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역대급 무더위가 지역을 휩쓸었다. 이상기후의 여파가 산림을 위협하고 있다. 온난화로 매개충 활동 시기가 길어지면서 소나무재선충병이 급속도로 확산 중이다. 고온 스트레스로 말라 죽는 나무들도 줄을 잇고 있다.
◆말라 죽는 소나무들…대구‧경북 산림 황폐화
"현장에 오니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소나무가 말라 죽어 놀랐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성군 논공읍 5번 국도 인근 야산에서 만난 서준식 산림엔지니어링 대리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서 대리는 달성군의 용역을 받아 죽은 소나무들을 찾아다녔다. 작업자들은 2인 1조로 직접 산속으로 걸었다. 이들은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고사목을 일일이 살폈다.
취재팀은 야산 입구에서 서 대리팀을 따라 출발했다. 안쪽으로 100m쯤 10여 분 이동하자 곧바로 붉게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나타났다. 붉은 표시를 하고 둘레를 잰 다음 QR코드가 있는 띠지를 고사목에 둘렀다.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는 죽은 소나무에 알을 부화한다. 이 때문에 고사목은 모두 방제 대상이다.
산 군데군데 죽은 소나무 수십 그루가 눈에 띄었다. 이들 나무는 푸른 빛을 내는 주변 소나무와 달리 잎이 낙엽처럼 마르고 생기 갈색으로 바래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밑동만 남은 다른 소나무들도 보였다.
2인씩 나눠 하루 동안 살피는 나무는 평균 80~150그루 정도다. 지난 9월 중순부터 시작해 이날까지 달성군에서만 4천 그루 이상의 고사목을 발견했다. 죽은 소나무는 재선충 의심 및 방제 대상이어서 모두 확인해야 한다. 나무 크기와 피해 면적에 따라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산출해 방제 범위를 설계한다.
서 대리는 "산주나 인근 주민들도 날이 더워서 벌레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재선충병에 감염된 경우와 더불어 고온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목 졸리듯 바짝 말라 죽는 나무가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하반기에 일정을 당겼다. 9월 중순부터 시작해 이달 말까지 재선충 의심 고사목을 조사하고 있다. 죽은 나무들이 많아 예년보다는 좀 더 일찍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구를 비롯해 동해안 산림으로 가면 말라 죽은 소나무가 너무 많다고 방제 담당자들은 말했다. 방제 작업을 넘어서는 확산이어서 재선충 피해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기후변화로 창궐하는 산림 병충해
전국적으로 소나무재선충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 지역의 피해가 특히 더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교(국민의힘) 의원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20~2024년 9월)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이 기간 감염 소나무는 모두 305만7천344그루로 집계됐다. 이중 경북이 123만7천495그루(40.5%)로 가장 많다. 대구는 11만4천233그루로 특별‧광역시 중에서 울산(26만7천697그루) 다음으로 많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지역의 확산세는 더욱 뚜렷하다. 특히 경북의 상황은 최악이다. 2002년 1천655그루의 피해가 처음 보고된 이후 2016년 38만 그루 이상 치솟았다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47만6천710그루로 역대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다. 올해(9월 기준)는 39만8천915그루의 피해가 집계됐다. 잠재 감염 나무까지 더하면 피해는 70만 그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는 2005년 처음 150그루의 재선충 피해가 발생한 뒤 매년 피해가 이어져 왔으며, 2020~2023년 사이 3천258→3천136→1만1천729→5만2천171그루로 급증했다. 올해(9월 기준)는 4만3천939그루로 지난해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산림청은 소나무재선충 피해 정도를 '극심·심·중·경·경미' 5등급으로 나눈다. 올해의 경우 고사목 5만 그루 이상인 '극심 지역'에 경북의 포항과 경주, 안동이 포함됐다. 3만~5만 그루 미만인 '심 지역'에는 경북 구미가 지정됐다. 1만~3만 그루 미만의 '중 지역'에는 대구의 북구와 달성군, 경북의 영덕과 성주도 이름을 올렸다.
대구에선 달성군의 피해가 특히 심하고, 팔공산 방면으로도 고사목 피해가 번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1호인 동구의 '도동 측백나무 숲' 인근 지역과 달성군 매곡정수장과 도시철도 문양역 주변 야산은 곳곳에 말라 죽은 소나무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의 재선충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가 손꼽힌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등이 활동을 멈추는 시기다. 문제는 여름이 길어지면서 매개충 활동 시기가 덩달아 늘어났다는 것이다. 무더위 탓에 재선충의 활동성도 높아져 소나무가 더 빨리 말라 죽고, 마름병 등 다른 이유로 죽는 소나무도 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응용곤충학회지 등은 최근 연구자료에서 기온 상승에 따라 매개충이 점차 북상해 재선충병이 전국으로 퍼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최원일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은 "재선충병 확산에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온이 상승한 영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매개충은 변온동물이어서 기온이 올라갈수록 생리작용이 활발해진다. 이에 따라 기온 변화에 따른 매개충 활동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방제, 대책과 전략은?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가운데 대구·경북에선 본격적인 방제 작업에 돌입했다. 산림청과 각 지자체들은 소나무 멸종을 막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구시는 이달부터 방제 활동 시작했다.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알을 낳고 부화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집중적으로 방제 작업을 벌인다.
시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방제를 통해 6만7천300그루를 제거하고, 4만6천712그루에 예방주사를 놓았다. 드론을 활용한 '정밀 드론 방제'도 올해 135㏊ 진행했다. 예방주사나 드론 방제의 경우는 약품 효과의 지속 기간이 2~3년이어서 주기적인 관리 필요하다.
경북도는 항공‧지상 예찰을 마무리 짓고 내년 3월까지 지역별 맞춤형 방제 사업에 돌입한다. 지난 14일 지역협의회를 열어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대구 달성군과 경북 포항시 등 재선충 확산이 심한 지역의 경우 올해 초 산림청이 특별 방제 구역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이곳들은 인근의 나무들까지 제거하는 '모두 베기'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대체 수종으로 편백 등을 새롭게 심는다.
대구·경북은 완전한 방제보다는 팔공산과 비슬산 등 주요 산림으로 번지는 것을 방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수종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
앞서 1905년 재선충이 처음 발생한 일본의 경우 완전한 방제는 사실상 실패했고, 현재는 편백이나 삼나무 등 다른 수종으로 전환하고 있다. 소나무는 '지켜야 할 곳'을 막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박상준 경북대 산림과학조경학부 교수는 "고사목을 잘라낸 뒤 방치하기보다 열병합발전소 등의 연료로 사용하거나 후처리를 통해 가구 제작 등에 활용해야 한다"며 "재선충 확산이 빨라짐에 따라 적극적인 방제와 수종 전환에 따른 전략적 숲 가꾸기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만표 대구시 산림녹지과장은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5년간 연료용 목재로 재선충 방제 나무를 열병합발전소에 공급하는 등 자원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방제를 안 하면 20~30년 내로 소나무는 멸종된다. 방제에 손을 놓을 수 없다. 피해확산 저지와 특별관리구역 설정, 첨단 장비 활용 등 다양한 방제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끝〉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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