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지금도, ‘난쏘공’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이 문장을 연습장에 꾹꾹 눌러 썼던 청춘의 밤이 있었다. 답답한 현실이 눈물겹고, 시원한 문장이 뭉클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세상의 부조리를 마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했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다. 시대의 아픔을 다루면서도 짧은 호흡의 시적인 문장은 문학청년의 꿈을 키웠다.

1978년 출간된 난쏘공은 '뫼비우스의 띠' 등 12편의 연작 소설집이다.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가족'이 주인공이다. 소설은 도시빈민의 삶과 계급 갈등을 다뤘다. 암울한 유신 체제 말기에 나온 이 책은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거기엔 아픔, 분노, 울분과 함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가장 혜택받지 못한 계층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한 말인데, 난쏘공은 여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일 것이다.

난쏘공은 1970년대 한국 사회 모순을 고발하면서도 환상적 기법으로 미학적 가능성을 높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운동권 필독서에서 대학 신입생 필독서로, 교과서 수록은 물론 2000년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출제됐다. 그래서 MZ세대에게도 친숙하다. 난쏘공을 지은 조세희 작가가 지난 25일 별세했다. 조 작가는 생전에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했다.

세상은 작가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다. 난쏘공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올해까지 320쇄 148만 부가 인쇄됐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사회적 모순은 여전하다. 평균 생활수준이 높아졌지만,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상위 20% 계층(5분위)이 하위 20% 계층(1분위)보다 소득이 6배 더 많았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로, OECD 조사 대상 37개국 중 가장 높았다. 청년의 삶도 황폐하다. 부채는 폭발적으로 늘고 일자리는 불안하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심해지고 있다. 모두가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말자. 막다른 골목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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