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AI] 워킹맘을 도와줘…가정용 피지컬 AI 등장
퇴근 후 현관문을 열자 한숨부터 나온다. 거실에는 아이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있고, 싱크대에는 아침에 먹은 그릇이 그대로 쌓여 있다.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아이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니 밤 10시. 이제야 진짜 퇴근인가 싶어 한숨 돌리려는 찰나, '삐리삐리삐~'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됐다는 소리가 눈치 없이 흘러나온다. "누가 좀 대신 치워줬으면…." 워킹맘이라면 한번 쯤 해봤을 생각. 그런데 그 '도움'이 굳이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쓸데없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일만 조용히 처리해주는 존재라면 말이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몸을 가진 '피지컬 AI'가 인간의 노동까지 대신하려는 시대가 오고 있다. ◆ 로봇청소기는 시작일 뿐 작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도 핵심 화두 중 하나는 단연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더 주목받은 건 이러한 로봇들이 공장이나 산업 현장을 넘어 '가정'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테슬라는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고, 미국 AI 로봇 기업 1X테크놀로지는 집안일 수행용 로봇 '네오(NEO)'를 선보였다. 이 로봇은 설거지와 빨래는 물론, 문을 열어주거나 물건을 가져다주는 기능까지 수행한다. 가격은 약 2천900만원 수준. 월 구독형 모델도 등장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가정마다 자동차처럼 로봇을 1~2대씩 보유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로보틱스 연구소를 신설하고 글로벌 로봇 기업인 피규어 AI 등에 투자했다. LG의 서비스 로봇 '클로이드'는 사람 손처럼 움직이는 정교한 팔을 통해 접시를 정리하거나 빨래를 집는 동작까지 구현한다. 단순 반복 노동을 넘어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존재'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핵심에는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사 노동 시간을 최대한 줄여 인간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 AI는 이제 '생각'만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발전 속도가 빨라진 배경으로 '월드모델(World Model)' 기술을 꼽는다. 기존 로봇이 단순히 카메라로 사물을 인식하고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주변 환경과 물체 관계, 이후 상황 전개까지 내부적으로 예측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컵 하나를 집더라도 단순히 위치만 인식하는 게 아니다. 어느 방향으로 손을 뻗어야 넘어뜨리지 않는지,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등을 먼저 시뮬레이션한 뒤 움직인다. 쉽게 말해 로봇이 인간처럼 '머릿속으로 먼저 행동을 그려보고 움직이는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궁극적인 시장 역시 공장보다 '가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간 생활 공간 자체가 사람 신체 구조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데니스 홍 UCLA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계단, 문손잡이, 주방 도구 등 대부분의 생활 환경은 인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며 "결국 로봇도 사람과 비슷한 형태여야 실제 생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 리얼월드의 류중희 대표 역시 "사람이 일하는 환경 자체를 바꾸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결국 사람 손처럼 큰 물체와 작은 물체를 모두 다루고 공구까지 사용할 수 있는 형태가 가장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로봇도 결국 엄마가 관리" 하지만 기대만 있는 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육아 카페에서는 벌써부터 "로봇 상전 모시는 시대 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로 로봇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센서 청소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오류 관리 등이 필요하다. 한 워킹맘은 "예전에는 집안일을 직접 했다면 이제는 로봇 오류를 해결하고 센서를 닦고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며 "가사노동이 사라진다기보다 노동의 형태만 바뀌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사회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로봇에게 "정리해", "가져와" 같은 명령형 말투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보다. 집안 구조와 가족 대화, 생활 패턴까지 모두 알고 있는 로봇이 해킹당할 경우 사생활 침해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 시대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간의 노동과 관계, 생활 방식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디지털 AI와 달리 물리 세계의 AI는 작은 오류 하나도 실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성과 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07-03 14:14:00
[창간 80년,격동 80년] 통일을 말하던 해, 민주주의는 멈췄다
1972년 여름, 서울과 평양 사이 전화선이 다시 연결됐다.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서로를 향해 "대화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북괴' 대신 '북한'이라는 공식 호칭을 쓰기 시작했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말 통일 분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퍼졌다. 하지만 그해 가을, 국회는 해산됐다. 헌법 기능은 정지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1972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현대사의 가장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가 문을 연 해이기도 했다. ◆ 7·4 남북공동성명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5월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1972년 7월 4일, 중앙정보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뜻밖의 사실을 공개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북한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성명이 발표되고 있었다. 남과 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동 합의문을 발표한 순간이었다. 이른바 '7·4 남북공동성명'. 남북은 이 성명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에 합의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민족 스스로 통일 문제를 해결하며,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체제와 이념 차이를 넘어 협력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합의였다. 남북은 상호 비방과 무장 도발을 자제하고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 추진, 서울~평양 간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도 담겼다. 정부는 성명 발표 다음 날인 7월 5일부터 공식 호칭 역시 기존 '북괴' 대신 '북한'으로 변경했다. 실제로 그해 8월에는 서울~평양 간 전화가 27년 만에 개통됐고, 남북 적십자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회담을 진행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말 통일 분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퍼졌다. 7·4 공동성명은 이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등 남북 대화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 1972년 10월, 유신 하지만 평화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7·4 공동성명이 발표된 지 불과 석 달 뒤인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특별선언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며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는 해산됐고 정당 및 정치활동도 중지됐다. 이후 비상국무회의를 중심으로 새 헌법 개정안이 마련됐고, 같은 해 11월 국민투표를 거쳐 유신헌법이 확정됐다. 유신체제는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였다. 대통령 간선제와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 등이 포함되며 권한은 크게 강화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내외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1969년 발표된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거론됐고, 미·중 관계 개선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북한 역시 1968년 1·21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을 벌이며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었다. 국내 상황도 불안했다. 고도성장 속에서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갈등은 커지고 있었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등 사회적 충격도 이어졌다. 여기에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접전을 벌이며 정치적 위기감도 높아졌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안보 위기와 정치 불안을 명분으로 더욱 강력한 통치체제를 선택하게 된다. ◆ 화해의 시대? 독재의 출발점? 1972년은 한편으로는 남북 대화와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해였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권위주의 체제인 유신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7·4 남북공동성명은 단순한 화해의 상징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남북 모두 내부 체제 결속과 권력 강화를 위해 대화 국면을 활용했다는 시각이다. 실제 남한은 같은 해 10월 유신체제로 들어갔고, 북한 역시 12월 사회주의헌법 개정을 통해 주체사상을 명문화하며 권력 집중 체제를 강화했다. 당시에도 7·4 공동성명이 정치적 목적에 활용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존재했다. 남북 모두 체제 경쟁 속에서 대화를 선전 효과와 내부 결속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결국 성명 이후의 합의들도 대부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실제로 성사되지 못했고, 남북조절위원회 역시 뚜렷한 성과 없이 중단됐다. 평화와 통일의 기대가 커졌던 1972년. 그러나 그해 한국 사회는 동시에 더 강한 통제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2026-07-03 13:21:00
"태서는 이맘때(임신 37주) 몸무게 몇 kg이었어?" 출산을 앞둔 회사 선배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분명 내 배 속에도 태서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웃으며 말했다. "저 지난달 태서 몸무게도 기억 안 나요. 뱃속에 있을 때가 기억날 리가요." 선배뿐만 아니다. 육아 후배들이 "몇 개월에 걸었어요?", "통잠은 언제 잤어요?", "18개월 진짜 힘들어요?"라고 물어도 늘 비슷하다. "글쎄…." 분명 내가 키웠다. 하루 24시간 붙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 나니 기억이 흐릿하다. 물론 태서는 비교적 수월한 아이였다. 통잠도 빨랐고, 지금도 잠꾸러기이며 밥도 (항상) 잘 먹고 이앓이도 없었다.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다는 '마의 18개월'도 우리 집에는 크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몇 번을 했는지 셀 수도 없는 수유.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한 안아주기. 끝이 보이지 않던 기저귀 갈이. 밤새 열이 올라 체온계를 들고 안절부절 못하던 순간들. 이유도 모른 채 함께 울었던 새벽도 있었다. 분명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잊힌다. 어쩌면 망각은 부모에게 주어진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수많은 밤샘과 걱정, 눈물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아이를 향한 애정만 남는다. 오늘도 나는 망각할 것이다. 태서가 참외를 달라더니 갑자기 사과를 달라고 하고, 또 금세 블루베리를 달라고 떼를 썼던 일을. 그리고 함께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쿨쿨 잠이든 태서를 보고 웃음 짓던 일을. 아마 전자는 잊고 후자만 기억하게 되겠지. 어쩌면 그래서 부모들이 둘째를 낳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육아를 망각하는 순간 둘째가 생긴다"고. 다른 부모들보다 훨씬 심한 망각증 환자인 나로서는 꽤 위험한 이야기다. 괜히 불안해진 나는 오늘도 혼자 조용히 읊조려본다. "조심하자...^^"
