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선거와 나의 카톡방 풍경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이번 총선 기간, 나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는 사라졌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 카톡방 얘기다. 친구들이 날리는 메시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소리와 진동을 죽여 놓은 터라 다행히 안면 방해는 없다. 그러나 자고 나면 산처럼 쌓여 있는 문자가 나의 '굿모닝'을 앗아간다. 선거운동 내내 그랬다.

그런데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문자 더미가 아니라 문자의 내용이다. 내 단톡방들은 '내전(內戰) 같은' 이번 선거 구도를 빼다 박았다. 윤석열을 심판하자는 쪽과 이재명·조국을 심판하자는 쪽으로 나누어져 죽기 살기로 싸우는 형국이 대부분이다.

주변을 가만 둘러보니 '질풍노도의 시대를 함께 보낸' 나의 대학 친구들이 초대한 단톡방은 대체로 윤석열 심판 분위기이고, '깨복쟁이' 고향 친구들이 만든 단톡방은 이재명조국 심판이 대세다. 어떤 단톡방에서는 두 편의 형세가 엇비슷하여 좁은 방에서 격하게 치고받기도 한다.

그런데 윤석열 심판이든 이재명조국 심판이든 언어는 한 가지이다. 헐뜯기, 저주, 조롱, 악마화, 딱지 붙이기 등의 향연이다. 있지도 않은 걸 만들어 내거나 작은 일을 부풀리는 말도 허다하다. 현기증 정도가 아니라 구토가 날 지경이다. 나는 어느 편에 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단톡방을 나가지도 못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혐오 발언(hate speech)하지 말자'라든지 '이 방은 친목을 위해 만든 거잖아'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그것도 부질없는 일인 듯하여 곧 집어넣고 만다. 가끔 봄꽃 사진을 올리는 친구들에게 하트나 붙여 주는 '소심한 저항'을 할 뿐이다. 〈혐오하는 민주주의〉(박상훈, 2023)라는 말이 정녕 이 시대의 표제어가 되고 마는 것인가? 용기 없는 자의 세상 걱정은 이런 한탄이 전부다. 부끄럽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모든 정파가 전형적인 '갈라치기' 혹은 '밀어붙이기' 전략에 매달린 선거였다. 어느 쪽도 공동체의 미래 비전을 내걸지 않았다. 심판의 파도만 일렁이는 선거판이었다. 이것과 다른 하나의 선거 전략은 '끌어당기기' 혹은 '껴안기' 전략이다.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을 조곤조곤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이런 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정치 세력은 자극적인 말로 유권자들을 선동하고 동원하려고 했다. 막말은 그것을 위한 필수적 도구였다. 나의 단체 카톡방들은 이런 정치 현실의 그림자인 것 같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내 카톡방에도 평화가 찾아오려나?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하다. 불길한 예감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많은 전문가는 이번 선거로 구성되는 국회가 지난 번보다 더 대결적이고 분열적일 것으로 관측한다. 지난 대선 이후 계속되고 있는 '내전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정치는 여전히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멱살잡이하면서 속절없이 시간이나 죽일 거라는 얘기다. 나도 그렇게 본다.

우리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파국적 대결을 불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선거의 구도, 출마한 후보자의 성향, 선거 캠페인의 프레임과 메시지, 세력 분포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다는 말이다. 선거운동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의 흐름도 그랬다. 선거가 끝나는 오늘부터는 이런 흐름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른바 '대전환의 과제'를 해결하려면 기존 진영 대결의 질곡을 넘어서야 한다. 친일-반일, 남-북, 민주-반민주, 진보-보수, 영남-호남 등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승리와 패배에 관계없이 여야는 서로의 대표성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사회가 이를 실현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다시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론의 힘에서 도움을 얻어야 한다. 정치사회가 빠져 있는 진영 논리나 전문가 집단이 가지고 있는 확증편향을 넘어설 수 있는 '변화의 힘'을 시민사회는 가지고 있다.

자기 이해와 가치를 넘어서고 다른 사람의 처지와 기분을 헤아리며 함께하는 공감의 힘이 시민들에게는 있다. 오늘부터는 대결과 혐오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희망이 우리의 카톡방에서 봄꽃처럼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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