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재봉 칼럼] 게으른 조선 사람, 부지런한 한국 사람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요즘은 어디를 가든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관광객도 많고 한국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으로 여행 오는 관광객들이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일자리를 찾아 오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사람들에 대해 놀라는 것이 있다. 부지런함이다.

24시간 운영하는 가게, 놀랍게 빠른 택배 배송, 음식 배달문화 등 외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징이다. 오죽했으면 옥스포드 사전에 '빨리빨리'(ppalli ppalli)'라는 단어가 등재되었을까!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늘 부지런하고 일처리가 빨랐던 것은 아니다. 구한말의 기록들을 보면 조선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오히려 게으름이었다. 1890년대 중반 조선을 다녀간 일본인 기자 마쓰바라 이와고로(松原岩五郞)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성이 게으른 것으로 유명한 조선인은 놀고먹기를 정말 좋아한다. (…)조선인들은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다. (…) 저축할 생각도 없고 신분 상승하려는 관념은 더 더욱 없다. 그저 먹고, 자고, 죽는 운명을 갖고 있을 뿐이다."

요즘 한국을 다녀가는 관광객들이 놀라는 또 한가지는 지갑이나 전화를 아무데나 두고 가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구한말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에는 도둑질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파리의 외방선교회 파견으로 1846년부터 1866년까지 20년간 조선에서 전교하다가 1866년 병인박해로 순교한 다블뤼 주교(Marie-Nicolas-Antoine Daveluy, 1818 ~ 1866)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엄한 처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은 무서울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다. 도적들은 거대한 칼을 차고 다닐 뿐만 아니라 칼을 능숙하게 다룬다."

구한말 조선에서 선교하고 있던 미국인 선교사가 기록한 조선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은 일상화되어 있다. 조선사람들은 수대에 걸친 연습으로 거짓말하는 기술을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상인들은 모든 거래에서 끊임 없이 사기를 치고 무리수를 둔다. 지금은 훌륭한 기독교인이 된 내 친구는 과거에는 아침에 깨어나는 순간부터 오늘은 누구에게 사기를 칠까? 하는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 말의 조선 사람들은 왜 그토록 게으르고 도둑질과 거짓말을 일삼았을까? 과연 '천성'이, '민족성'이 그랬을까?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사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이 변했나? 답은 다블뤼 주교가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이 소위 게으르다고 하지만 이는 사유재산권이 불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포자기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 19세기 중반 조선에 선교사로 온 프랑스의 가톨릭 신부도 조선 사람들이 게으른 이유는 '사유재산권이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어떤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고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는 것은 '천성'도 '민족성'도 아닌 체제때문이다. 자신이 부지런히,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아플 때는 병원도 가고 가끔 휴가도 갈 수 있게 해주면, 다시 말해서 사유재산권을 보장해 주면 그 나라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신용있는 사람들이 된다.

반면 구한말 조선의 체제는 부지런하고 정직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체제였다. 다시 다블뤼 주교의 말이다.

"정직한 관리란 조선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여운 삶을 산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세금을 내야할 뿐만 아니라 관리, 밀수꾼, 경찰, 군인, 여기에 매년 겨울과 봄이 되면 출몰하는 도적떼에게 돈을 바쳐야 한다. 조선 사람들이 소위 게으르다고 하지만 이는 사유재산권이 불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포자기 현상에 불과하다."

잘하는 정치, 좋은 정책은 부지런하고 정직한 국민을 만든다. 못하는 정치와 잘못된 정책은 게으르고 거짓말하고 사기치는 국민을 만든다. 지난 100여년의 우리 역사가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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