2026-07-03 12:25:00
[YES KIDS ZONE] 비싼 키카 대신…육아 거지맵 어때요
최근 유행했던 거지맵을 떠올려보자. 1만원 이하 메뉴를 파는 식당들을 지도 위에 표시해 공유하던 서비스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처량할 것 같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유쾌했다. "여기 아직 7천원 김치찌개 판다", "가성비 성지 발견" 같은 후기들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서로의 절약 노하우를 나눴다. "'육아 거지맵'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육아를 하다 보니 문득 든 생각. 아이 입장료에 부모 입장료, 거기에 밥값까지 더하면 세 가족 한 번 움직이는 데 10만원은 우습게 깨진다. 그렇다고 주말마다 집에만 있기엔 아이 체력은 넘쳐난다. 그래서 기자가 한번 만들어봤다. 치솟은 물가 속에서도 "아이에게 이것만큼은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마음으로 완성된, 생활밀착형 주말 생존 지도다. ◆ 오픈런만 잘하면 가성비 甲 비싼 키즈카페 대신 '국립·시립·구립'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예약 전쟁만 뚫으면 가성비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세금 낸 보람을 이런 데서 느낀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구시 산하 시설인 대구어린이세상은 이미 유명한 육아 코스다. 보호자와 아이 각각 4천원 정도. 요즘 키즈카페 가격 생각하면 부모들 사이에서는 거의 "공짜"라는 반응이다.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다. 1층은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게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고 볼풀장과 장난감 공간이 마련돼 있다. 2층에는 역할놀이 공간과 몸으로 탐험하는 시설도 있다. 대구시육아종합지원센터도 있다. 장난감도서관부터 체험 프로그램, 놀이실, 부모 교육까지 다양하게 운영하는데 무료다.문제는 예약이다. 한 달치 예약이 열리는 날이면 사실상 티켓팅 수준. "오픈 시간 전에 미리 로그인 해놔라", "새로고침 누를 준비하고 있어라" 같은 조언이 부모들 사이에서 공유된다. 하나의 팁이 있다면 비 오는 날을 노려보라. 갑자기 취소표가 꽤 풀린다. 각 구별 육아종합지원센터도 생각보다 알차다. 집 근처를 찾아보면 의외로 괜찮은 공간이 숨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이나 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마음껏 풀어놓고 책 읽고 장난감 만질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는 점이 좋다. 돈 안 쓰고 한 두시간 버티기(?) 가능한 곳들이다. 국립대구과학관은 부모들 사이에서 거의 '가성비 성지' 취급을 받는다. 공간이 넓고 각 전시관마다 볼거리가 다양하다. 특히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꿈나무과학관은 작은 키즈카페에 가까운 분위기다. 버튼 누르고, 만지고, 몸으로 뛰어다니며 과학을 체험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공룡 특별전이나 물놀이·흙놀이 체험 같은 시즌 콘텐츠도 자주 열린다. 시간만 잘 맞추면 사이언스 수업이나 로봇 공연도 볼 수 있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로봇 주변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그 환호성에 부모들도 잠시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국립대구박물관 안에 어린이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은근 모르는 부모들이 많다. 여기도 예약은 필요하지만 시간대가 세분화돼 있어 생각보다 자리를 잡기 어렵진 않다. 역사와 문화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놀이처럼 풀어낸 공간이라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 자연은 다 공짜 날씨 좋은 날엔 사실 최고의 가성비가 따로 있다. 산, 풀, 나무다. 돈 안 들고 체력 잘 빠지고, 아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신나한다. 부모들 사이 "자연이 최고"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구수목원이나 달성공원은 대표적인 무료 육아 코스다. 돗자리 하나 들고 가도 두세 시간은 금방 간다. 아이들은 돌멩이 줍고 개미 찾고 뛰어다니느라 정신없고, 부모들은 그늘 아래 잠시 앉아 숨을 돌린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비싼 장난감보다 나뭇가지 하나에 더 오래 웃기도 한다. 넓은 광장도 육아인들에겐 중요하다. 대구스타디움이나 강정보엔 주말이면 킥보드와 자전거 탄 아이들이 가득하다. 넘어져도 괜찮은 넓은 공간을 갖춘 것만으로 부모들 만족도가 높다. 체력 넘치는 아이를 한껏 방전시키기에도 좋다. 야외인데 실내 놀거리까지 있는 곳들은 특히 인기다. 화원유원지가 대표적이다. 유원지 분수 앞에는 여름만 되면 물놀이하는 아이들이 몰려 있고, 부모들은 옆에서 신발과 옷이 젖는 걸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나무로 만든 놀이터도 있다. 특히 바로 옆 화원역사문화체험관은 숨은 꿀코스다. 미디어아트와 디지털 체험 공간이 있어 더위에 지친 아이를 잠시 데리고 들어가기 좋다. 부모들에게도 물론 피난처 같은 존재다. 경산 삼성현공원도 마찬가지다. 넓은 잔디와 그늘이 많아 돗자리 펴기 좋고, 산책로와 분수 놀이터도 잘 돼 있다. 실내 영아놀이터는 푹신한 매트 공간에 공놀이, 색칠놀이, 스티커놀이, 조립놀이까지 가능해 어린 아이 데리고 가기 좋다. 야외는 아니지만 달서구에 있는 달서목재문화관도 숨은 육아 코스다. 나무 향 가득한 공간 안에 유아 체험 공간인 '나무상상놀이터'가 운영되는데, 아이들이 나무 블록을 만지고 몸으로 뛰어놀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예약만 하면 무료로 이용 가능한 프로그램도 많다. 무엇보다 자연 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따로 있다. 육퇴가 빨라진다는 것. 햇빛 실컷 보고 흙냄새 맡으며 꼬질꼬질해진 채 집에 돌아오면, 씻고 나서 노곤노곤해진 아이가 평소보다 훨씬 빨리 잠든다. ◆ 무료 혜택 야무지게!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한 부모들의 정보력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아이 무료입장이 가능해도 문제는 늘 부모 입장료다. "애는 공짜인데 어른 둘 값이 더 무섭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또 다른 방법을 찾는다. 대표적인 게 생일 혜택 활용이다. 대구아쿠아리움은 생일자 무료입장 혜택이 있는데, 생일 당일만 되는 게 아니라 앞뒤 이틀까지 적용된다. 그래서 육아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공식도 돈다. "엄마는 생일이라 무료. 아기는 어려서 무료." 실제로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는 "이번 달 생일자 누구냐" "생일 혜택 되는 곳 리스트 공유해달라" 같은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카드 할인, 통신사 할인, 문화의 날 혜택까지 챙기다 보면 부모들은 어느새 작은 '가계부 전략가'가 된다
2026-07-03 12:24:00
"사고 없는 곳 지키던 카메라"…데이터가 찾은 대구 교통안전 해법
대구광역시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전국 평균을 웃돌며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건수는 72건으로 전국 평균(65건)보다 높고, 인구 10만 명당 사고 건수 역시 434건으로 전국 평균(379건)을 크게 상회한다. 이에 대구시는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시 전역에 총 909대의 무인단속 카메라를 설치·운영 중이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이 장비들이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최근 계명대학교 연구진과 대구시 자치경찰위원회가 진행한 연구에서 데이터 분석 결과는 단순히 카메라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어디에 설치돼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사고 없는 곳 지키는 카메라들 무인단속 카메라 설치 전후 3년간, 반경 30m 이내 교통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카메라 효과는 지역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설치 이후 사고가 감소한 지점은 416곳으로, 일정 수준의 사고 예방 효과가 확인됐다. 반면 카메라 설치 이후 오히려 사고가 증가한 지점도 200곳에 달했다. 단순 설치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고, 지역 특성에 맞는 교통안전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데이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카메라 설치 전후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무사고 지점'이 118곳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46곳은 초등학교 주변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예방 차원의 유지 필요성이 분명했다. 그러나 일부 간선도로와 고속도로 진출입 구간 등에 설치된 장비들은 실효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구진은 단순 사고 건수뿐 아니라 사고의 심각도까지 반영했다. 사망·중상 사고 등에 가중치를 부여해 금전적 피해 규모로 환산하는 EPDO(사고비용 환산법) 분석을 통해 대구시내 실제 고위험 지점을 선별했다. 분석 결과 사고 다발 지역임에도 무인단속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신규 설치 필요 지점'과 기존 장비의 방향 조정이 필요한 '고위험 지점'들이 다수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2015~2024년 10년간 경상 사고가 4건 이하였던 지점 가운데 초등학교 주변 등 필수 구역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13대를 '우선 철거 및 이설 대상'으로 선정했다. ◆ "2.6억 들여 옮기면 40억 편익" 연구 결과는 단속 장비의 단순 '철거'보다 '재배치'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연구진은 사고 예방 효과가 낮은 카메라 13대를 실제 고위험 지역으로 옮길 경우 발생하는 경제적 편익을 분석했다. 카메라 1대당 이설 비용은 약 2천만 원. 총비용은 약 2억6천만 원 수준이다. 반면 단속 장비의 사고 예방 효과를 40%로 가정했을 때, 재배치 이후 5년간 기대되는 교통사고 감소 편익은 약 40억9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단순 계산으로도 투자 비용의 수십 배에 이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데이터가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무인단속 카메라 정책을 단순히 "많다""적다"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사고 위험 지역에 얼마나 정교하게 배치돼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전체 장비 규모는 유지하되, 사고 데이터와 지역 특성을 기반으로 장비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스마트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진은 "전체 장비 대수는 유지하되 데이터에 기반한 효율적 재배치 중심의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며 "향후에는 교차로의 기하구조나 교통량, 그리고 과속·신호위반 등 단속 카메라의 세부 기능까지 고려한 맞춤형 정책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5-29 13:35:00
"국밥 한그릇 하까?" 사투리 푹 빠진 미스춘향 [임터뷰]
미스춘향 '미'가 된 뒤에도 그의 하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과 "국밥 한 그릇 하까?"를 외치며 학교 앞을 돌아다니고, 경북대교 주변을 산책한 뒤 치맥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한 일상. 한복을 벗고 일상복을 입은 그는 영락없는 대학생이었다. 리나 씨는 현재 경북대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그는 서울 대신 대구를 택했다. "사투리와 지역 문화까지 직접 배우고 싶었어요. 요즘은 '아이가~'를 자주 써요." 미스춘향 보다 대구 생활 이야기를 더 신나게 꺼낸 리나 씨를 18일 오후 경북대학교에서 만났다. ◆서울보다 대구! 왜? 그녀와 대구의 인연은 에스토니아 탈린대학교 학부 시절이던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대구 생활을 경험한 그는 이후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두 번째 유학지 역시 주저 없이 대구를 선택했다. 대구는 그에게 단순한 유학 도시가 아니다. 북유럽 생활이 길었던 그는 "한국에서는 조금 더 따뜻한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었다"며 "무엇보다 산(山) 풍경을 정말 좋아하는데 대구는 도시와 자연이 잘 어우러져 있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벌써 후끈해진 날씨에도 그는 웃으며 "대프리카도 견디는데 이 정도는 시원한 편이죠"라며 농담을 던졌다. 특히 그는 대구 사람들의 '정(情)'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경상도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정말 따뜻한 분들이 많았다. 낯선 사람의 작은 도움이나 짧은 친절 속에서도 한국의 정을 많이 느꼈다." ◆받은 정 다시 돌려주고 싶어 대구에서 받은 따뜻함은 자연스럽게 봉사 활동으로 이어졌다. 리나 씨는 현재 대구 파티마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의료통역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 환자들의 병원 이용을 돕는 일이다. 그는 "환자분들이 '다음 주에도 꼭 와달라'고 말씀해주실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며 "누군가의 불안한 병원 방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책을 읽어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선생님 다음 주에도 또 와요?"라고 손을 잡아줄 때마다 오히려 자신이 더 큰 힘을 얻는다고 했다. SNS를 통해서는 한국 생활과 유학 정보도 꾸준히 공유하고 있다. 그는"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한국의 매력과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마음을 밝힐 수 있는 '춘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26-05-23 17:00:00
