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6·25 전쟁과 오늘의 대한민국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평생 유럽의 역사를 연구하며 전쟁과 국가의 관계를 밝히려 노력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 교수는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War made the state, and the state made war)라는 대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위정자들의 상당수는 국가와 전쟁의 관계에 관한 틸리 교수의 견해를 생뚱맞은 것으로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과 국가의 관계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틸리 교수의 견해는 불편할지는 몰라도 세계의 역사가 증명해 주는 만고의 진리로 인정된다.

과거 세계에는 수천 개도 훨씬 넘는 수많은 나라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전쟁을 치렀으며 이들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이 오늘날의 국제정치를 구성하는 단위로 남아있게 되었다. 역사 이래 국가라고 불렸던 정치조직들은 전쟁을 더욱 잘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자기 나라들을 더 잘 싸우는 정치조직으로 발전시키는데 성공한 나라들은 더욱 큰 나라로 성장했다.

현대국가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두 가지 정치는 징집(徵集)과 조세(租稅)다. 일정 연령에 이른 자국 국민들을 소집해서 군사력을 건설할 수 없는 나라, 혹은 국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라는 진정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징집과 조세라는 장치는 오로지 국가라는 조직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이 두 가지 장치는 결국 전쟁을 치르기 위한 장치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전쟁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나라들만이 국제정치의 승자로 살아남았고, 이들은 다시 운명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날 세계정치의 현실인 것이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끌었던 프러시아는 수십 개 이상 존재했던 게르만어를 쓰는 작은 나라들을 결국 하나로 통합시켰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독일이 진정한 통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와 일전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가 강대해진 독일의 출현을 방치할 이유 또한 전혀 없었다.

보불전쟁(普佛戰爭, 1870-1871)이라는 세계사상의 큰 전쟁은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제국을 만든 전쟁이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제국 일본이 형성되었고,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세계의 초강대국들인 미국과 소련이 형성되었고 냉전에서의 승리를 통해 극 초강대국 미국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도 역시 전쟁이다. 6·25라는 세계역사상의 대전쟁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형성시킨 용광로였다. 참전 군인들 인명 피해 기준 세계 7대 전쟁이며 동시대 세계 강대국들 모두가 참전했던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전쟁하는 나라, 혹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든 한국 역사상의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 사람들 다수가 '한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임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와 '전쟁을 잘 할 수 있는 나라'는 결코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전쟁을 잘할 수 있는 나라라야 평화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솔직하고 진리에 가깝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대한민국은 건국 후 불과 1년 10개월도 되지 않은 신생국이었다. 3년 1개월 동안 진행된 치열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국가로 변모시켰다. 한국군의 용감한 모습은 미국을 놀라게 했다. 신생국의 군인들이 자기 조국을 위해 그토록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이 신기한 미국 사람들은 한국 군인들은 아마도 이승만이라는 왕(王)을 위해 싸우는 왕조시대의 신민(신민) 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해석했다.

필자는 당시의 한국군은 해방된 자유국가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충천했던 용사들이었다고 본다. 한국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은 징집과 조세라는 국가 장치를 막강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함께 전쟁하며 그들을 보고 배웠다. 이승만 박사의 탁월한 외교력과 국군의 애국심에 감동받은 미국은 도무지 파트너가 될 수 없는 한국과 동맹을 체결했다.

6·25의 처절한 경험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평화는 부국강병의 결과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했다. 수천년 민족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 앞에서 '전쟁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평화를 사랑하는 관권'임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