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최악의 전체주의적 독재 체제를 유지해 왔던 북한 체제도 결국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체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작년 말부터 갑자기 북한 체제의 존재 이유, 북한이라는 국가의 이성(理性)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통일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정권이 세습의 정당성을 가지도록 하는 가장 큰 근거는 할아버지가 시작한 조국 통일 대과업의 유훈 달성이었다. 손자 김정은이 할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통일의 대업을 포기하다니! 북한 사회의 엘리트들은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어린 학생들은 교과서에 인쇄되어 있던 '통일' '삼천리 금수강산' '8천만 겨레' 등등 통일을 상징하는 글자들을 까맣게 칠해서 지우느라 고생하고 있다. 새 책을 인쇄해 줄 수 있는 교육 예산조차 없는 모양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미국의 역사학자 크래인 브린턴(Crane Brinton) 교수가 1938년에 출간한 '혁명의 해부'(Anatomy of Revolution)라는 책은 특정 정치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로 '엘리트 계층의 이반 현상'에 주목하고 있었다.
북한 정치 체제에서 그나마 특권층으로 대접받아 왔던 고위급 장군 혹은 외교관들이 속속 북한을 이탈하고 있다는 뉴스가 금년 들어 부쩍 자주 들리는 소식이 되었다. 브린턴 교수가 해석했던 체제 붕괴의 심각한 전조 증상이 북한 체제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의 리일규 정부 참사가 작년 11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한국으로 망명해 왔다는 사실이 얼마 전 알려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16년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2019년 조성길 이태리 주재 대사 대리, 류현우 쿠웨이트 주재 대사 대리에 이어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공식 확인된 4번째 외교관 탈북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 주재 북한 외교관 일가족도 한국 공관에 망명 의사를 밝혔으나 현재 미국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진 사례를 포함하면 가히 김정은의 외교 체제가 붕괴 중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1990년대 초반 이미 주민들에게 삶의 기초인 식량조차 배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북한 정권은 공산 체제의 경우 자살과 마찬가지인 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라고 했던 것이다. 북한 주민들, 특히 억센 여성들은 장마당이란 원시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했다.
수많은 북한 어머니들이 억척스럽게 장마당에서의 경제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있다. 이들 장마당 아주머니들은 김정은이 무엇을 어찌하든 간에 자신들의 경제생활만 건드리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주민과 정권이 별개가 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던 김씨 권력은 드문드문 화폐 개혁을 통해 모든 주민들의 돈을 압수했고 공산주의식 평준화를 단행, 온 북한 주민을 통곡하게 만들었다.
비록 원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장마당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성격을 갖춘 것이며 북한 주민들은 북한 돈은 언제라도 종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장마당 아주머니들은 북한 돈이 아니라 미국 돈을 모으고 있다. 각종 미국 지폐들에는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 초상이 그려져 있는데 북한 주민들은 "미국 할아버지가 최고야"라고 말하며 100달러짜리 지폐에 인쇄된 벤저민 프랭클린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게다가 21세기 전자통신의 발달은 북한의 꽉 막힌 폭압 체제를 붕괴시키는 결정적 세력이 되고있다. CIA 2024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에 스마트폰이 약 600만 대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의 소식을 웬만큼 알고 있다는 증표다. 북한 주민이 점차 사회주의에서 이탈하는 현상에 경악하는 김정은 정권이 주민에게 '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라'고 강요하지만 장마당 세대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나라가 언제 우리를 먹여 살린 적이 있단 말인가? 나를 먹여 살린 사람은 장마당에서 고생하시는 엄마"라고 생각하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는 이제 1~30세에 이르는 북한 인구의 주력이 되었다.
7월 말, 8월 초의 대홍수는 평안북도와 자강도 주민 수천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망자가 1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될 정도다. 물에 빠진 주민을 구조하던 중 북한군 헬리콥터가 추락해 수십 명이 죽었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북한 체제의 마지막 숨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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