"필름카메라 사용법 좀 알려주실 분 계실까요?" 지역 커뮤니티 앱에 올라온 짧은 글이었다. 사례금을 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답장이 도착했다. 직접 만나 알려주겠다는 사람부터 채팅으로 설명해주겠다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글을 올린 이영현(24) 씨는 "솔직히 답장이 올 줄 몰랐다"며 웃었다. "다들 지나칠 줄 알았는데 연락이 정말 많이 왔다. 특히 기억나는 분은 필름카메라 수집이 취미인 분이었는데, '젊은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하는 게 기특해서 도움 주고 싶었다'고 하시더라." 당근이나 지역 맘카페, 동네 오픈채팅방, 대학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등 지역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단순한 거래나 정보 공유를 넘어 느슨한 도움과 연결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노트북이 갑자기 안 되는데 혹시 봐주실 수 있나요",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데 도와주실 분 계실까요" 같은 다소 난감한 글에도 댓글과 메시지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낯선 이를 도와주는 걸까. 거창한 이유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짧았다. "동네 사람들이잖아요." ◆ 돈도 안 받고 나눔, 왜? 가까이 사는 누군가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온라인 공간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단순한 '도움 요청'을 넘어 물건 나눔과 재능기부로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김은주(38) 씨는 임신 당시 사용했던 바디필로우와 임산부용 안전벨트 등을 무료로 나눴다. 충분히 중고로 판매할 수도 있었지만, 같은 임산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했다. 김 씨는 "깨끗하게 사용한 물건이라 돈을 받고 팔 수도 있었지만, 같은 임산부 입장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걸 아니까 자연스럽게 나눔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졸업생이 후배들에게 깨끗하게 사용한 전공책을 무료로 넘기고, 캠핑·등산·바이크 같은 취미를 먼저 시작한 이들이 갓 입문한 사람들에게 간단한 장비를 나누기도 한다. 꼭 직접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더라도, 비슷한 경험과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 안에서 서로의 시간을 조금씩 나눠 쓰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 씨는 나눔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나도 육아하면서 주변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되기도 한다. 과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 다시 다른 이에게 손을 내미는 식이다. 평소 나눔을 자주 한다는 김동수(59) 씨 또한 "나 역시 정말 필요한 물건을 나눔 받고, 또 어떤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응답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며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재능기부·봉사모임…형태도 다양 재능기부도 이어진다.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복지시설 아동 대상으로 악기를 무료로 가르쳐주고 싶어요." 지역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김근수 씨는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악기를 활용해 동네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사정 때문에 학원을 다니기 어렵거나 혼자 공부하면서 막막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굳이 지역 커뮤니티가 아니라 정식 봉사활동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이유는 오히려 '가벼움'에 있었다. "예전 동네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서로 도와주던 느낌이 좋다. 거창한 봉사활동이라는 이름보다는 그냥 옆에서 뭐 하나 봐주고, 도움 필요한 순간 한번 손 내미는 정도다." 이러한 연결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모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동네 사람끼리 모여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모임'부터 급식 봉사, 도시락 나눔 활동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대학생 유여진 씨(21)는 지역 커뮤니티를 통해 직접 봉사활동 모임을 만들었다. 술 마시고 노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주말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보통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꾸준히 해야 할 것 같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그런데 이런 모임은 그냥 동네 사람들끼리 '이거 한번 같이 도와주러 갈까?' 하는 느낌이라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기반 만남인 만큼 사기나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사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용자들은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자주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거창한 단체도, 정해진 봉사 시간도 없었다. 다만 누군가의 "혹시 가능하실까요?"라는 짧은 글에, 동네 사람들이 "제가 한번 볼게요"라고 답했을 뿐이다.
2026-05-22 14:30:00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숫자 '2'와 '1'을 붙여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1995년 민간단체 행사로 시작돼, 200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됐으니 역사가 꽤 깊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의미는 여전할까. 요즘의 '둘'과 '하나'는 어떤 모습일까. "'둘(2)'의 모습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임아현(30)·최진아(30) 씨의 말이다. 두 사람은 동성 연인이자 서로를 부부라고 부르는 관계다. 지난 3월 대구 남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며 스스로의 관계를 사회 안에서 드러냈다. 과거 '표준 부부'라는 틀 안에 담기지 못했던 관계들이 사회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하나(1)'가 되는 방식 역시 예전과 달라졌다. 김다현(32)·이승우(34) 씨 부부는 생활비와 가사, 육아 시간을 엑셀에 기록한다. 누가 어떤 지출을 했는지, 집안일과 육아를 얼마나 맡았는지까지 정리하며 서로에게 가장 합리적인 관계의 형태를 찾는다. "억지로 하나가 되기보단, 행복한 둘을 유지하는 부부가 더 나은걸요." 숫자는 여전히 '2'와 '1'이지만, 그 안의 의미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바야흐로 '둘'의 범위도, '하나'가 되는 방식도 달라진 시대. 부부는 이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모습과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간매일은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달라진 시대 속 '요즘 부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 넓어진 둘(2)의 범위 임아현(30)·최진아(30) 씨의 집에는 불수리통지서가 액자에 걸려 있다. 지난 3월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민원실 직원에게 되돌려 받은 서류다. 해당 문서에는 '헌법 제36조 제1항 및 민법 제812조·제826조 등에 따라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 혼인'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를 받은 이유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단순한 신고 절차를 넘어, 동성혼 법제화를 바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임 씨는 "동성 연인의 혼인신고 '접수' 자체가 가능해진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22년 3월부터 가능해졌다"며 "이런 시도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제도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가정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에 대한 불복 이의신청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은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처분에 불복하는 사건으로, 이른바 '혼인평등소송'으로 불린다. 대구 지역에서 혼인평등소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에게 '부부'란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함께 눈을 뜨고, 집을 청소하고, 하루를 나누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임 씨는 "마음 맞는 사람과 서로 기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며 "누구에게나 가족이 따뜻함과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듯, 우리에게도 가족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복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더 행복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 결혼·시선 보다 '관계' 자체에 의미 과거에는 결혼과 혈연을 중심으로 가족과 부부의 형태가 정의됐다. 하지만 이제는 법적 관계 밖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형태의 '둘'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 '표준 부부'의 범위 밖에 있던 관계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흐름이다. 10년째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문모 씨(47)는 "관계는 중요하지만 혼인 제도 자체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법적 부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족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함께 살되 각자의 독립성도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우리 같은 비친족 가구가 꽤 많다"고 덧붙였다. 비친족가구는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5인 이하 가구를 뜻한다. 결혼하지 않은 연인, 친구, 동료 등과 함께 거주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친족가구는 2020년 약 42만 가구에서 2024년 58만 가구를 넘어섰다. 이러한 '둘'의 변화는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는 사회적 시선과 역할에 맞춰 관계를 포기해야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원하는 관계를 선택하려는 흐름도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65세 이상 재혼 건수는 6천326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남성은 6.4%, 여성은 15.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재혼 건수가 남성 1.0%, 여성 2.6%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노년 재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자녀 문제 등을 많이 고려했다면, 최근에는 외로움과 정서적 안정, 삶의 동반자에 대한 필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며 "특히 여성들도 노년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N빵! 합리적 부부 생활 '둘'의 모습이 달라진 만큼, '하나'가 되는 방식 역시 변하고 있다. 과거 부부가 '무조건 하나 되는 관계'에 가까웠다면, 요즘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맞는 방식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활비부터 가사, 육아까지 역할과 기준을 직접 정하고 기록하는 부부들의 등장이다. 김다현(38) 씨 부부의 '합리적 결혼생활'은 연애 시절 만든 데이트 통장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토스 공동계좌로 가계부를 공유하고, 집안일은 엑셀로 정리한다. 아이가 태어난 작년부터는 야간수유 교대표와 육아 분담표도 추가됐다. 