 서예 특기교사로, 또 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아름다운 한글서예를 연구하고 발전시켜왔다.

1979년 신사임당의 날 한글서예 실기대회 장원,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2015년 대구시문화상, 2020년 대구미술대상, 2023년 대구예술상을 수상했고 2007년 대구한글서예협회를 창립하는 등 60년간 대구에서 한글서예의 지평을 넓혀왔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류영희 작가는 "11살 때, 선생님께서 학교 게시판에 내가 쓴 붓글씨를 가운데에 걸어주셨다. 마치 인생의 꿈이 다 이뤄진 것 같이 기분이 좋았고,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교사로 일하면서도 국전 출전의 꿈을 갖고 퇴근하고 8시간씩 글 쓰는 연습을 했다. 나중에는 손에 붓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 속에 빠져들어있다는 즐거움과 기쁨이 더 컸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런저런 시간들을 거쳐 벌써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시란 것이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지만, 동생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부모의 마음으로 봐 온 나로서는 함께 전시하게 된 것이 무척 감격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타이틀을 중간에 배치하거나 리듬이 느껴지는 글씨, 우유나 보리 껍질 등 색다른 재료를 활용한 글씨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작품을 많이 선보이려 했다고 말했다. 12폭 병풍, 4m 가량의 관세음보살보문품 등 아름다운 한글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전시됐다.

특히 전시장에서는 그가 교직 생활을 시작한 1961년부터 매일 써온 문구 노트 수 권도 볼 수 있다. 책에서 발췌한 감명 깊은 문장이나 자신의 상념 등 글쓰기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글귀들이 작품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붓, 노를 삼다' 전시 전경. 이연정 기자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붓, 노를 삼다' 전시 전경. 이연정 기자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붓, 노를 삼다' 전시 전경. 이연정 기자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붓, 노를 삼다' 전시 전경. 이연정 기자

류재학 작가 역시 고희(古稀)전과 겸하게 된 이번 전시에 많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전시라는 게 논문을 하나 써내는 만큼의 고뇌를 하게 한다. 그래도 전시를 준비하며 인생을 돌아보니, 헛살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류재학 작가는 한글·한문서예는 물론, 전각과 서각, 판화, 동양화, 미술사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고루 섭렵한 보기 드문 학자이자 작가다. 그가 발표한 논문만 32편. 그러면서도 그는 나무·돌·쇠 등 다채로운 재료를 시도하고 서체를 개발해왔고, 최근에는 후학들을 위해 직접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소통하고 있다.

"새롭게 변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서예를 바탕으로 한 혁신을 꾀해왔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장르를 꿰고 있으니 그것들을 융합하는 방식에 따라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재미가 있더군요."

한글과 전서·해서·예서 한문이 섞인 전통서예 작품부터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머그컵에 인쇄한 문인화, 흔히 볼 수 없는 석고 서각 작품도 전시됐다. 특히 4개의 나무 면에 조각한 '서산묵해(書山墨海) 연주필즙(硯舟筆楫)'은 그의 인생을 담은 작품과도 같다.

그는 최근 10년간 먹으로 쓴 획 안에 문장을 덧쓴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광복절 노래'와 '손에 손 잡고', '기미독립선언문' 등을 빼곡히 쓴 작품을 볼 수 있다.

류재학 작가는 "대부분의 미술 분야가 서양화(化)되는 추세에, 전통을 지켜가는 것은 서예가 유일하다. 전통은 자연에 가장 가까운 것이고, 인간의 정신은 자연과 멀어지면 안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디지털 시대에 서예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서영옥 예술감독은 "이번 기획전은 50~60년간 자신만의 서품(書品)과 서격(書格)을 일궈 온 남매 작가의 작품을 한 공간에 펼치는 이례적인 자리"라며 "이들의 서로 다른 묵향(墨香)이 어떻게 조화로운지, 혹은 어떻게 다른지 한 자리에서 비교·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로써도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6월 5일까지 이어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053-66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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