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나눔의 기쁨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

얼마 전 매실 3년생 묘목 400여 그루를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묘목을 가지러 온 사람들 중에 시중에서는 그런 정도 묘목이면 한 그루에 5만 원 전후로 팔린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고맙다는 마음의 표현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 모르지만, 나는 밭에서 키운 것을 팔아 본 적이 없고, 내가 열심히 키운 것을 기꺼이 가져가 주셔서 키워 주신다니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3년 전 봄에 밭에서 우연히 매실 새싹들을 발견하고 너무 신기해 밭 한쪽으로 모두 조심스레 옮겨 심었다. 아마도 지난 20여 년 봄마다 그런 새싹들이 많았는데 무심코 지나갔는지 모른다고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매년 쑥쑥 자라더니 올봄에는 내 키만큼 자랐다. 묘목들이 밀집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옆에 심은 작약들이 햇볕을 쬐지 못할 정도가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권해도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려 보라고 했다. 인터넷을 잘 이용하지 않는 터라 처음에는 흘려들었다가 혹시나 해서 올려 보았다. 그랬더니 근 몇 주 만에 모두 가져가 버렸다. 너무 기뻤다. 내 고민이 없어지면서 나눔의 기쁨까지 만끽하게 되어 생전 처음으로 인터넷에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 속담 중에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만큼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만 오랫동안 그 말을 잊고 살다가 나이 70에 느낀 기쁨이라 정말 감개무량이었다. 어릴 때는 곧잘 그랬다. 모두들 가난했는데도 다들 나눠 먹었다. 학창 시절 도시락을 싸 다녔는데 항상 나눠 먹었다. 소위 운동권 생활을 하면서도 그랬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나눠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외국에 살면서 외국인들과 나눠 먹기를 시도하다가 몇 번이나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 밭에서 키운 먹거리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었지만 삼사십대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즐겼지만 바비큐를 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한 해 천 명 이상이 온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다. 먹는 것만이 아니라 돈이나 책 등을 나누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젠 뜸해졌다. 나눔을 하면서 무엇보다 지켜야 할 원칙은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일방적인 나눔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관계를 단절시키게 된다. 나눔을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눔을 익명으로 하는 것이 좋다. 이번에 묘목을 나누면서 그것을 가져간 사람들이 누군지 모른 것이 좋았다.

사실 전근대의 재화 교환은 개인적 욕구의 충족이나 만족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형성과 재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나눔의 경제가 중심이었다. 반면 근대적 시장은 물신의 형태로 드러나는 가치의 상징물들을 '상품'과 '화폐'라는 형태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했다. 요즘 권력이 애호하는 자유라는 말의 실체인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생겨난 공동체와 나눔 경제의 파괴 등에 따른 부산물로 19세기 이후 서구에서 조작된 환상에 불과하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규제와 규칙을 정한 법체계와 국가기관인 관료가 필요해졌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나눔이라는 우리의 상상력마저 마비시키고 그것에 저항하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데, 그 좋은 예가 공존과 평화를 외치는 군중을 폭력 집단으로 간주하며 그들을 물리치는 슈퍼 영웅을 그린 영화 배트맨이다. 공권력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집행자인 배트맨이 요즘 우리 주변에도 창궐한다. 그리고 그런 것에 열광하는 우리는 '전면적 관료주의화'의 희생양인 동시에 동조자이기도 하다. 그런 자유시장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나눔을 회복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한 권 한 권, 한 쪽 한 쪽마다 특별한 추억과 사연이 있는, 평생 국내외에서 모은 1만 권이 넘는 귀중한 장서를 포함하여 내가 가진 상당 부분을 조만간 그런 익명의 나눔으로 정리하여 누군가에게 유익하게 하고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것이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누릴 기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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