김 씨는 "10원 단위까지 더치페이 하는 시대인데 부부라고 예외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예전에는 '내가 더 하는 것 같은데'라는 억울함이 마음속에 쌓였다면, 지금은 기준을 정하고 기록하다 보니 오히려 덜 싸우고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해진 '공정 감수성'이 부부 관계까지 확장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이른바 'N분의 1 문화'의 마지막 성역은 "가족끼리 네 것 내 것이 어딨냐"는 인식이 강했던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 안에서도 '공정한 분담'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와 경제적 불안, 각자생존의 분위기 속. 과거 희생과 배려가 미덕으로 여겨졌다면 지금 세대는 관계 안에서도 '억울하지 않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전업주부들 사이에서도 엑셀 활용은 낯선 일이 아니다. 과거 '당연한 역할'로 여겨졌던 육아와 집안일 역시 하나의 노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다. 실제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 가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582조4천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1인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월 약 93만7천원 수준이다. 주부 정은수 씨(29)는 "집안일도 밖에서 돈 버는 것만큼 중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부부는 남편의 경제적 기여와 제 가사노동 기여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집안일과 육아 시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며 부부간 역할을 다시 조율하는 것이다. ◆ "부부가 꼭 함께해야하나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집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는 '부부니까 함께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시간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지고 있다. 이대호(31) 씨 부부는 명절이면 양가 어른들을 함께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만, 잠은 각자 본가에서 잔다. 명절 스트레스와 이동 피로를 줄이기 위해 내린 나름의 '합리적 선택'이다. 이 씨는 "처음에는 부모님도 조금 당황하셨지만 지금은 '너희가 편한 대로 하라'고 하신다"며 "예전에는 부부면 무조건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지금은 서로 편한 방식을 조율하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남편은 캠핑을 가고 아내는 집에서 혼자 쉬는 식으로 주말을 따로 보내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여행이나 동창 모임에도 각자 참석하고, 경조사 역시 상황에 따라 한 사람만 다녀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각방 생활이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이른바 '각집 살이'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늘 함께 있는 것'이 좋은 부부의 기준처럼 여겨졌다면, 지금은 서로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하는 방식 역시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남성과 여성의 역할 자체가 뒤바뀌기도 한다. 밖에서 일하는 엄마와 집에서 살림·육아를 맡는 전업 아빠의 모습이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의 신혼부부통계를 보면 결혼 5년 이내 외벌이 가정에서 아내가 버는 비중은 2019년 16.1%에서 2024년 19.0%로 증가했다. 전통적인 '남편 생계·아내 돌봄' 공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업아빠 김정현 씨(34)는 "'가족에게 가장 합리적인 형태가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며 "아내가 일하고 내가 아이를 돌보는 방식이 당시 우리 가족에게 더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계획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부부가 충분히 상의해 함께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가부장이 아닌 가모장을 선택했다는 김보라(39) 씨 역시 "지금은 내가 벌고 있지만 또 달라질 수도 있다"며 "성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역할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정답형 부부'의 해체로 해석한다. 과거에는 사회가 정해둔 역할과 방식에 관계를 맞춰야 했다면, 이제는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가장 적합한 형태를 조율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부부가 사회가 정해둔 역할에 스스로를 맞춰야 했다면, 이제는 각자의 삶에 맞는 관계를 함께 설계해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026-05-22 14:30:00
병원 보호자 칸 앞에서 멈칫하는 동성 커플. 함께 살아도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는 연인. "부부끼리 너무 계산적이다"라는 말을 듣는 엑셀부부. 문화센터에서 "엄마는 어디 갔냐"는 질문을 받는 전업아빠. "이 나이에 무슨 재혼이냐"는 주변 시선을 견뎌야 하는 노년의 커플까지. 기자가 이번 취재를 위해 만난 6쌍의 부부와 연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회가 기대하는 '정답형 부부'의 틀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부부의 세계'는 달라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법·제도와 사회적 시선은 아직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전형적 가구 맞춤형 제도 필요 함께 살아도 법적으로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현행 주거 정책과 복지 제도 상당수는 여전히 혼인 관계나 직계가족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비친족가구는 수술 동의, 임차권 승계, 유족 자격 등 여러 제도적 권리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 역시 민법상 부부로 인정되지 않는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이나 배우자 공제 같은 제도적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주민등록등본상에도 단순 '동거인'으로만 표시돼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도 반복된다. 동성 커플 임아현·최진아 씨 역시 이러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아직은 비교적 젊은 편이라 병원에서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많지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서로의 의사를 대신 결정할 수 없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며 "함께 살아도 가족관계등록부상 가족이 아니다 보니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2021~2025년)'에서 비혼·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관계 역시 가족으로 포용하는 방향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실제 제도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비전형적 가구가 이미 우리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만큼, 제도 역시 변화 속도를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영란 연구원은 "기존의 혼인·혈연 중심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상호 돌봄과 친밀성 같은 관계의 기능을 중심으로 가족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친족 가구 역시 서로 돌보고 의지하며 보호자 역할을 기대하는 등 단순한 타인을 넘어선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친족 가구는 단순한 주거 공유를 넘어, 대안적 친밀성을 기반으로 가족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연구원은 "비친족 가구는 구성 인원이나 성별, 함께 사는 이유 등에 따라 필요한 정책 지원이 모두 다르다"며 "각 집단의 특성과 수요를 세분화해 맞춤형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다양한 관계, 사회적 시선 여전 달라진 것은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부부와 가족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역시 아직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업아빠 김정현 씨는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나 병원을 가면 아직도 '엄마는 어디 갔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며 "육아를 하는 아빠 자체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동네 부모 모임도 대부분 엄마들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아빠 혼자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며 "비슷한 처지의 아빠들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활비와 가사노동을 엑셀로 기록하는 이른바 '계산형 부부'를 향한 시선 역시 엇갈린다. 온라인에서는 "정이 없다" "부부 사이에 너무 계산적인 것 아니냐"는 반응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 세대 간 인식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 김모 씨는 "과거에는 희생과 배려가 부부 관계의 미덕으로 여겨졌다면, 지금 세대는 관계 안에서도 '억울하지 않은 균형'과 공정한 분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예전처럼 한 사람이 참고 감당하는 방식보다, 역할과 책임을 서로 조율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혼 재혼이나 비혼 동거 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나이에 무슨 재혼이냐"거나 "왜 굳이 결혼하지 않느냐"는 반응처럼 관계의 형태보다 '정상적인 가족'을 요구하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가족과 부부의 형태가 이미 다양해진 만큼, 사회 역시 변화된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6-05-22 14:30:00
[임터뷰] 외국인이 웬 춘향?…한국다움에 정답은 없었다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춘향의 얼굴을 복원한 그림을 두고 한바탕 시끌했던 일이 떠오른다. 중성적인 외모에 나이 들어 보인다는 반응부터 "내가 상상한 춘향과 다르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애초에 춘향은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이다. 이도령이 처음 춘향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작가는 "옥처럼 깨끗한 모습에 붉은 입술, 복숭아꽃 같은 고운 얼굴" 정도만 묘사했을 뿐이다. 결국 사람마다 마음속에 그리는 춘향의 모습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올해 미스춘향 선발대회에서 사상 첫 외국인 본상 수상자가 나오자 이번에는 "외국인이 웬 미스춘향이냐"는 반응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출신 안젤리나 게라시멘코(23·리나). 하지만 리나 씨에게 춘향은 낯선 옛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다. 긴 시간을 버티며 자신의 마음을 지켜낸 춘향의 모습에서, 그는 한국을 향해 걸어온 자신의 시간을 떠올렸다. "10년 넘게 한국을 꿈꾸며 버텨온 시간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춘향의 모습이다." -한국을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이 정말 춘향이를 닮았다. 왜 그렇게 오래 한국을 꿈꿨나.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이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걸 좋아했는데, 우연히 들은 한국어 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살던 곳에는 대한민국 대사관도, 대학 수준의 한국학 과정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공부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 체험을 이어갔다. 한국 유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세 가지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며 버텼다. -결국 한국까지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그 시간들을 버텨온 끝에 대한민국 정부초청장학생(GKS)으로 선발돼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해 TOPIK 6급을 취득했고, 세종학당 한국어 교원 과정도 이수했다.어릴 때 막연히 꿈꾸던 나라에서 직접 배우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게 한국을 좋아하던 사람이, 결국 한국에서 가장 전통적인 상징 중 하나인 '미스춘향'이 됐다. 스스로도 놀랐을 것 같다.