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리 문단의 거목이라 불리는 한 작가가 '등단 50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린다"는 말로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그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작심 발언도 있었는데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로비로 이뤄졌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가장 정치적인 상'이라고 평가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탔을 때 일본이 엄청나게 으스댔는데,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와바타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라는 군국주의 작가가 스웨덴에 가서 거대한 파티를 수차례나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파티를 할 능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과 가까이하는 자리를 마련해 수상이 가능했다는 뉘앙스였다.
50년이 지나면 추천자를 공개하는 노벨위원회 홈페이지를 확인해 봤다. 1968년 당시 한림원은 '설국(雪國)' 등을 쓴 가와바타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일본 정서의 진수를 위대한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것"을 꼽았다. 노벨위원회는 "후보자들이 옹호자들의 엄청난 집념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1907년부터 사망하기 직전인 1923년까지 매년 후보에 올랐던 카탈루냐 작가 앙헬 기메라(발렌시아의 지하철 역명이 그의 이름에서 왔다)가 그랬다.
가와바타는 후보로 처음 지명되고 3년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스웨덴 한림원 회원이자 작가인 하리 마르틴손(1974년 수상자)이 1965년 처음 추천했다. 1943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각본을 쓴 칼 라그나르 이에로브는 3명을 추천했는데 그중 하나가 가와바타였다. 1966~67년에는 하워드 히벳 하버드대 교수가, 1968년에는 한림원 회원이자 작가인 에이빈 욘손(1974년 수상자)이 추천하면서 결국 수상했다.
만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아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받았다면 어땠을까. 일본의 로비를 의심하는 주장들이 부유(浮遊)하지 않았을까. 의혹과 억측, 그리고 선동은 상대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까내릴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영원히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정신 승리만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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