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스조명 잔혹사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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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조명의 혁명은 1800년대 초에 영국에서 가스조명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양초와 기름 대신 가스를 사용한 신기술의 조명은 매우 밝았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파이프로 유입되는 가스의 흐름을 밸브 시스템으로 제어하여 원거리에서도 조명의 밝기를 조정할 수 있었다. 또 처음으로 무대의 조명을 밝게 유지하면서 객석의 조명을 어둡게 할 수도 있었다.

최초로 가스등이 공개적으로 소개된 곳은 런던의 리세움 극장(현재 뮤지컬 '라이언 킹'을 공연 중)이다. 1804년에 이 극장에서 가스등이 시연된 후, 처음에는 극장의 정면이나 입구를 비추는 데만 사용되다가, 13년이 지난 1817년에서야 무대조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가스조명은 유럽의 각 극장으로 빠르게 확산이 됐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가스등을 사용한 작품은 1822년에 왕립음악원(파리 국립오페라의 이전 공식 명칭)에서 공연된 오페라 '알라딘과 요술램프'다. 그해에 파리 국립오페라의 본거지였던 살레 르 펠레티에 극장에 가스조명이 설치됐다. 뒤이어 1823년에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도 가스 조명 시스템을, 배우들이 드나드는 경사로를 제외한 극장 내에 광범위하게 설치했다. 배우들은 가스등의 빛이 너무 밝다고 불평했기 때문에 1873년까지 경사로에는 평소에 익숙했던 등유 램프가 사용됐다.

가스등은 미국의 극장에서도 채택됐다. 1816년에 필라델피아의 체스트넛 스트리트 극장은 미국 최초로 가스조명 시스템을 설치했으며, 안전하면서도 훌륭하다고 신문에 자랑했다. 하지만 불과 4년 후에 이 극장은 불에 탔고, 이 사건은 가스조명 시스템의 첫 번째 사고로 기록된다. 그럼에도 미국의 여러 극장은 무대에 가스조명을 도입했다.

가스조명은 획기적이었지만, 그 대가도 컸다. 1860년과 1880년 사이에만 최소 50개의 극장이 소실됐는데, 대부분 조명으로 인한 화재였다고 한다. 큰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은 필라델피아의 컨티넨탈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2막의 발레를 준비하던 중 벌어졌다. 한 발레리나의 드레스가 가스 분사기에 걸려 불이 붙자, 같이 출연을 준비하던 여동생이 달려와 불을 끄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기 드레스에 불이 옮아 붙었다. 그 상태에서 놀란 나머지 이 여동생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다른 발레리나의 드레스에도 불을 옮겼고, 불이 붙은 다른 소녀들도 불을 끈답시고 그냥 화다닥 뛰어다니기만 했다. 그날 사고로 7명의 발레리나가 죽었다.

다음 해 파리의 살레 르 펠레티에 극장에서도 발레리나 한 명이 크게 화상을 입었다. 오페라 '포르티치의 벙어리 아가씨'의 2막 리허설 때, 엠마 리브리라는 발레리나가 등장하면서 스커트를 들어 올리자, 바람이 일어 가스 분사기의 화염이 그녀의 튀튀(발레 스커트)에 옮겨붙었다. 활활 타는 화염에 휩싸인 엠마는 세 번이나 무대를 가로질러 뛰어다녔고, 간신히 이를 붙잡은 소방수의 도움으로 불은 꺼졌다. 그녀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맨몸이 보일까 봐 불붙은 천을 놓지 않았다. 붙잡히기 전까지 그녀는 거의 뛰어다니는 횃불이었다. 안타깝게도 일 년 후 그녀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전기와 백열전구의 등장으로 가스조명(gaslighting)의 잔혹사는 끝났다. 하지만 심리적 지배를 통한 심각한 유형의 정서학대 및 조작이라는 의미의 단어로서 가스라이팅 잔혹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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