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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민들 선관위 과태료 폭탄에 '멘붕'

김천시선거관리위원회. 매일신문DB
김천시선거관리위원회. 매일신문DB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김충섭 전 김천시장에게 명절 선물을 받았던 김천 지역 주민들에게 억대의 과태료가 부과(매일신문 5월 20일 보도)되면서 지역사회가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시민은 선물 수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고, 다른 일부는 고개를 숙이는 등 공개적으로 언급을 꺼리면서 서로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김천시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일 김천 시민 902명에게 5억8천700만원의 과태료 고지서(사전 안내문)를 발송했다. 과태료 액수는 금품수수 금액에 따라 10만원부터 2천만원까지 제각각이다. 이는 대상자와 금액 모두 선거법상 위반으로 단일사건에 부과된 것으로는 역대 최다이다.

선관위로부터 과태료 고지를 받은 시민들은 지난 2021년 설과 추석 명절 무렵에 김 전 시장으로부터 현금과 식품 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시장은 지역 주민에게 선물을 돌린 사건으로 인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해 11월 28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돼 당선이 무효가 됐다.

◆"선물(?), 구경도 못했습니다"

"항암치료 차 서울 병원에 누워있었는데 선물을 받았다구요?"

김천시 평화동에 거주하는 A씨는 40만원의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다. 고지서에는 21년 추석과 설에 각각 2만원 상당의 참치 선물 세트를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A씨는 당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선관위를 찾아가 병원 진료기록 등을 첨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는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너무 황당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처럼 과태료 통보에 반발하는 시민들도 상당수다. 김천시선관위에 따르면 과태료 통보서를 받고 의견서를 제출한 시민은 23일까지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화로 항의한 시민들은 수백 명에 이른다.

또 다른 주민 B씨는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과하주 한 병을 받은 것으로 통보돼 28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B씨는 "선물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집에 있건 없건 동사무소 직원이 현관 앞에 두고 갔을 경우,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 앞에 과하주가 있으면 가까운 사람이 명절 선물을 두고 갔다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겠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몇 만 원짜리 선물이 과태료 폭탄으로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지요.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과태료를 납부했습니다."

김천시 양금동에 거주하는 C씨는 지역에서는 유지로 통한다. 이전에도 명절이면 동사무소 직원들과 작은 명절 선물을 주고받았고 당시에도 큰 부담 없이 선물을 수령했다.

그는 "법은 상식선에서 집행돼야 한다. 명절에 정을 나누는 몇 만 원짜리 선물을 마치 뇌물처럼 취급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문했다.

C씨처럼 조용히 과태료를 납부한 이들도 상당수다. 김천시선관위에 따르면 22일 오전까지 과태료를 납부한 이들은 모두 3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선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빨리 납부해 감면 혜택을 받았다. 통지서를 받은 후 3일 이내 납부하면 20%를 감면 받을 수 있어서다.

◆한껏 움츠린 공직사회

"주민들과 사소한 만남도 부담스럽습니다. 앞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관위의 과태료 폭탄 소식이 전해지며 일선 읍·면·동사무소 직원들뿐만 아니라 김천시청 공무원들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공무원들이 직접 선물을 배달한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김천시 공무원 D씨는 "읍·면·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지역 유지들의 협조 없이 업무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과태료 부과 대상자들이 대부분 지역 유지들이라 앞으로 업무 협조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인접한 시·군 공무원들도 김천시선관위의 과태료 부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부분 김천시와 비슷한 방식으로 지역 유지들과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이다.

김천시선관위 관계자는 "선물을 받지 않은 것이 입증되면 과태료가 면제될 수도 있다"며 "예정 통지서를 받고 3일 이내에 과태료를 납부할 경우, 20% 감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예정 통지 후 본 과태료가 통지되면 20일 이내에 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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