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거리두기와 선 넘기

농협 경주환경농업교육원 김성규 교수

농협 경주환경농업교육원 김성규 교수
농협 경주환경농업교육원 김성규 교수

요즘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선 넘네"이다. 어른들도 일상생활에서 "그 친구는 다 좋은데 한 번씩 선을 넘을 때가 있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선을 넘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선(線)"은 인간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예의나 예절의 최소한"일 수도 있고, 참을 수 있는 한계, 즉 "수인한도(受忍限度)"일 수도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간섭받기 싫은 "사적인 영역"으로 볼 수도 있고,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선 넘네"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 것을 보면서,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너무나 쉽게 선을 긋고, 그러한 선의 경계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한 현재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마스크 착용의무가 해제되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고,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어오면 나도 모르게 흠칫 뒤로 물러서게 되고, 산책길에서 아는 이웃들을 마주칠 때도 멀찍이 떨어져서 인사를 나누고, 직장 회식도 동창회·동호회 모임도 이젠 왠지 꺼려지는 행사가 되어 버렸다.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그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조류와 포유류에게는 같은 무리 간에 제각기 점유하고 방어하는 영역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간에 유지하는 일련의 일정 거리가 있으며, 인간도 이러한 동물들처럼 동료들 간에 거리를 유지하는 일정한 방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동북부 해안지역 토박이로서 서로 접촉이 없는 중산계급의 건강한 성인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자료를 토대로, 인간관계의 거리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는 사랑을 나누고 맞붙어 싸우고 위로하고 보호해주는 거리인 "밀접한 거리"로 45㎝ 이내이고, 두번째는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리인 "개인적 거리"로 팔길이 정도의 거리인 1.2m 이내의 거리를 말하며, 세번째는 비개인적인 업무가 행해지는 거리인 "사회적 거리"로 3.6m 이내의 거리이고, 네번째는 배우나 강연자와 청중들과의 거리 정도를 나타내는 "공적인 거리"로 3.6m 이상을 말한다.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지역사회 감염 차단을 위해 실시된 예방 캠페인으로, 에드워드 홀이 말한 "사회적 거리"와는 그 의미가 다르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거리를 에드워드 홀의 분류상 세번째인 "사회적 거리"(1.2m~3.6m)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넘지 못하는 선을 지워 나가는 것,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닐까?

필자의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에서 이런 내레이션을 찾아냈다.

"선을 지킨다는 건, 지금껏 머물던 익숙함의 영역, 딱 거기까지의 세상과 규칙과 관계들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그건 결국 선을 넘지 않는다면 결코 다른 세상과 규칙과 관계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관계를 꿈꾼다면, 사랑을 꿈꾼다면 선을 넘어야만 한다. 선을 지키는 한 그와 당신은 딱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짧은 시를 떠올리며, 필자는 이렇게 글을 맺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선이 있다. 그 선을 지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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