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를 좋아했고, 혼자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언젠가 꼭 한국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한국에 오는 것을 넘어, 한국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무대에서 '미'로 불리게 됐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품어온 진심과 노력을 한국 분들이 알아봐 주신 것 같아 더 뜻 깊었다. -우크라이나 가족들에게 '춘향'을 어떻게 설명했나. ▶처음에는 단순한 미인대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먼저 '춘향전' 이야기부터 설명했다. 춘향이 왜 한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는지, 단순히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긴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지켜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또 미스춘향이 단순한 외모 경쟁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와 정신을 함께 알리는 문화적인 의미를 가진 무대라는 점도 설명했다. --합숙이나 대회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외국인 참가자라 더 새롭게 느껴졌던 장면도 궁금하다. ▶합숙 기간 동안 참가자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전통 예절과 춘향의 정신에 대해 배우던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외국인인 저에게는 모든 과정이 새롭고 신기했지만, 다른 참가자분들이 먼저 다가와 도와주고 함께 이야기해 준 덕분에 금방 편안해질 수 있었다. 특히 서로의 메이크업을 도와주거나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응원해주던 순간들이 가장 따뜻하게 남아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가 '전통'이나 '한국다움'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느꼈나. ▶전통 역시 하나의 고정된 형태라기보다 다양한 시선과 해석 속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듯, 한국다움 역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한국 전통문화도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길 때 더 넓게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춘향'으로 기억되고 싶나 ▶정체성과 국적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춘향으로 기억되고 싶다. 또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따뜻한 마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과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6-05-22 13:27:00
스승의날을 맞아 어린이집 알림장에 짧은 감사 인사를 남겼다. "우리 아이를 예뻐해 주시고 따뜻하게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복직 후에도 안심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뭉클했다. 누군가 우리 아이를 함께 돌봐 주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안심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만큼은 "잘 지내고 있겠지"라고 믿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평범한 부모들의 일상은 그런 믿음 위에서 굴러가는지도 모르겠다. 감사 인사를 적고 나니 문득, 그런 안심을 쉽게 누리지 못하는 부모들이 떠올랐다.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장애 아동 부모들이다. 장애 아동 부모들 역시 아이를 학교와 어린이집, 돌봄 기관에 맡긴다. 다만 그 과정은 훨씬 어렵고 절박하다. 특수학교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고, 일반학교 특수학급 역시 과밀 상태다. 자리가 없어 일반학급에 먼저 배치된 채 특수학급 자리를 기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부담은 가족의 삶 자체를 바꿔 놓기도 한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맞는 교육 환경을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긴다. 실제 한 가족은 특수학급과 돌봄 자리를 따라 범어동에서 칠곡으로, 다시 중구와 남구로 이사를 반복했다. 어렵게 학교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을 놓기는 어렵다. 새 학기마다 어떤 인력이 배치될지, 아이가 안정적으로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인다. 인력이 부족할 때면 부모가 직접 학교를 오가며 아이의 이동과 화장실 이용을 돕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어머니는 결국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수업 중 돌발 상황이 생기거나 아이의 이동, 안전 문제로 부모가 직접 와야 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언제 학교에서 연락이 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늘 상시 대기 상태 같았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물론 현장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은 존재했다. 특수교사와 실무 인력은 충분하지 않고, 학교 역시 제한된 인력 안에서 운영된다. 통합교육이 확대되고 있지만 학생별 특성과 지원 수준은 모두 다르다. 교사와 실무사, 부모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 현장에서는 "누가 더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를 두고 서로의 자리를 걱정하는 일도 벌어진다. 구조가 감당해야 할 문제들이 종종 개인 사이의 갈등처럼 흘러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변화의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단위 통합 지원 체계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대구에서도 통합교육지원단 운영과 수준별 특수학급 확대 같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해외처럼 학교 안에서 교사 지원과 학부모 상담, 외부 기관 연계를 함께 조정하는 체계의 필요성 역시 꾸준히 제기된다. 결국 중요한 건 부모 개인의 희생만으로 버티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함께 웃고 여행을 떠나고, 아이 손을 잡고 추억을 만드는 가족의 풍경이 넘쳐 난다. 하지만 어떤 가족에게 하루는 여전히 긴장과 대기, 미안함 속에서 흘러간다. 알림장에 남겼던 편지를 다시 읽어 봤다. "덕분에 안심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 문장이, 언젠가는 어떤 가족에게도 당연한 말이 되면 좋겠다.
2026-05-17 12:40:44
[데이터로 보는 세상] 썰렁한 아빠 농담의 반전… 아이 '회복탄력성' 키웠다
주말 저녁, 뜬금없는 농담으로 가족들을 웃기려는 아버지가 있다. "아빠 또 시작이네"라는 아이들의 핀잔이 쏟아지지만, 그 어설픈 '아재 개그'가 사실은 아이 마음속에 평생을 버틸 '행복의 근육'을 키우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경북대학교 아동가족학과가 발표한 〈아버지의 유머스타일이 아동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 은 아버지의 유머가 자녀 발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대구·경북 지역 초등학교 4~6학년 아동과 아버지 460쌍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진행했다. ◆ 개그맨 아빠가 아니더라도 이번 연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결과는 의외로 '직접효과의 부재'였다. 연구진은 아버지의 유머를 타인과 유쾌하게 관계를 맺는 '사회적 유머',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긍정성을 유지하는 '자기확장 유머', 스스로를 낮추거나 망가뜨려 웃음을 유발하는 '자기패배 유머' 세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하지만 세 가지 유머 모두, 아동의 행복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아빠가 개그맨처럼 아이를 크게 웃긴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아이의 근본적인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아빠의 농담은 '즉효성 행복 버튼'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아빠의 유머는 무의미할까. 데이터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아빠의 유머는 아이에게 직접 행복을 주입하기보다, 아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두 가지 능력인 '사회적 유능감'과 '자아탄력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사용하는 아버지의 '사회적 유머'는 아이의 사회적 유능감을 높이는 데 가장 큰 간접효과를 보였다. 아빠가 사람들과 유쾌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 역시 관계 맺기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자기확장 유머' 역시 아이의 사회적 유능감과 자아탄력성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아빠의 농담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몸으로 가르치는 일종의 생활 교육이었던 것이다. ◆ 자학개그? 아빠가 하면 좋아! 흔히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자기패배 유머'가 의외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보통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바보처럼 행동해 웃음을 만드는 방식은 자존감을 낮추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 안에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자기패배 유머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아버지의 자기패배 유머는 아동의 사회적 유능감을 매개로 행복감을 높이는 간접효과를 보였고, 자아탄력성을 통한 효과 역시 확인됐다. 권위적인 가장의 모습 대신, 일부러 망가지고 실수하며 웃음을 만드는 아빠의 모습은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아빠도 완벽하지 않구나", "실수해도 괜찮구나"라는 메시지가 아이 마음속 불안을 낮추고, 결국 세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에 대해 "아버지의 유머는 아동의 사회적 관계 형성, 정서적 자기조절, 긍정적 자아개념, 삶의 만족도 등 다양한 발달 영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현대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더 많은 정보와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 몰두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 아이를 행복하고 단단하게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비법이 아니라, 저녁 식탁에서 오가는 사소한 농담과 웃음,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편안한 관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재미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순간에도, 아빠의 '썰렁한 농담'은 조용히 아이 마음속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6-05-15 14:20:00
"고쳐주세요" 한마디에 뚝딱! 장난감 병원 13명 의사들
5살 남자아이가 쭈뼛쭈뼛 문을 연다. 손에는 낡은 자동차 장난감 하나가 꼭 쥐어져 있다. "고쳐주세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 얼룩지고 닳은 장난감 곳곳에는 아이가 얼마나 오래 이 물건과 함께했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곳은 대구에서 유일한 '장난감 병원'이다. 장난감을 받아 뚝딱 고쳐내는 13명의 의사 선생님이 있다. 아이의 동심의 곁에 선 어른들이 있는 곳. 지난 30일 기자는 달서아이꿈센터에서 운영·지원하는 장난감 병원을 방문했다. ◆ 고장난 장난감의 '응급실' 드라이버, 건전지, 크고 작은 나사들이 어지럽게 놓인 작업대. 고장난 장난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이곳에서 연신 다급한 목소리가 오간다. "정쌤, 이거 안되겠는데요." "권쌤, 저걸로 한번 뚫어보죠."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기 한 시간여. 장난감에서는 마침내 불빛이 켜지고 소리가 흘러나온다. "딱 고쳤을 때 희열이 정말 크다. 아이가 고쳐진 장난감을 안고 펄쩍펄쩍 뛸 때는 더 그렇다." 장난감 병원 기술 고문 김영석 씨(63)의 말이다. 철로 정비 일을 하던 그는 은퇴 후 이곳에서 '기술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장난감 고장의 대부분은 비교적 단순하다. 끊어진 전선, 녹슨 건전지 단자, 느슨해진 스위치, 먼지가 낀 전기기판 등이 주요 원인다. 다만 전자기판이 복잡한 장난감은 수리가 쉽지 않다. 건반 악기나 학습용 전자 장난감이 대표적이다. 김 씨는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노력하지만 안 될 때도 있다"며 "그럴 때면 아이들이 실망할까봐 더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수리가 어려우면 '상급 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달서아이꿈센터 유창우 관장이 직접 손보는 단계다. 김 씨는 "장난감 병원의 아이디어도 유 관장의 관심에서 시작됐다"며 "쉬는 날에도 나와 수리를 할 만큼 진심이다. 장난감 병원 원장님답다"고 웃었다. ◆ 배워서 고친다… 기술 문외한 이곳이 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장난감을 고치는 13명의 '의사' 대부분이 원래는 공구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고쳐주고싶다' 는 일념 하나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다. 