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각 지역은 그 고장 나름대로의 상징적 인물을 지정하고 있다. 대부분 문화예술계 인물들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모두 그곳의 상징적 위상으로 자리를 잡아 지역의 문화예술 형성과 발전, 혹은 정신사 구축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경북 영천이 배출한 인물 왕평 이응호(1907~1940)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20세기 초반 국권 패망 직전, 영천 성내동에서 태어난 왕평은 소년 시절 서울에서 성장하면서 식민지 시대 대중문화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개척과 성과를 이룩하기 시작한다.
주된 활동 분야는 노래, 연극, 악극, 만담, 영화 등이다. 불과 20대 초반 약관의 나이로 악극단 '연극사'를 이끌며 전국을 순회 공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폴리돌레코드 문예부장을 맡아 여러 뛰어난 가수를 발굴하여 음반을 제작하였다. 작사는 대개 왕평 자신이 전담했고 이를 즉시 축음기 음반으로 만들어 고통과 실의에 빠진 식민지 대중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
왕평이 특히 주력했던 가요의 성격은 민족의 전통민요를 개량한 신민요 장르였다. 작곡가 문호월 등을 비롯한 걸출한 재능을 지닌 인물들과 협동하여 전국 각지에서 민요를 발굴 채록하고 그것을 대중음악에 접목시키는 활동은 왕평의 눈부신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왕평은 여러 명의 가수를 발굴했다.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왕수복과 선우일선을 들 수 있다. 연극배우 출신의 이애리수를 가요계의 총아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애리수는 왕평의 인도 속에서 민족가요로 일컬어지는 절창 〈황성옛터〉(원제목 '황성의 적[跡]')를 발표했고, 선우일선은 민족의식과 국토 사랑으로 넘치는 노래 〈조선팔경가〉를 발표했다. 왕수복은 〈그리운 강남〉 〈고도의 정한〉 〈인생의 봄〉 등의 절창이 있다. 그들의 가요 작품은 당시 최고의 대중 잡지였던 「삼천리」에서 시행한 가수 인기투표에서 모두 최고 순위를 차지했다.
수년 전 대구MBC에서는 〈황성옛터〉와 왕평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왕평, 조선의 세레나데〉를 방영한 바 있다. 왕평 이응호의 생애는 오로지 식민지 대중문화를 조직적 체계적으로 가꾸고 자리를 잡게 해서 동시대 주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게 하려는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 고향인 경북 영천에서는 일찍부터 왕평가요제를 개최해 올해로 29회째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평 이응호란 인물에 대하여 정부의 공식적 인정과 추천이 뒤따르지 않아 안타깝다. 한국 대중문화사를 통틀어 왕평 이응호만큼 자기 시대를 위해 혼신의 노력과 열정을 쏟은 인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왜 왕평은 아직도 정부가 매년 선정하는 문화인물에 선정되지 못하는가. 왕평의 문화인물 선정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라 하겠다.
33세로 평북 강계극장에서 무대 공연 중 쓰러져 요절하기까지 혼신의 열정을 바쳐 식민지 대중문화 운동을 위해 노력한 왕평의 생애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영천이 배출한 위인 왕평 이응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문화예술 발전의 진정한 유공자이다.
영천 시민들은 왕평의 문화인물 선정을 기대하고 있다. 영천시에서는 『왕평 이응호 평전』 및 『왕평전집』 발간, 왕평기념공원 조성, 왕평대중문화관 건립 등 여러 사업을 즉각 실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동순(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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