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년 딛고 새로운 100년으로…미래로 도약하는 대구 상원고

'대구공립상업학교로' 1923년 4월 개교
역사의 질곡에도 어렵게 명맥 유지… 은행장 여럿 배출
상원고의 자랑 '럭비부', 2023년도 전국대회 2관왕 달성

대구상원고 전경. 상원고 제공
대구상원고 전경. 상원고 제공
1927년 당시 대구 중구 대봉동 60번지에 있었던 대구공립상업학교 교사 전경. 상원고 총동창회 제공
1927년 당시 대구 중구 대봉동 60번지에 있었던 대구공립상업학교 교사 전경. 상원고 총동창회 제공

교육 수도 대구에서 처음 탄생한 공립 상업학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가 2023년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상원고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시련의 역사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며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이 같은 역사 속 2024년은 상원고가 지나온 100년을 딛고 새로운 100년으로 도약하는 해이기도 하다.

상원고의 지난 100년의 역사와 앞으로 도약할 미래 비전에 대해 살펴봤다.

◆지역민의 염원 품은 대구공립상업학교의 탄생

상원고는 1923년 4월 16일 당시 일본인 학교였던 대구공립중학교의 교실 2개를 빌린 가교사에서 '대구공립상업학교'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학교 인가 3년 전부터 대구에선 상업학교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구는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의 농산물 집산지인 데다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일본인들의 진출이 크게 늘면서 상업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으나 상업학교가 없었다.

지역 유지와 상공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서울 남쪽 제1의 도시에 상업학교가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등 상업학교 설치는 당시 지역민들의 숙원이었고, 이에 대구 부윤(府尹, 현재로 치면 대구시장)도 상업학교 설립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대구공립상업학교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만큼 첫 신입생 모집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인 학생 50명과 일본인 학생 50명을 합쳐 100명을 선발하는 데 무려 593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그중 한국인 지원자는 426명으로 8.4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상원고의 교과목으론 수신, 국어(일본어), 수학, 지리, 역사. 이과, 영어, 경제, 체조, 도화 등이 있었다. 한국어는 '조선어'라는 이름으로 전 학년 일주일에 2시간으로 편성돼 전체 시수가 일주일에 10시간에 지나지 않으면서 일본어 수업 시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도 했다.

3학년 이상부턴 상업요항, 상품, 상업지리·역사, 상업산술, 상업법규, 상업영어 등 상업 관련 학과목을 배웠다.

◆한국 근현대사의 구심점으로 나라를 이끌어온 동문들

대구공립상업학교로 출발한 상원고는 대구공립상업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 등 교명을 거쳐 2004년 현재의 '대구상원고등학교'가 됐다. 학교 또한 대봉동(대구 남구 이천동) 교사에서 지난 1984년 9월 지금의 달서구 상인동 교사로 옮겨졌다.

교명이 몇 차례 바뀔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상원고는 민족과 나라에 헌신하며 역사를 이끈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 왔다.

독립운동가 장원수(4회) 선생은 1927년 일우동맹을 조직해 항일 민족운동을 펼쳤고, 1931년엔 충무공 위토(묘에서 지내는 제사 비용을 충당하고자 경작했던 논밭) 보존을 위해 전교생이 모금 운동을 펼치고 이를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1938년 한지성(4회) 장군은 조선의용대를 거쳐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대장으로 활약했다. 9명으로 구성된 선전 부대였던 인면전구공작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연합국과 나란히 일본군에 맞서 싸웠고,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영국 국왕에게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50년 격전 중인 전장에 출정하는 상원고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출정 깃발. 김경수(24회) 동문이 학도의용군 일원으로 출정할 때 받은 것으로, 1994년 상원고에 기증했다고 전해진다. 윤정훈 기자
1950년 격전 중인 전장에 출정하는 상원고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출정 깃발. 김경수(24회) 동문이 학도의용군 일원으로 출정할 때 받은 것으로, 1994년 상원고에 기증했다고 전해진다. 윤정훈 기자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 시절엔 학도병으로, 1960년 독재정권 하에서는 2·28 민주화운동의 첨병으로 참여하는 등 상원고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늘 주저 없이 일어섰다.

그 기상을 이어받은 상원고에선 올해까지 무려 5만 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정재계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동문들이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상원고의 유명 동문으로는 ▷故(고) 최석흥(1회) 제헌국회의원 ▷故박쌍룡(23회) 전 외무부 차관 ▷故이종주(28회) 전 대구시장 ▷故이의근(30회) 전 경북도지사 ▷故김수근(7회) 대성그룹회장 ▷故박성상(15회) 전 한국은행 총재 ▷故이창희(27회) 전 부산은행장 ▷故장철훈(29회) 전 조흥은행장 ▷故문헌상(33회) 전 한국수출입은행장▷박인규(44회) 전 DGB회장 겸 대구은행장 ▷이동채(49회) 에코프로 회장 ▷김원규(51회) NH투자증권 초대사장(현 이베스트투자증권 대표이사) ▷황병욱(54회) 전 대구신용보증재단 이사장 ▷이효수(42회) 영남대 총장 ▷김병준(44회) 전 교육부총리 등이 있다.

상원고 럭비부 경기 모습. 상원고 제공
상원고 럭비부 경기 모습. 상원고 제공

◆상원고의 심장, 럭비부… 2023년에도 대단한 활약

상원고의 자랑거리로 운동부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역사와 빛나는 실적을 겸비한 럭비부는 특히 유명하다.

지난 1928년 11월 유도부와 육상부 선수를 일부 차출해 30여 명으로 시작된 상원고 럭비부는 대부분 한국 학생으로 구성돼 있어 민족의식이 투철했다. 더욱이 럭비부는 교내 식민지교육에 대한 항일투쟁의 모체이기도 했다.

1940년 조선 신궁대회와 전국 종별 럭비풋볼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각광을 받았지만, 태평양전쟁 여파로 전시 체제에 돌입하며 강제 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한국전쟁까지 발발하며 상원고 럭비부는 1954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후 1958년 제11회 전국 럭비풋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전국 제패를 이룬 뒤 현재까지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왔다.

여기에 지난 8월 제50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고교 럭비대회 우승에 이어 지난 11월 개최된 제5회 대한럭비협회장배 전국고교 7인제 럭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전국대회 2관왕을 달성하는 등 2023년 한해 역시 명성을 드높였다.

이러한 성과는 선수들의 뛰어난 기량과 더불어 학교와 동문회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진권 상원고 교장. 상원고 제공
유진권 상원고 교장. 상원고 제공

유진권 상원고 교장은 "57회 졸업생이자, 학생부장교사와 럭비감독으로 7년간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었는데, 재작년 3월 교장으로 부임하며 모교의 100주년을 맞이하게 돼 더없이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모교를 위해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우리 학생들이 배우고 운동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끊임없이 희생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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