권혁환 씨(67)는 "처음엔 드라이버 이름도 몰랐다"며 "지금은 고장 진단부터 수리, 테스트까지 혼자 해낸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부산의 한 장난감 업체 전문가에게 한 달간 집중 교육을 받으며 기술을 익혔다. 공구 사용법부터 스위치 작동 원리, 기본적인 전기 지식까지 차근차근 배웠다.드라이버와 인두기, 전압·전류 측정기, 전선 피복기, 납땜 도구 등 장난감 수리에 필요한 장비도 생각보다 다양했다. 기본 공구조차 낯설던 이들은 직접 도구를 다뤄보고, 고장난 장난감을 분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수리 기술을 몸으로 익혀갔다. 갈수록 손에 익는 노하우도 쌓이고 있다. 정현희 씨(47)는 "처음에는 하나씩 뜯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여러 종류를 다뤄보니까 이제는 어느 부분이 고장났는지 감이 온다"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수리 시간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 고쳐봤던 장난감은 원인을 금방 파악해서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단순 수리 넘어 '자원순환'까지 장난감 병원의 역할은 단순한 수리에 그치지 않는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장난감은 대부분 플라스틱 폐기물로 남는다. 이곳에서는 고장난 장난감을 고쳐 다시 기부하거나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한다. 수리가 불가능한 장난감은 부품을 분리해 재사용하고, 캐릭터는 키링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버려질 뻔한 장난감이 또 다른 형태로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달서아이꿈센터 관계자는 이를 두고 "아동복지를 넘어 자원순환까지 함께 고민한 결과"라며 "달서구청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 유일의 장난감 병원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경산 등 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고, 출장 수리 요청도 들어온다. 이종윤 씨(73)는 "북구에 고장난 장난감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직접 가서 고친 적도 있다"며 "힘들어도 보람이 더 크다"고 말했다. ◆ 무보수로 왜? "추억 잇는 의미있는 일" 이곳의 장난감 의사들은 대부분 자녀를 다 키운 세대다. 그래서인지 장난감을 고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가 떠오른다. "아이들 어릴 때가 많이 생각난다. 동요 나오는 장난감 을 고칠 때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다" 보수도 없이 시간을 쪼개 이어가는 봉사지만, 이들에게 이 일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고장난 장난감을 고치며 아이들과의 추억까지 함께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고쳐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우리가 더 하고 싶다." 버려질 뻔한 장난감이 다시 움직이고, 아이의 웃음이 되살아난다. 장난감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아이의 기억을 이어주고, 어른의 추억을 다시 꺼내는 일이다. 이 작은 병원에서는 오늘도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이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2026-05-08 14:30:00
[창간 80년,격동 80년] "경제냐, 자존심이냐"…6월 거리로 쏟아진 분노
"민족적 민주주의를 확립하자." "굴욕 외교 반대!" 1964년 6월 3일, 서울 도심은 학생들의 외침으로 뒤덮였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주요 대학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들의 분노는 곧 시민들로 번졌다. 단순한 학생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적 저항으로 확산됐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경찰과 학생이 충돌하는 와중에도, 외침은 멈추지 않았다. 방패와 곤봉에 맞서며 학생들은 끝까지 구호를 외쳤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하나둘 거리로 나왔다. 그날의 거리는 '경제 성장'과 '민족 자존심'이 정면으로 부딪힌 현장이었다. ◆ '돈이 필요했던 나라' 배경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반공'과 '경제성장'을 정통성으로 내세웠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수준의 빈곤에 놓여 있었다. 산업화를 추진할 자금조차 부족한 상황이었다. 반면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바탕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경제권 형성'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국·일본·대만·베트남 등을 묶는 '반공 경제 블록'이다. 이 흐름 속에서 정권이 주목한 카드는 '한일 국교 정상화'였다. 김종필은 1962년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과 협상을 통해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를 도출하며 청구권 자금 문제를 정리했다. 이후 평화선·어로 문제까지 타결되며 국교 정상화는 급물살을 탔다. 정부에게 한일회담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에 가까웠다. ◆ "굴욕이다" 국민들은 반대 문제는 과정과 내용이었다. 회담은 국민 눈에 '납득하기 어려운 협상'으로 비쳤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이어진 강제 동원과 자원 약탈 등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은 가장 큰 반발을 불러왔다.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묻기보다 '청구권 자금'이라는 경제적 보상 형태로 정리되면서, 역사적 정의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컸다. 독도 문제 역시 국민 정서를 자극한 대목이었다. 영유권 문제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정부가 일본에 지나치게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됐다. 여기에 협상 과정 전반이 국민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주요 내용이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밀실 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국민적 공감대 없이 중요한 국가 간 합의가 추진되고 있다는 불신이 커졌다. ◆6월 3일, 분노가 거리에서 터지다. 정부가 내세운 것은 '선(先) 경제 발전, 후(後) 민주화'였다. 하지만 학생들과 시민들은 달랐다. 경제보다 역사와 자존심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 간극은 결국 거리에서 폭발한다. 시위는 빠르게 확산됐다. 학생들의 행동에 공감한 시민들이 합류하면서 '학생 운동'은 '국민 저항'으로 번졌다. 이에 정부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수많은 학생이 체포·구금됐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도심 곳곳이 통제됐고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시위는 꺾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민족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외침은, 억압 속에서도 계속됐다. 6.3 항쟁은 한일회담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남긴 흔적은 컸다. "정부 정책에 대해 시민이 저항 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느꼈다. 그리고 이 경험은 훗날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됐다. 4.19 혁명 이후 주춤했던 학생운동은 다시 살아났고, 이는 훗날 유신체제 저항과 민주화 요구로 이어졌다. 또한 정부 역시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이후 외교 정책에서 '국민 감정'은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는다. 6·3 항쟁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큰 사건이었다. 경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민족 자존심 사이에서 한국 사회가 어떤 선택을 고민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2026-05-08 12:44:00
한물간 한국 레슬링… '초통령' 됐다고? 'PWS' 인기 비결은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휴대폰 화면에 푹 빠져 있다. 상대를 번쩍 들어 올리는 리프팅 기술에 환호하고, 공중에서 펼쳐지는 묘기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링, 가면, 챔피언 벨트까지. 영락없는 프로레슬링이다. 초딩이 뭔 레슬링이냐며 휴대폰을 뺏으려들자 조카가 소리친다. "요즘 이거 안 보는 친구들 없어!" 부모 세대는 어리둥절하다. "우리 때 이왕표, 박치기왕 나오던 그 레슬링 맞아?" 아이에게 여러번 되묻기도 한다. '한물간 스포츠'로 여겨지던 프로레슬링이 어떻게 어린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인기를 끄는 것일까. '뽀로로' '티니핑'에 이어 새로운 '초통령'으로 떠오른 PWS. 그 인기의 이유를 들여다봤다. ◆ PWS 매진행렬 '이례적 성과' 오는 9일 열리는 'PWS 레슬네이션2'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약 3천 석 규모의 체육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2천700석 이상이 이미 판매됐다. 국내 프로레슬링이 여전히 일부 마니아 문화로 여겨지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PWS는 2018년 설립된 국내 신생 프로레슬링 단체다. WWE식 캐릭터 중심 연출을 도입하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2023년까지만 해도 소규모 공연장에서 70~100명의 관객을 모으던 수준이었지만, 2024년 2천100명, 2025년 8천900명으로 관객이 급증했다. 이희정 PWS 총괄이사(57)는 "작년 최대 유료 관객 3천명을 기록했다. WWE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라며 "WWE의 타지리, 리카르도 로드리게즈, 멜리나, 돌프 지글러 또한 주목해야 하는 단체로 꼽기도 했다"고 말했다. ◆ 초통령 비결은 뭘까 이러한 인기의 중심에는 어린이 관람층이 있다. 실제 관객 대부분은 6~12세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열광할까. 답은 단순하다. 쉽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선'과 '악'이 명확히 나뉜다. 복잡한 서사가 필요 없다. 누굴 응원해야 할지,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아이들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단순함이 몰입을 만든다. 김건우(12) 군은 "악당을 물리치는 레슬러들의 모습이 통쾌하다"며 "모두 같이 악당에게 손가락질 하며 야유할때 재밌다"고 말했다. 의상과 색깔도 의도적으로 단순화했다. 진개성은 초록색, 시호는 빨간색, 최영준은 파란색 등 캐릭터마다 색을 달리해 어린이들이 한눈에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총괄 이사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색깔과 캐릭터를 명확히 나눴다"고 설명했다. 과격함도 줄였다. 2024년부터는 위험한 기술과 자극적인 연출을 대폭 덜어냈다. 이 총괄이사는 이를 두고 "강한 자극은 금방 질린다. 특히 아이들은 더 그렇다"고 말했다. 대신 응원 문화는 더 커졌다. 악역이 등장하면 야유가 쏟아지고, 영웅 캐릭터가 나오면 "이겨라!"라는 함성이 터진다. 조용히 관람하는 공연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에 가깝다. ◆ 단순한 재미 넘어 '투영의 대상' 단순해서 빠져들지만, 그 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단순한 서사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넘어선 의미를 만든다. 이들은 경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투영한다. 이은수(13) 양은 "반칙하는 악당 선수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약한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른바 '권선징악' 구조의 스토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평가다. 학부모 김아람(40) 씨는 "경기를 본 아이가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며 "백 번 말하는 것보다 경기 한 번 보고 오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투영'은 때로 현실의 어려움을 버티는 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PWS 측이 공개한 한 사연도 이를 보여준다. 백혈병 투병 중이던 한 아이가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도 PWS 경기를 보며 웃음을 되찾고, 그 안에서 힘과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해당 자녀의 아버지는 "힘든 치료 중에도 PWS를 볼 때만큼은 아이가 웃었다"며 "그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영웅'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하나의 세계로 작동된다. '악당'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아이들은 '영웅'을 보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때로, 현실을 버티는 힘이 된다. ◆ 부모와의 대화 창구 부모들의 반응도 예상 밖이다. 한때 '과격하고 위험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던 프로레슬링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실제 공연은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콘텐츠에 가깝기 때문이다. 학부모 이민건(50) 씨는 "처음엔 너무 과격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맘에 혼도 많이 냈다"며 "하지만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건전하고 재밌어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게임에 빠져 있던 아이가, 집에서 아빠와 레슬링 흉내를 내며 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생기고, 함께 노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만 주의도 필요하다. PWS 측은 "선수들의 기술은 오랜 훈련의 결과"라며 "가정에서 무리하게 따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당부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유튜브를 통해서만 경기를 접할 수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공식적인 중계 채널이나 플랫폼 확대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이 총괄이사는 "현재 일부 방송사와 프로그램 편성을 논의 중이며, OTT 플랫폼과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유초등생 부모들, 아이와 친해지려면 알고 가자! PWS 주요 캐릭터 한눈에 보기 진개성 : "개성만점!"을 외치는 정의의 히어로. 초록색 캐릭터시호 : "시호떡!" "10센치!"… 얍삽하고 얄미운 악당. 빨간색예니 : "애생소녀" "웅디강디꿍야"… 밝고 귀여운 발랄 캐릭터. 분홍색포이즌로즈 : '독장미'라 불리는 위민스 챔피언. 강렬한 블랙 콘셉트이랑 : "산산조각!"을 외치는 단순·직진형 악당. 비주얼도 강점하다온 : '상남자' 콘셉트의 힘 캐릭터
