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저출생 대책의 함정

오철환 전 대구시 의원·소설가

오철환 전 대구시 의원·소설가
오철환 전 대구시 의원·소설가

저출생·고령화를 대비하는 이른바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고 그 장관을 사회부총리급으로 하겠다고 한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가히 국가 존립 위기라 할 만하다. 이에 대해 긴급 비상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인식엔 누구나 수긍한다. 저출생의 원인이 워낙 다양하고 복합적이라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저출생대응기획부'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국가 비상사태에 처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고 하나 지금 상황은 '만(萬) 약이 무효'다. 작금의 저출생은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제와 유사하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 통화량을 증가시켜도 이자율을 낮출 수 없듯이 출생률 향상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아무런 효험이 없다. 저출산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선 기존의 틀을 깨는 획기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한 만큼 그 해법도 종합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종합적이란 점에서 총체적 시스템적 접근 방법이 필연적이고, 근본적이란 점에서 피상적 환부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확대, 일과 육아의 양립 환경 조성, 주거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실효적 대책 마련, 과잉 경쟁 지양, 지방균형발전과 사회 구조개혁 추진 등이 주요 정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모두 다 맞는 방향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건 아니다. 대증요법(對症療法)을 나열해 계속 챙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출생 대응 예산이 매년 크게 늘지만, 출산율은 여전히 악화 일로다. 매년 예산을 늘리고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고 될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맥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잉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 개혁과 변화에 대한 피로감 내지 두려움, 국가에 대한 불신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 근본 원인이 심리적 정신적 영역에 광범하게 걸쳐 있는 까닭에 치유가 쉽지 않을 듯하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혼돈의 와중에 선뜻 결혼해서 자식을 낳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근원은 그대로 둔 채 표피적 증상만 잡는 처방에 집중한다고 해서 병이 나아질 리 결코 없다.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그 기본임은 물론이다. 각자 감당할 수 있고 개인적 역량에 맞는 경쟁을 제한적으로 배분·부과하고, 개혁과 변화의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며,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 화급하다. 현재와 미래의 균형 잡힌 사고를 유도하고,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수준에서 만족하는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등 긴 안목을 갖고 다양한 방면에서 점진적으로 현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근원적인 발본색원이 근간이지만 그 디테일도 필히 살펴야 한다. 결혼 전에 전세 대출을 받은 경우, 결혼 후에 부부 합산 소득의 한도 초과로 인해 기존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면 이는 결혼의 장해물일뿐더러 혼인 신고 불가로 출산까지 가로막는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정반대의 역효과를 내고 있다. 미혼 시절 대출 한도가 얼마이든지 부부 한도 초과로 인해 대출 강제 상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특단의 배려가 절대 필요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명심해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어떻게 하든지 저출생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길 고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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