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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위기는 닥치는데 총선만 바라보는 정치권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희망적인 경제 전망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온갖 선행지표들이 물가 안정과 낮은 실업률, 고도성장을 예측해도 전문가들은 섣불리 장밋빛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다. 반대로 우려스러운 경제 상황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내년엔 폭망할 거야' '세계 경제가 몰락할지도 몰라' 식의 위협적인 전망에 대해선 동의를 주저한다. 재정, 통화, 신용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이들은 선출직이거나 임명직이다. 내년에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데 선뜻 표를 던질 유권자는 없다 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완곡하고 정제된 전망을 내놓는다.

그런데 2024년 세계 경제는 분명 녹록지 않아 보인다. 아니 심각한 수준이다. 암울한 전망들 속에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다. 저서 '초거대 위협: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를 통해 종말론에 가까운 칙칙한 경제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 루비니 교수가 지난해 11월 세계 경제가 10년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에 물가 상승)을 겪을 것이고, 주식과 채권 투자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0년에 걸친 대안정기는 끝났다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있었고 일부 국가들의 채무불이행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대체로 물가 상승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제시한 목표치(2%) 아래에 있었고, 노동시장도 요동치지 않았다. 대공황이나 오일 쇼크와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불길한 조짐들이 고개 들기 시작했다. 코로나 초기부터 시장에 쏟아부은 돈들은 거대한 쓰나미로 돌아왔다. 민간과 공공 모두 '부채의 덫'에 빠져 옴짝달싹하기 힘든 지경이다.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고 함부로 금리를 높일 수도 없다. 빚더미에 깔린 시장 주체들이 백기 투항하면 바로 공멸이다. 미·중 갈등은 다소 진정세를 보이지만 트럼프라는 위기 변수가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는 재집권 시 중국 제품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참모들과 논의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곳곳의 전쟁과 기후변화 등은 생산망 붕괴를 위협한다. 이는 초세계화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각자도생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대중영합주의자, 이민배척주의자, 보호무역주의자들에 힘이 실린다. 유럽 각국에선 반이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정파가 득세한다. 가난한 나라의 값싼 노동력이 사라지면 고용주는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지고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 기업의 대출 비용이 증가하니 경제활동은 위축된다. 소비가 줄고 투자가 사라지며 일자리도 없어지는 악순환이 된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위기가 닥쳐오고 있건만 우리 정치권은 막말 싸움에 여념이 없다. 총선이 대통령 중간평가라는 분석에 대해 우려와 기대를 표한다. 정책을 평가하기 전에 윤석열, 이재명에 대한 호불호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해법을 내놓고 이런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면 정책 선거 기대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려는 커지고 기대는 잦아든다. 거대 양당은 기존 지지층 결집에 몰두하고, '개혁' 이름을 내건 신당들은 존재감이 아직 없다. 정치권의 합종연횡에 금배지 쟁탈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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