2026-05-08 11:45:00
태서가 태어나고 맞는 어버이날은 조금 다르다. 자식이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부모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태서에게 효도를 기대하긴 이르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 챙기고, 태서도 챙기느라 정신없는 어버이날을 두 해째 보내고 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은행에 들러 용돈을 뽑고, 식당을 찾아 예약 전화를 돌린다. 그 사이,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 옆에서 조용히 사고를 치는 나의 아들. 컵에 먹겠다고 해서 물을 줬더니, 언제 쏟았는지 바닥은 이미 물바다다. "어휴~ 태서야 엄마 바쁜데 왜 그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으로, 발로 물장구를 치며 더 엉망을 만든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마디에 웃음이 난다. "엄마 미앙…" 요즘 부쩍 말이 늘었다. 혀 짧은 소리로 "미안"을 건네는 걸 보고 있자니, 자식은 존재만으로도 효도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닦아." "치워." 본인이 쏟아놓고는, 정작 치울 생각은 없고 엄마에게 명령만 내린다. 가만 보니, 요즘 할 수 있는 말들이 전부 엄마를 부려먹는 말이다. 효도는커녕, 태서를 모시느라 바쁜 어버이날. 그 탓에 예전 돈방석이나 돈부채 같은 용돈 이벤트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모님은 전보다 더 크게 웃는다. 이벤트가 없어도, 맛있는 식사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 웃음의 중심에는 늘 태서가 있다. 그러니까 오늘의 효도는, 내가 아니라 태서가 다 한 셈이다. 나는 그저 효도를 '전달'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2026-05-08 11:30:00
[백년대구 아카이브] 대구의 명소 탄생… 근대 유원지 조성
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마지막 순서인 4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 개발, 그리고 문화 및 행정 시설의 외곽 이전 전략에 따른 도시의 질전 변화를 다룬다. (편집자 주) 주택과 업무지구, 상업시설은 최소한의 도시 조건일뿐이다. 만족스러운 도시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위락시설도 필요했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원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진다. 도시와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수변 경치를 구경할 수 있고 넓은 토지를 보유한 곳에 위락시설 건설이 검토된다. 즐길거리를 찾아 헤매는 시도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이뤄졌다. 1933년. 화원유원지의 공사가 마무리되고 성대한 개장식을 연다. 산과 물, 꽃이 있는 절경을 구경하려는 이들로 유원지는 복잡해졌다. 신식 유희거리인 육상트랙, 골프장, 미끄럼틀, 요정, 수영장도 인기몰이의 비결이었다. 시간이 흘러 1972년, 지역 주류기업인 금복주가 토지를 매입하면서 한 차례 변화를 맞는다. 동물원과 조경공간을 추가 신설하며 '화원동산'이라는 새 이름을 받는다. 1993년에는 대구시로 기부채납됐다. 1930년대 화원유원지가 최신식 유락시설로 인기를 끌자, 동촌유원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빗발친다. 동촌유원지는 1918년 일제에 의해 유원지로 최초 조성된 비교적 오래된 유락시설이다. 이후 한국 전쟁기에 피란민들이 유원지 근처에 정착하면서 더욱 번성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케이블카와 구름다리와 같은 놀거리가 있어 시민들의 발길이 끊기질 않았다. 이후 수차례 개선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1980년대 대구시는 동촌유원지를 3차례에 걸쳐 개선하겠다는 게획을 밝힌다. 수목을 추가로 심고, 도로와 광장을 확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계획이 모두 마무리된 건 2010년대에 이르러서다.
2026-05-01 14:30:00
[데이터로 보는 세상] 먹방 보다 동선…시니어 관광객이 본 대구
요즘 관광은 '먹으러' '보러' 다니는 시대다. 맛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고, 사람들은 사진 한 장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시니어 관광객의 기준은 다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저렴한 비용과 안전한 이동이다. '어디가 맛있나'보다 '얼마나 편하게 갈 수 있나'를 먼저 따진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시니어 관광에 대한 맞춤형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도시의 관광은 여전히 '젊은 사람의 기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공간디자인학회가 펴낸 '시니어가 선호하는 대구광역시 관광지'를 통해 시니어 관광의 현실을 짚고, 개선 방향을 함께 제시해 봤다. ◆ 대구 관광지 1위 '달성공원' 시니어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구 관광지는 달성공원(13.64%)으로 나타났다. 이어 경상감영공원(11.50%), 두류공원(8.56%), 수성못(8.02%), 동화사(7.22%) 순으로 집계됐다. 도시공원과 호수 같은 자연 자원부터 전통시장, 종교시설, 심지어 교통 거점까지 포함되며 특정 유형에 쏠리지 않는 '다층적 관광 패턴'이 확인됐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니어들이 관광지를 선택하는 기준이었다. 평가 지표(5점 만점)에서 '저렴한 비용'이 4.36점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이어 '안전'이 4.22점, 자원 매력성이 4.05점을 기록했다. 반면 일반적인 관광의 핵심 요소로 여겨지는 먹거리(3.75점)나 볼거리(3.69점)는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순위를 보였다.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해 보행 환경의 안전성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여가 활동 시 경제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시니어 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 인기 관광지의 민낯 하지만 '선호'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컸다. 연구진이 무장애 관광 전문가와 함께 시니어 선호 대구 관광지 19곳을 직접 조사한 결과, 관광 편의성 점수에서 평균을 넘긴 곳은 단 4곳에 불과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곳은 문양역(69.23점)이었고, 반대로 동화사(7.69점)와 청라언덕(8.33점)은 10점에도 못 미쳤다. 특히 19곳 중 17곳이 시니어 및 장애인을 위한 관광정보 제공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경사로, 휴게공간, 다목적 화장실 등 기본 시설 역시 '부분 적합' 수준에 머물며 실제 이용에는 불편이 뒤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시니어 관광 환경이 여전히 이용자 중심으로 설계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결과 속에서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지하철역인 문양역이다. 문양역은 선호도 20위권(1.87%)에 포함됐을 뿐 아니라, 관광 편의성 평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곳은 단순한 환승 공간이 아니다. '노인건강테마역'으로 조성돼 로컬푸드 매장, 식당 픽업 서비스, 인근 마천산 둘레길과 산림욕장까지 연결된다. 관광·쇼핑·운동·사교가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구조다. 결국 시니어들이 찾은 것은 '명소'가 아니라 불편함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다. ◆ 초고령사회, 관광의 기준 바꿔야 연구진들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시니어 관광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현재 관광 환경을 시니어 중심으로 재설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통수단 확대, 휴게공간 확충, 보행권 내 관광지 발굴, 큰 글자 안내물 등이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또한 단순 방문을 넘어 건강·취미·학습을 결합한 프로그램 부족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연구진은 문양역 사례를 의미깊게 봤다. "문양역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평탄한 길, 충분한 쉼터, 이해하기 쉬운 안내, 그리고 체험 프로그램까지. 이 네 가지가 갖춰질 때 관광지는 '구경하는 곳'에서 '머무는 곳'으로 바뀐다"라며 "결국 시니어 관광의 경쟁력은 화려한 콘텐츠가 아니라 얼마나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26-05-01 10:30:00
명문대 공대→대기업 개발자 관두고 '버스기사?'…이런 청년 수두룩 [커버스토리]
인서울 대학에 진학했다. 소위 '취업이 보장된다'는 명문대 공대였다. 첫 직장은 공기업. 이후 그 경력을 바탕으로 연 매출 1조원대 반도체 기업으로 이직해 개발직군으로 일했다. 누군가에겐 탄탄대로로 보이는 이력이다. 하지만 그는 돌연 퇴사를 선택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대구로 내려오자 주변에서는 "창업이라도 하느냐"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예상 밖이었다. 2024년, 그는 버스 기사가 됐다. 바야흐로 취업 시즌. 고용 한파를 넘어 '취업 빙하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1990~2000년대생 청년들 사이에서는 "열심히 준비해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푸념이 낯설지 않다. 유망하다는 말에 뛰어들면 열풍이 채 식기도 전에 인공지능(AI)이 대체를 이야기하고, 한때 '안정적'이라 불리던 직업도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 스펙을 쌓아도 문은 더 좁아졌다. 이런 시대, 일부 청년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 성별의 경계를 넘고, 나이의 기준을 깨며 '남들이 정해준 길' 대신 자기 기준으로 직업을 고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들이 정한 길보다, 내가 오래 갈 수 있는 길을 택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청년들이 더 이상 '정답'이라 불리던 길만을 좇지 않는다는 점이다. ◆ 취업 '정석' 보단 나의 '만족' 이승준 씨(29)는 2년차 버스기사다. 한양대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고연봉 취업까지 했던 그에게 "왜 이 직업을 선택했냐"는 질문은 늘 따라붙는다. 전공을 살려 취업했지만, 보수적인 조직 문화가 걸림돌이 됐다. 이 씨는 "개발직군은 개인의 성과가 중요한데도 상명하복식 문화 속에서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갔다"며 "성장이 정체된다는 느낌이 컸다"고 말했다. 40대 중반 이후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을 마주하는 업계 현실도 고민이었다. 반면 버스기사는 정년이 보장되고 근무시간이 명확해 워라밸을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수평적인 분위기도 매력으로 느껴졌다"며 "겉으로 보기엔 있어 보이는 직업이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중요한 터전"이라고 했다. 버스기사는 교대 근무 체계로 하루 운행 시간이 비교적 명확하다. 야근이나 불규칙한 초과근무가 잦은 일반 사무직과 달리 일정이 안정적이다. 정년 역시 60세 이상으로 길어 장기적인 생계 설계가 가능하다. 직장 내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이 씨는 "사무직은 환경이 쾌적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며 "혼자 운행한다는 특성도 요즘 젊은이들이 버스기사로 눈을 돌리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버스기사는 직장 상사·동료와 부딪히지 않고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다. 