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조두진]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잘 쓰는 방법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이 31조8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 돈은 1인당 최저 15만~최고 55만원까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12조2천억원)과 7년 이상 5천만원 이하 개인 빚 탕감(4천억원), 사회간접자본 투자(1조4천억원) 등에 쓰인다.

경기 침체로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이 곡(哭)소리를 내는데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해라, 장사 되는 곳은 잘만 되더라, 안 되는 건 자기 탓 아니냐'는 입장을 고집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불경기엔 돈을 풀고, 시장이 너무 뜨거우면 식히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문제는 돈을 풀었을 때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영향에 대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했는지,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방법은 마련돼 있느냐는 것이다.

올해 5월 1차 추경(13조8천억원)에 이어 또 32조원에 가까운 돈을 민간에 푼다지만 이 돈이 성장률을 높이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민간에 풀린 돈이 100% 소비와 투자 진작(振作)으로 연결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쿠폰이어서 안 쓸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쿠폰을 소비하는 만큼 기존 지출을 줄일 테니 말이다.

국가부채도 문제다. 2차 추경을 위해 정부는 국채 21조1천억원을 발행한다. 연말 국가부채는 1천300조원을 넘어서게 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차 추경 당시 48.4%에서 49.1%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올해 5월 "나랏빚이 1천조원으로 늘었다는 등 나라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라가 빚을 안 늘리려고 하니 자영업자들이 망해 간다는 말이다. 일리 있다. 하지만 나라가 빚더미에 앉으면 국민은 자동 빚쟁이가 된다. 5년짜리 정부가 국민 담보 빚잔치를 너무 쉽게 여긴다.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基軸通貨國)이 아니다. 환율이 국가채무에 민감하고, 환율이 오르면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가 100%가 넘어도 잘 사는 나라도 있다고 하지만, 국가채무 100%가 넘어도 잘 사는 나라(미국, 일본, 프랑스 등)는 대부분 기축통화국이다. 발행하는 통화(通貨)가 자국 내에서만 주로 통용되는 우리나라와는 조건이 다르다. 비기축통화국으로 국가채무 100%가 넘는 그리스·베네수엘라가 잘 사는가.

국가채무도 걱정이지만, 국민의 기상(氣像)이 꺾일까 더 두렵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없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다. 오직 국민의 성실, 노력, 창의성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 예로 우리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석유 수출국이다. 원유를 수입해 고품질 정유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다 판다. 그 액수가 2023년 기준 우리의 전체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입액(1천128억달러)의 약 44%(499억달러)에 달한다. 성실, 노력, 창의성으로 고도의 정제 기술을 개발한 덕분이다.

도태우 변호사를 중심으로 일군(一群)의 시민운동가들과 정치인들이 '국민재단 빛(가칭)' 설립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 국민 빚잔치'에 반대하며, 받은 쿠폰 액수만큼 기부해 대한민국의 성실, 자조(自助) 정신을 지키고 키우는 공익재단을 설립하자는 것이다.

형편이 무척 어렵다면 쿠폰을 받아 써야 한다. 하지만 15만원 쿠폰이 없어도 무탈하다면 받은 쿠폰 금액만큼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한 '한국인의 기상'을 지키는 데 쓰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