노선 안내나 인사같은 기본적인 응대 외엔 승객과 대화할 일도 많지 않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30세대 버스 기사는 2022년 7천559명에서 2025년 1만234명으로 3년 사이 약 37% 증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청년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맞닿아 있다. 과거 버스 기사는 하루 15시간 이상 운행한 뒤 다음 날 쉬는 '격일제' 근무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준공영제 도입 이후 '2교대제'로 전환된 지역이 늘면서 근무 여건도 개선됐다. 일반 사무직처럼 하루 9시간 안팎으로 일하고, 주 5일 근무에 주당 근무시간은 40~50시간 수준인 곳이 많다. 이 씨는 "이전에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 운행을 시작하며 내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도, 혹은 슬프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시민의 발'이 되어 누군가의 여정을 돕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남들 시선 뭐가 중요해요" 요즘 청년들은 직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선'도 가볍게 넘는다. 성별에 따라 나뉘던 직업의 경계 역시 흐려지는 모습이다. 김보라 씨(21)는 특수용접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여성 용접사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앉아서 하는 일은 맞지 않았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용접은 좀처럼 여성 기술자를 찾아보기 힘든 대표적인 금녀의 영역으로 알려진다. 웬만한 남성도 견디기 힘든 체력적 부담과 그보다 더 힘들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실제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여성 용접사가 드문 탓에 숙소나 근무 환경에서의 불편함은 물론, 체력적인 한계와 주변의 시선도 감당해야 했다. 김 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대를 더 크게 받거나, 반대로 '왜 굳이 힘든 일을 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성으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김 씨는 "한창 꾸미고 싶은 나이인데 방진마스크 마찰로 여드름이 잘 생기고, 파마를 해도 안전모나 용접면에 눌려 금방 풀린다"며 "작업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겪는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힘든 날에는 퇴근하고 눈물로 보낸 적도 많지만, 그만큼 버텨온 나 자신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며 "지금은 배우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남성 네일아티스트 손기환 씨(42)의 선택도 같은 맥락이다. 카페 창업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접한 네일아트에 흥미를 느끼며 이 길에 들어섰다. 그는 "내 손으로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성 네일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은 시작부터 장벽이었다. 예약까지 하고 찾아왔다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돌아간 손님도 있었다. 그는 "이해는 하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성 고객의 취향을 이해하기 위해 패션과 디자인을 따로 공부하고, 트렌드를 꾸준히 분석했다. 노력은 결과로 이어졌다. 손 씨는 "손님들이 '지금까지 받아본 곳 중 가장 낫다'고 말해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남자라는 점이 오히려 차별화된 강점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네일을 받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전해주는 고객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공통된 기준은 분명하다.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가'다. 김 씨도 손 씨도 말한다. "돈도 중요하지만, 결국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관심과 재미를 따라가다 보면 실력은 쌓이고, 그것이 결국 나만의 경쟁력이 된다" ◆ 사무실 밖으로… 블루칼라 재발견 사무실 대신 현장을 선택하는 20~30대 청년들도 늘고 있다. 기능직·운송·물류 등 이른바 '블루칼라' 직종으로의 유입이 눈에 띄는 흐름이다. 과거에는 현장직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고용 안정성과 근무 유연성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춘 일자리로 재평가되고 있다.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선호 직종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세라 씨는 23세에 주택금융공사를 자발적으로 퇴사하고 자동차 정비사의 길을 택했다. 고졸 상태에서 공기업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그는 주변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포기한 사례로 여겨졌다. 하지만 박 씨의 기준은 달랐다. 그는 "반복적인 행정 업무를 하면서 '이 일이 과연 나에게 맞는가'라는 고민이 컸다"며 "내 능력으로 직접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보상을 얻는 일이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무직보다는 경험과 기술을 쌓아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고 덧붙였다. 부모와 지인들의 만류도 이어졌다. "조금만 더 버티면 편해질 텐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퇴사를 선택했다. 이후 6개월간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 과정을 수료한 뒤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변화하는 노동시장 속에서 블루칼라 직종을 새로운 대안으로 삼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5년차 자동차 정비사로 근무 중인 황신원 씨(27)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흐름 속에서도 정비는 완전히 대체되기 어렵다고 본다"며 "기술은 평생 내 것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전공을 바꾼 사례다. 실용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자동차 정비에 흥미를 느끼며 진로를 전환했다. 이후 미래자동차공학과 야간 과정에 진학해 현재 4학년 심화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지금의 삶이 더 만족스럽다"며 "회사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훨씬 자유롭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고용정보원이 한국직업정보에 있는 520개 직업을 대상으로 2024년과 2027년의 AI에 의한 직무 대체율을 분석한 결과, 화이트칼라가 비(非)화이트칼라보다 더 급격하고 강력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자동화에 취약할 것으로 여겨졌던 현장직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대체되는 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일자리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주도하는 최근 변화는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개인이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용가능성'을 어떻게 키워나가느냐가 중요한 변수"라고 덧붙였다.
2026-04-25 15:30:00
어릴수록 위험…당장 스마트폰 내려놔야 할 이유 [데이터로 보는 세상]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가 말 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에 빗대어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는 말이 있다. 잠들기 전 '잠깐만' 보려던 스마트폰이 한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 이제는 낯설지 않다. 손에서 놓기 어려운 이 작은 화면은 어느새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과의존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을까. 2024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를 통해 그 실태를 짚어봤다. ◆ 줄어든 중독, 커지는 격차 조사 결과 우리나라 전체 스마트폰 이용자의 과의존위험군 비율은 22.9%로 나타났다. 2021년 24.2%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소 추세 이면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과의존위험군의 수는 줄어드는 반면, 어린 연령층에서는 오히려 과의존이 심화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연령대별로 보면 청소년(42.6%)의 과의존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았고, 유아동(25.9%), 성인(22.4%), 60대(11.9%)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만 10~19세 청소년은 전년(40.1%) 대비 2.5%p 상승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들의 특징은 단순한 이용 증가를 넘어 '조절 실패'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적절한 스마트폰 이용시간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문항 점수가 가장 높았다. 또 가족과의 심한 갈등, 학업 수행의 어려움 등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아들 역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만 3세부터 9세까지 유아동의 과의존위험군 비율은 25.9%로 전년(25.0%) 대비 0.9%p 상승했다.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과의존위험군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며 연령대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 부모 편의가 만드는 첫 중독 왜 나이가 어릴수록 스마트폰 과의존위험군 비율이 높아질까. 이들을 훈육하는 학부모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학부모들은 주요 원인으로 '맞벌이 증가 등으로 인한 훈육 시간 부족'(36.7%)을 가장 많이 꼽았고, '스마트폰 이용 지도 방법을 몰라서'(32.8%)가 뒤를 이었다. 여기에 '부모의 편의에 의한 사용 방임'(17.1%)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 사용 상황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확인된다. 만 3~9세 자녀를 둔 학부모의 42.7%는 공공장소에서 자녀를 통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여준다고 응답했다. 부모의 가사·직업·대인관계 활동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도 29.4%로 뒤를 이었다. 부모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 반복되면서, 아이가 스마트폰에 의존하게 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 짧고 강한 콘텐츠의 위험성 과의존위험군에서 이용량이 가장 크게 증가한 콘텐츠는 영화/TV/동영상(16.4%)이며, 이어서 SNS(13.8%), 게임(13.5%) 순으로 나타났다. 동영상 시청 내용은 게임(29.9%), 푸드(21.6%), 스포츠(20.8%) 순으로 집계됐다. 눈에 띄는 점은 '숏폼 콘텐츠'의 이용 양상이다. 과의존위험군의 숏폼 이용률은 86.8%로 일반군보다 7.2%p 높았다. 이용 플랫폼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유튜브 숏츠 이용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과의존위험군에서는 틱톡(28.7%)과 인스타그램 릴스(16.5%) 이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온라인 동영상 시청 시간의 절반 이상을 숏폼에 사용하는 비율이 35.7%로, 일반군(19.4%)보다 크게 높았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 중심의 소비가 과의존을 더욱 강화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었다. ◆ 어떤 노력으로 떨치고 있나 이용자들은 스마트폰 과의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고 있다. 가장 많이 실천하는 방법은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것으로, 전체 스마트폰 이용자의 63.6%가 이를 실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외에도 종이책 읽기, 명상, 운동 등 대체 활동(23.6%), 이용 시간 확인(20.6%), 사용 시간·공간 제한 설정(19.5%) 등이 주요 방법으로 꼽혔다. 흥미로운 점은 과의존위험군(86.6%)이 일반 사용자군(85.4%)보다 오히려 디지털 디톡스를 더 많이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앱을 통해 이용 시간을 확인하는 비율도 위험군이 더 높았다. 이는 과의존 상태에 놓인 이용자일수록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더 적극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알고 있지만 끊기 어려운' 스마트폰 사용의 특성도 함께 드러낸다. 겉으로는 감소세지만, 실제로는 더 어린 세대로 번지고 있는 스마트폰 의존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26-04-24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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